제45화. 태양이 중심을 잃은 날
Code Destiny · 5,831자
제45화. 태양이 중심을 잃은 날
연이는 아침부터 이상한 빛을 봤다.
창밖으로 들어온 햇빛이 너무 선명했다.
평소보다 밝은 정도가 아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펜의 그림자가 칼처럼 날카로웠고, 컵 가장자리에 맺힌 빛은 눈을 찌를 것처럼 번쩍였다.
연이는 커튼을 반쯤 닫았다.
그래도 빛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늘 햇빛 왜 이래.”
휴대폰이 바로 울렸다.
연이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태양 하나 문제인 줄 알았더니 줄줄이 엮였네.”
그녀는 책상 위 노트를 펼쳤다.
어제 적어둔 내용이 보였다.
연이는 펜 끝으로 ‘태양’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니까 태양이 과해지면…….”
휴대폰이 이어서 문장을 띄웠다.
연이는 입을 다물었다.
익숙했다.
너무 익숙했다.
4점대를 받은 뒤, 그녀도 잠깐 그랬다.
좋았다.
기뻤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음 학기도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연이 요즘 잘하더라”라고 말하면 기쁘면서도 무서웠다.
잘하는 연이가 되어버렸으니, 이제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게 태양이 따뜻하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서 불판처럼 달궈지는 느낌이었다.
연이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관찰.”
그때 민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연이는 바로 답했다.
민지는 캡처를 보냈다.
연이는 화면을 열었다.
연이는 침묵했다.
“무슨 자기계발서 광고야?”
민지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연이는 손을 멈췄다.
사라지는 것 같아.
그건 태양의 말이 아니었다.
태양이 망가졌을 때의 말이었다.
중심이 약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바깥의 시선에 맡겨버린 상태.
연이는 바로 가방을 챙겼다.
도서관.
방학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학교 도서관 앞 벤치와 로비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문제는 분위기였다.
모두 조금씩 빛나고 있었다.
아니, 빛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학생은 노트북 화면에 자기소개서 문장을 열어두고 있었다.
“저는 끊임없이 증명해왔습니다…….”
그는 그 문장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저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또 지웠다.
옆자리 학생은 SNS에 발표회 사진을 올리려고 했다.
필터를 바꾸고, 문구를 바꾸고, 해시태그를 열 개 넘게 붙였다가 지웠다.
“너무 나대 보이나?”
그는 중얼거리며 다시 사진을 확대했다.
또 다른 학생은 친구에게 말했다.
“나 이번 방학에 공모전 두 개 넣으려고.”
“너 지난주까지 쉰다며.”
“쉬면 안 될 것 같아. 뭔가 계속 보여줘야 해.”
연이는 로비 한가운데 멈춰 섰다.
그리고 보았다.
사람들 뒤에 작은 하늘이 떠 있었다.
처음엔 흐릿했는데, 집중하자 선명해졌다.
각자의 등 뒤에 작은 원형 우주가 있었다.
그 안에는 작은 태양이 떠 있었다.
문제는 그 태양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태양은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다.
그 빛이 너무 뜨거워서, 그 사람의 달과 수성이 밀려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태양은 중심에서 벗어나, 10하우스처럼 보이는 높은 탑 쪽으로 끌려가 있었다.
어떤 사람의 태양은 사자자리 문양에 붙어, 무대 조명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사람마다 진짜 우주가 있어.”
그 우주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하늘 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별의 밝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처럼.
휴대폰이 진동했다.
연이는 화면을 보고 낮게 말했다.
“태양만 밝아진 게 아니야.”
사자자리.
5하우스.
태양성.
명궁.
관록궁.
전부 연결되어 있었다.
점성술의 태양이 과해지자, 자미두수의 태양성도 공명했다.
자기 중심이 자기 증명으로 변하고, 표현의 무대가 시선 경쟁으로 변하고, 사회적 역할의 방이 성과 압박으로 변했다.
연이는 민지를 찾았다.
민지는 도서관 1층 창가 쪽에 있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공부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발표회 사진을 보고 있었다.
사진 속 민지는 잘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좋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민지는 그 사진을 확대했다가, 표정을 찌푸렸다.
“이거 좀 별로인가.”
연이는 옆에 앉았다.
“민지야.”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연이는 화면을 봤다.
후기 글은 더 길어져 있었다.
연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너 원래 이렇게 말 안 하잖아.”
“그치.”
