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별의 궁전으로 가는 준비
Code Destiny · 4,346자
제47화. 별의 궁전으로 가는 준비
수성 과증폭은 예상보다 빨리 번졌다.
카페에 들어온 학생들은 처음엔 평범하게 대화하는 듯했다.
하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말이 겹치기 시작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 네가 먼저 그렇게 말했잖아.”
“끝까지 들어봐.”
“너도 내 말 안 듣잖아.”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말이 닿지 않았다.
말은 많아지는데, 의미는 점점 얇아졌다.
연이는 카페 입구 쪽에 서서 그 장면을 보았다.
수성.
생각과 말, 연결의 별.
수성이 과하게 튀면 말이 길어진다.
정보는 많아진다.
그런데 듣는 힘이 줄어든다.
자미두수로 보면 거문성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말.
의심.
질문.
논쟁.
거문성이 균형을 잃으면 질문은 이해하려는 문이 아니라, 찌르는 칼이 된다.
연이는 노트를 펼쳤다.
그녀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또 하나씩 해야 하나.”
민지가 옆에서 작게 물었다.
“뭘?”
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양은 조금 식혔다.
달도 조금 되살렸다.
이제 수성까지 현실에서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었다.
하나를 진정시키면, 다른 별이 흔들렸다.
태양을 식히자 달이 꺼졌다.
달을 되살리자 수성이 폭주했다.
다음은 금성일 수도 있고, 토성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미두수의 명궁, 관록궁, 복덕궁, 부부궁이 차례로 흔들릴 수도 있다.
연이는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뒤에 떠 있는 작은 우주들.
각자 다른 별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태양이 너무 뜨거웠고.
누군가는 달이 너무 희미했다.
누군가는 수성이 너무 빠르게 돌고 있었다.
누군가의 관록궁은 붉게 달아올랐고.
누군가의 복덕궁은 불이 꺼져 있었다.
각자의 우주.
각자의 하늘.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마음대로 건드리고 있다.
연이는 휴대폰을 들었다.
Code Destiny 앱이 켜져 있었다.
연이는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현실 대응은 임시 완화.
그녀는 낮게 말했다.
“그렇지.”
민지가 연이를 보았다.
“왜?”
연이는 카페 안의 학생들을 보았다.
“이거 하나하나 달래서는 끝이 안 나.”
그때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곧이어 루나의 메시지가 왔다.
연이는 바로 답했다.
치즈도 메시지를 보냈다.
크림의 메시지도 따라왔다.
연이는 그 와중에 피식 웃었다.
“크림 비유는 항상 정확하네.”
민지가 물었다.
“크림?”
“아, 아니야.”
민지는 연이를 한참 보았다.
“너 또 이상한 일 생겼지?”
연이는 말문이 막혔다.
민지가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너 요즘 가끔 다른 데랑 연결된 사람 같아.”
연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정말로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녀는 민지를 보았다.
“민지야.”
“응.”
“혹시 내가 갑자기 멍해지거나, 휴대폰 보고 이상한 표정 지으면.”
“응.”
“그냥 내가 운세 앱에 진심인 거라고 생각해줘.”
민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조금 더 진심일 수도 있어.”
“얼마나 더?”
연이는 잠깐 생각했다.
“인생 걸 정도?”
민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가.”
연이는 놀라 민지를 보았다.
“뭐?”
“네가 지금 어디 가야 하는 얼굴이야.”
민지는 카페 안의 소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나머지는 내가 여기서 적당히 말릴게. 저 사람들 수성인지 뭔지 폭주한 거라며.”
연이는 눈을 깜빡였다.
“너 수성 알아?”
“방금 네가 혼잣말했잖아.”
“아.”
민지는 노트북을 닫았다.
“말이 너무 많아져서 서로 안 듣는 거면, 일단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조용히 하게 해볼게.”
연이는 잠시 민지를 보았다.
이상하게 든든했다.
운세 세계의 동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도, 연이를 믿어주는 사람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고마워.”
민지는 웃었다.
“대신 나중에 설명은 해.”
“가능한 선에서.”
“그 말 제일 수상해.”
연이는 가방을 챙겼다.
휴대폰 화면에 타로 카드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카드가 곧장 열리지 않았다.
카드 아래에 문장이 나타났다.
연이는 카페를 나와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이상 현상은 계속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사람들이 같은 뉴스를 두고 서로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한 사람이 자기 휴대폰 카메라를 보며 계속 얼굴 각도를 바꾸고 있었다.
금성 쪽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는 누군가 멍하니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녹아내리는데도 먹지 않았다.
달이 약해진 얼굴이었다.
연이는 그들을 전부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알아야 했다.
현실의 증상은 이미 나타났다.
이제 원인으로 가야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이는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를 펼쳤다.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을 빠르게 정리했다.
연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지.”
그때 휴대폰이 켜졌다.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좋아.”
