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이름을 열지 않는 법
Code Destiny · 3,016자
제62화. 이름을 열지 않는 법
검은 문 안쪽은 밤보다 깊었다.
연이는 문을 통과하자마자 발밑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위도 아래도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한가운데에서 금빛만은 미친 듯이 터지고 있었다.
쾅!
금빛 발톱이 검은 천을 찢었다.
쾅!
검은 고리들이 산산이 튀었다.
쾅!
그러나 찢어진 천은 다시 이어졌다.
그 안에 네오가 있었다.
작은 사자의 몸.
금빛 갈기.
이를 드러낸 얼굴.
하지만 평소의 네오가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흰 사자의 형상이 일렁이고 있었다.
완전히 드러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숨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이름을 잃은 힘이 몸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힘의 중심에, 읽히지 않는 금빛 이름 조각이 있었다.
무성의 흑천의가 그 조각을 감싸고 있었다.
“이름은 문이다.”
무성의 목소리가 검은 공간 전체를 울렸다.
“문이 열리면,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열린다.”
네오가 이를 갈았다.
“닫아.”
“왜?”
무성은 조용히 웃었다.
“너는 그 이름을 되찾고 싶지 않나.”
검은 천이 네오의 가슴 쪽을 파고들었다.
금빛 이름 조각이 더 밝아졌다.
형태가 드러날 듯했다.
한 글자.
아니, 그보다 짧은 획.
그러나 연이는 읽을 수 없었다.
읽으려는 순간 눈이 아팠다.
마치 운명이 아직 허락하지 않은 페이지를 강제로 넘기려는 느낌이었다.
네오가 낮게 신음했다.
연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만해!”
연이는 달려들었다.
검은 천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퍽!
꽃돼지 몸이 검은 바닥 위로 굴렀다.
“꿀악!”
아팠다.
정말 아팠다.
그래도 연이는 바로 일어났다.
“야, 남의 이름을 왜 네가 열어?”
무성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름은 가장 짧은 운명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네가 열면 안 되지!”
연이는 성반을 펼쳤다.
그러나 성반은 곧장 흔들렸다.
이름 조각이 흔들릴 때마다 세계의 경계가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공간 한쪽에 갑자기 현실의 풍경이 비쳤다.
학교 도서관.
카페의 유리창.
연이의 방 책상.
민지가 휴대폰을 들고 서 있는 모습.
민지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 화면 위에는 Code Destiny 앱의 경고가 떠 있었다.
민지가 창밖을 보았다.
현실의 하늘에 흰 사자의 그림자가 스쳤다.
“연이야……?”
다시 검은 공간.
연이는 숨을 삼켰다.
“현실에도 보이고 있어.”
무성은 낮게 말했다.
“이름이 열리면 세계도 열린다.”
검은 천이 네오를 더 세게 조였다.
“너희가 지키려던 현실까지.”
네오가 금빛 발톱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엔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름이 억지로 열리며, 힘의 좌표가 흔들리고 있었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네오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왜 자신을 지키는지.
왜 현실까지 따라왔는지.
왜 무성을 보면 저렇게 차갑게 변하는지.
전부 알고 싶다.
하지만 지금 알게 되는 건 답이 아니다.
강탈이다.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네오.”
네오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부르지 마라.”
“네오라고 부를게.”
그 말에 그의 눈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그 이름은 네가 나한테 대답해준 이름이야.”
검은 천이 흔들렸다.
무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껍데기의 이름이다.”
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껍데기라도, 그 안에 우리가 쌓은 시간이 있어.”
그녀의 머리 위 꽃이 빛났다.
“흰 고양이로 나타나서 과제 저장하라고 잔소리했던 시간.”
금빛 조각이 흔들렸다.
“카페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번호 요청 막던 시간.”
네오의 갈기가 작게 빛났다.
“도망이 아니라 다시 읽으러 가는 거라고 했던 시간.”
검은 천이 조금 느슨해졌다.
연이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진짜 이름이 따로 있다면, 언젠가 네가 말해.”
그녀는 앞발을 들어 이름 조각 위에 닿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성이 열게 두지 않을 거야.”