민지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근데 오늘 이상하게 그래. 뭔가 내가 잘한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아. 안 그러면 내가 잘한 게 사라지는 느낌이야.”
연이는 민지 뒤의 작은 우주를 보았다.
그곳의 태양은 너무 컸다.
빛이 지나치게 강해 달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감정은 느껴지지 않고, 증명만 남은 상태.
그리고 명궁처럼 보이는 작은 방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안에 민지의 얼굴은 없었다.
대신 발표회 사진, 성적표, 계획표, SNS 알림이 떠다녔다.
연이는 천천히 말했다.
“민지야.”
“응.”
“지금 네 안의 태양이 너무 세진 것 같아.”
민지는 지친 얼굴로 웃었다.
“너 요즘 진짜 운세 앱 말투 닮아간다.”
“나도 알아. 근데 들어봐.”
연이는 민지의 노트북 화면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태양은 네가 남한테 증명하라고 있는 별이 아니야.”
민지는 말없이 연이를 보았다.
“태양은 네가 네 중심을 잃지 않게 비춰주는 별이야.”
연이는 민지가 쓴 문장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중심이 아니야.”
그녀는 문장을 지웠다.
“이건 너무 뜨거워진 태양이야.”
민지는 멍하니 화면을 보았다.
“그럼 뭐라고 써?”
연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 학기 나는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민지의 눈이 흔들렸다.
연이는 이어 말했다.
“그래서 기쁘다.”
아주 단순한 문장.
그런데 민지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입술을 꾹 눌렀다.
“그게…… 더 진짜 같네.”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높이, 더 빛나게, 더 증명하게. 이런 말보다.”
민지는 천천히 타자를 쳤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음 줄을 썼다.
그 순간 민지 뒤의 작은 우주에서 태양이 조금 작아졌다.
빛이 부드러워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별들을 태우지 않았다.
달도 다시 보였다.
수성도 작게 반짝였다.
명궁 안에 떠 있던 사진과 알림들이 사라지고, 대신 민지 자신이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연이의 손목에 감긴 은빛 현이 울렸다.
딩.
휴대폰이 조용히 떴다.
민지는 이상하다는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방금 뭔가 편해졌어.”
연이는 웃었다.
“잘됐네.”
“너 뭐 한 거야?”
“문장 조금 고친 거?”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운세 상담?”
민지는 피식 웃었다.
“너 요즘 진짜 이상한데 도움이 돼.”
그때 도서관 로비 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한 남학생이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켜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부터 방학 루틴 공개합니다.”
주변 학생들이 당황해 쳐다봤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루 16시간 공부. 운동 2시간. 독서 1권. 영어 회화. 공모전 준비. 잠은 사치입니다.”
연이는 얼굴을 굳혔다.
그의 뒤에 떠 있는 작은 우주는 더 심각했다.
태양이 너무 커져 있었다.
그 빛이 10하우스의 탑을 태우고 있었다.
관록궁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자미두수의 태양성처럼 보이는 별이 하늘 한복판에서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그 빛은 밝다기보다 공격적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작은 우주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
한 학생이 그 방송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다른 학생도 휴대폰을 켰다.
“내 루틴도 올려볼까.”
또 다른 학생은 자기 계획표를 급하게 수정했다.
[휴식]이라는 칸이 지워지고, [추가 공부]가 들어갔다.
민지가 낮게 말했다.
“연이야. 이거 좀 이상한데.”
“응.”
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개인 한 명만 문제가 아니야.”
태양 과증폭이 전염처럼 번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전염이 아니라 공명.
한 사람의 과열된 태양이, 주변 사람들의 태양을 자극하고 있었다.
흑막의 아이템은 사람 하나를 망가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각자의 우주를 건드리고, 그 우주끼리 서로 영향을 주게 만들었다.
연이는 로비로 걸어갔다.
남학생은 더 크게 말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면 보여줘야 합니다. 결과를 내야 합니다. 쉬는 사람은—”
“잠깐만요.”
연이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남학생도 멈췄다.
“네?”
연이는 그의 휴대폰 화면을 가리켰다.
“그거, 본인이 진짜 좋아서 하는 거예요?”
남학생은 눈을 깜빡였다.
“뭐가요?”
“하루 16시간 공부. 수면 줄이기. 루틴 공개.”
연이는 천천히 말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아니면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거예요?”
로비가 조용해졌다.
남학생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성공하려면 해야죠.”
“그건 답이 아니잖아요.”