그녀는 가방 안에 필요한 것들을 넣었다.
루나가 준 은빛 현.
치즈의 유리 조각.
크림의 별가루빵.
모카가 적어준 문장.
그리고 자신의 노트.
노트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때 금빛 발자국 채팅방이 조용히 켜졌다.
오랜만에 메시지가 떴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네오?”
바로 답장을 보내려 했지만, 입력창은 뜨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연이는 가슴 한쪽이 묘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먼저 말했네.”
그녀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Code Destiny.”
타로 카드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검은 밤하늘.
달빛 문.
문 앞의 작은 꽃.
카드 속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이익.
이번에도 방 안에 달빛이 쏟아졌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문 너머로 바로 사주의 강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별빛으로 된 계단이 보였다.
계단 아래쪽은 사주의 강으로 이어져 있었고, 위쪽은 검은 하늘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계단 중간쯤에 보라색 안개가 떠 있었다.
점성술의 원형 차트와 자미두수 성궁이 겹치는 경계.
그곳이 목적지였다.
연이는 문 앞에 섰다.
“이번에도 꽃돼지겠지?”
앱이 대답했다.
연이는 눈을 감았다.
“이제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녀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몸을 감쌌다.
현실의 방이 멀어졌다.
책상도, 침대도, 방학 계획표도 멀어졌다.
몸이 작아지는 감각이 왔다.
팔이 짧아지고.
다리가 짧아지고.
머리 위에 꽃이 피었다.
그리고 입에서 익숙한 소리가 터졌다.
“꿀아아아악!”
통.
연이는 별빛 계단 아래쪽에 떨어졌다.
이번엔 연잎 배가 아니라, 별빛으로 된 작은 발판이었다.
발판은 말랑하지 않았다.
딱딱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아야.”
그녀는 천천히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분홍빛 몸.
짧은 앞발.
동그란 배.
머리 위 작은 꽃.
“복귀 완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제 말은 안 잃어버리네.”
그때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다.”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별빛 계단 위에 네오가 서 있었다.
작은 사자 모습이었다.
금빛 갈기.
밤하늘색 눈.
그리고 여전히 건방진 표정.
연이는 그를 보자마자 앞발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진짜 기다렸네.”
“말했으니까.”
“그걸 자랑이라고.”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꼬리 끝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연이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반가운 척 좀 해도 되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네가 그렇지 뭐.”
계단 아래쪽에서 모카가 뛰어왔다.
“연이님!”
뒤이어 치즈, 크림, 루나가 올라왔다.
모카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사주 세계 쪽은 DEST1NOVA가 막고 있어요. 저희는 상층 진입팀으로 왔어요.”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너희도 같이 가?”
치즈가 안경을 고쳐 썼다.
“이번엔 계약 문제가 아니지만, 조건을 읽는 건 여전히 필요할 수 있어요.”
크림은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별가루빵도 필요할 수 있어요.”
모카는 가사 노트를 품에 안았다.
“소리도 들어야 하고요.”
루나는 류트를 고쳐 멨다.
“별의 음을 맞추려면 나도 필요해.”
연이는 모두를 보았다.
“다 같이 가는구나.”
네오가 말했다.
“상층은 각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좋아.”
연이는 앞발로 가슴을 툭 쳤다.
“팀 이름은?”
네오가 바로 말했다.
“필요 없다.”
모카는 눈을 반짝였다.
“별빛 복구단?”
치즈가 말했다.
“조금 비공식적이에요.”
크림이 말했다.
“별빵 원정대?”
연이는 잠깐 고민했다.
“그건 너무 맛있어 보여.”
루나가 웃었다.
“이름은 나중에 정해.”
그때 별빛 계단 위쪽에서 낮은 울림이 들렸다.
둥.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계단 끝.
보라색 안개 너머.
거대한 검은 고리들이 희미하게 돌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별의 힘을 흔들고 있다.
어떤 별은 태울 만큼 밝게.
어떤 별은 얼어붙을 만큼 어둡게.
그리고 어떤 별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아직 이름은 모른다.”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는 짓은 알아.”
그녀는 별빛 계단 위로 첫 걸음을 올렸다.
“사람 하나하나가 자기 안에 우주를 품고 있는데.”
꽃잎 사이의 네 기둥이 빛났다.
“그걸 마음대로 만지고 있어.”
하늘 위 검은 고리가 다시 울렸다.
둥.
별빛 계단이 흔들렸다.
연이는 중심을 잡았다.
짧은 다리로.
꽤 당당하게.
“가자.”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별을 원래 리듬으로 돌려놓으러.”
네오가 옆에 섰다.
모카, 치즈, 크림, 루나가 뒤따랐다.
별빛 계단은 위로 이어졌다.
점성술 하늘과 자미두수 성궁이 겹친 곳.
그곳에서 진짜 전투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