성반 안쪽에서 명궁과 부부궁이 동시에 빛났다.
명궁은 자기 자신을 만나는 방.
부부궁은 상대를 억지로 열지 않고 비추는 방.
두 궁의 빛이 금빛 이름 조각을 감쌌다.
연이는 낮게 말했다.
“이름 개방 중지.”
검은 천이 크게 흔들렸다.
무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어졌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몰라.”
그녀는 네오를 보았다.
“그래서 안 열어.”
그 순간 금빛 이름 조각이 폭발하듯 빛났다.
그러나 글자는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 조각은 네오의 가슴 안쪽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억지로 열린 문이 닫혔다.
네오가 숨을 몰아쉬었다.
검은 천이 튕겨 나갔다.
쨍!
현실과 운세 세계를 가르던 경계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현실의 카페 유리창에 금빛 금이 갔다가 사라졌다.
도서관 천장의 조명이 보랏빛으로 깜빡였다.
민지의 휴대폰에는 새로운 문장이 떴다.
민지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이거…… 진짜 운세 앱 아니잖아.”
검은 공간 안.
네오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금빛 갈기는 전보다 더 선명했다.
하지만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다.
읽히지 않는 금빛 조각은 여전히 그의 안쪽에 잠겨 있었다.
연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네오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살았다.”
연이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말은 평소의 “기능에는 문제없다” 같은 말보다 훨씬 솔직했다.
연이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됐어.”
무성의 흑천의가 다시 검은 공간 위로 펼쳐졌다.
“기어이 닫았군.”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분명히 불쾌해져 있었다.
“이름을 닫으면 진실도 늦어진다.”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늦어도 돼.”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강제로 아는 것보단 낫거든.”
네오가 그녀를 보았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연이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이도 묻지 않았다.
무성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렇다면 다른 문을 열겠다.”
검은 공간이 갈라졌다.
현실의 하늘이 보였다.
운세 세계의 자미성도 보였다.
두 세계가 겹치고 있었다.
경계가 얇아진 틈으로, 현실 사람들의 작은 우주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민지의 태양.
카페 직원의 달.
도서관 학생의 수성.
어떤 사람의 금성.
어떤 사람의 토성.
그 작은 별들이 현실 위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무성은 조용히 말했다.
“현실도 별을 품고 있다.”
“그러니 현실도 꺼질 수 있다.”
연이는 몸을 굳혔다.
“안 돼.”
네오가 옆에 섰다.
아직 숨이 거칠었지만, 눈빛은 돌아와 있었다.
“둘로 갈라진다.”
“또 선택하라는 거야?”
“아니다.”
네오는 금빛 발톱을 들어 현실 쪽 균열을 가리켰다.
“이번엔 역할을 나눈다.”
연이는 그를 보았다.
“너는 현실 쪽?”
“내가 막는다.”
“혼자?”
“오래는 못 막는다.”
“그럼 나는?”
네오의 시선이 자미성 중심부로 향했다.
“너는 안쪽으로 간다.”
자미성.
성궁의 중심.
무성이 노리는 진짜 자리.
연이는 숨을 삼켰다.
현실의 하늘에서는 민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운세 세계의 중심에서는 자미성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둘 다 중요했다.
이전 같으면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이는 성반을 펼쳤다.
그 안에 흩어진 동료들의 작은 빛이 아직 남아 있었다.
모카.
치즈.
크림.
루나.
그리고 네오.
“좋아.”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현실 쪽은 네가 막아.”
네오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연이는 자미성 쪽 문을 노려봤다.
“난 중심으로 갈게.”
검은 천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오려 했다.
네오가 금빛 발톱으로 그것을 막았다.
“가라.”
연이는 달렸다.
“이번엔 사라지지 마!”
네오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이름을 닫아준 빚은 갚아야지.”
연이는 순간 웃을 뻔했다.
“그거 빚 아니거든!”
“그럼 약속으로 해두겠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오는 현실 균열을 향해 뛰었다.
흰 사자의 형상이 그 뒤를 따라 솟구쳤다.
연이는 반대편 자미성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두 세계가 동시에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