“뭐라고요?”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반발이 생긴다.
태양이 과해진 사람에게 “나대지 마”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태양을 꺼버리는 말이다.
필요한 건 빛을 낮추는 것.
그가 가진 중심을 부정하지 않고, 과열을 식히는 것.
연이는 말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게 아니에요.”
남학생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나쁜 게 아니고요. 열심히 사는 것도 멋진 일이에요.”
그는 말없이 연이를 보았다.
연이는 이어 말했다.
“근데 태양이 너무 가까이 오면 사람은 길을 보는 게 아니라, 타버려요.”
로비의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빛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살리는지, 나를 태우는지 봐야 해요.”
그 순간 남학생 뒤의 작은 우주가 크게 흔들렸다.
태양이 더 강하게 번쩍였다.
반발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쉬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요.”
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쉬기만 하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녀는 그가 켜둔 라이브 화면을 보았다.
시청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남학생은 그 숫자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연이는 그 숫자를 가리켰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성공이에요? 아니면 지금 이 숫자가 올라가는 거예요?”
남학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태양은 남이 봐줘야 켜지는 조명이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태양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해주는 중심이에요.”
민지가 뒤에서 작게 말했다.
“맞아.”
그 소리가 로비에 퍼졌다.
조용하지만 분명했다.
다른 학생 하나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도 오늘 쉬려고 했는데 괜히 계획표 바꾸고 있었어.”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나도. 갑자기 뭔가 증명해야 할 것 같아서.”
남학생의 방송 화면이 흔들렸다.
그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사실 무서웠어요.”
연이는 조용히 기다렸다.
“방학에 아무것도 안 하면 뒤처질 것 같고, 누가 나를 봐주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태양이 흔들렸다.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던 빛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근데 진짜 하고 싶은 건…….”
남학생은 한참 후 말했다.
“그냥 이번 방학에 제대로 한 가지를 끝내는 거예요.”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남겨요.”
남학생은 노트북을 열었다.
빽빽한 루틴표에서 대부분을 지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적었다.
로비에서 누군가 작게 웃었다.
긴장이 풀렸다.
그 순간 연이의 눈에는 보였다.
남학생의 태양이 작아졌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안정적으로 빛났다.
10하우스의 탑도 불타지 않았다.
관록궁의 붉은 열기도 식었다.
자미두수 태양성은 다시 “밝히는 별”처럼 빛났다.
연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연이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됐다.”
하지만 바로 그때.
도서관 천장 위로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연이만 본 것이 아니었다.
몇몇 학생들도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방금 뭐야?”
“조명 꺼졌나?”
“하늘이…….”
연이는 로비 창밖을 보았다.
대낮의 하늘.
그 위에 아주 희미한 검은 고리 하나가 돌고 있었다.
전보다 선명했다.
여러 개의 고리가 겹친 장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 고리 중 하나가 천천히 회전했다.
둥.
가슴 안쪽이 울렸다.
휴대폰이 강하게 진동했다.
연이의 얼굴이 굳었다.
“달…….”
민지가 옆으로 다가왔다.
“왜?”
연이는 창밖 하늘을 보았다.
태양 문제는 조금 완화했다.
하지만 이제 달이 약해진다.
중심을 증명하라는 압박 다음에는,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공허가 온다.
연이는 손에 힘을 주었다.
“다음 건 더 조용하게 올 거야.”
“뭔데?”
연이는 커피잔을 보았다.
아까 마셨던 커피.
맛이 조금은 돌아왔지만, 아직 완전히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못 느끼기 시작할 거야.”
그때 휴대폰 아래쪽에 금빛 발자국 하나가 나타났다.
짧은 메시지.
연이는 화면을 보자마자 숨을 멈췄다.
“네오.”
메시지는 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도 보고 있다.
어딘가에서.
연이는 하늘의 검은 고리를 노려보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안의 우주를 품고 있다.
그 안의 태양이 너무 강하면 타버린다.
달이 약해지면 마음이 식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 그 우주들을 마음대로 조율하고 있다.
연이는 노트를 꺼냈다.
첫 번째 페이지에 적었다.
그 아래에 새 줄을 썼다.
펜 끝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연이는 작게 말했다.
“좋아.”
그녀의 눈빛이 더 단단해졌다.
“이번엔 마음이 꺼지는 걸 막아보자.”
도서관 창밖의 하늘에서 검은 고리가 다시 한 번 천천히 돌았다.
별의 힘이 또 어긋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