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꽃돼지 아이돌 데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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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꽃돼지 아이돌 데뷔전
검은 봉인진이 하늘을 덮었다.
그것은 단순히 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었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려는 모든 것을 눌러버리고 있었다.
노래는 목 안에서 사라졌다.
기타 줄은 떨리지만 소리를 잃었다.
춤추려는 몸은 다음 동작을 잊었다.
관객들의 박수는 허공에서 멈췄고, 웃음은 입가까지 올라왔다가 굳었다.
음식 거리에서는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달빛 크림빵은 그대로 따뜻해 보였지만, 연이가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맛도.
고소함도.
따뜻함도.
그저 씹히는 무언가.
연이는 빵을 내려다봤다.
“이건 너무하잖아.”
목소리는 나왔지만, 전보다 작았다.
마치 누군가 연이의 말끝을 손으로 눌러버리는 것 같았다.
모카의 가사 노트에서도 글자들이 흐려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삐뚤빼뚤하게 살아 있던 라임들이, 회색 먼지처럼 번졌다.
모카는 노트를 품에 끌어안았다.
“안 돼…… 이건 제가 쓴 건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틀려도, 별로여도, 제가 쓴 건데…….”
연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식신·상관의 섬.
먹고, 만들고, 말하고, 노는 섬.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웃고, 틀리면 다시 하는 섬.
그런 섬이 지금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회색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연이.”
“응.”
“까마귀는 목소리만 봉하는 게 아니다. 식상 전체를 막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노는 것도, 만드는 것도 전부?”
“그래.”
네오의 갈기가 금빛으로 타올랐다.
“이번엔 단순히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연이는 하늘의 봉인진을 보았다.
말 없음.
만듦 없음.
맛 없음.
색 없음.
움직임 없음.
그 글자들이 섬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까마귀는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검은 연미복.
붉은 눈.
흰 장갑.
그리고 손에 든 붉은 도장.
그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표현은 혼란이다.”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말하지 않으면 다투지 않는다.”
[무언]이 더 짙어졌다.
“만들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무작]이 커졌다.
“맛을 모르면 탐하지 않는다.”
[무미]가 퍼졌다.
“색을 지우면 비교하지 않는다.”
[무색]이 내려왔다.
“몸을 멈추면 질서가 유지된다.”
[무동]이 무대를 감쌌다.
까마귀는 천천히 도장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 이 섬은 조용해져야 한다.”
그 말이 끝나자, DEST1NOVA 멤버들의 몸이 다시 굳어갔다.
SOLV는 마이크를 들고 있었지만, 가사가 떠오르지 않는 듯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BAMBI의 목소리는 목 안에 갇힌 듯했다.
LUNE은 기타를 잡고 있었지만, 다음 코드를 떠올리지 못했다.
RAVEN의 발끝은 바닥에 붙어 있었다.
모카는 노트를 끌어안고 무릎을 꿇었다.
“내 다음 줄이…… 안 떠올라요.”
연이는 모카에게 다가갔다.
“모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모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분명 있었는데. 다음 줄이, 다음 박자가, 다음 말이…… 전부 사라졌어요.”
그 말은 연이의 가슴을 찔렀다.
연이는 비겁의 섬에서 거울 속 자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네 자리는 없어.
네가 못 하면 내가 할게.
이번에는 그 말이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네 목소리는 없어.
네가 만들 건 없어.
네가 표현할 건 없어.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
모카가 고개를 들었다.
“네?”
“사라진 거 아니야.”
연이는 모카의 노트를 앞발로 툭 건드렸다.
“지금 못 보게 막힌 거지.”
모카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네가 쓴 줄은 없어지지 않아.”
연이는 무대 위를 보았다.
“망한 줄도, 이상한 라임도, 지운 흔적도, 다시 쓴 것도 전부 네 거야.”
그 순간 연이의 가슴 안쪽에서 따뜻한 불씨가 움직였다.
작은 불.
그리고 그 아래에 갈라진 흙빛이 함께 떠올랐다.
정미.
丁未.
네오가 그 빛을 보았다.
“정미가 반응한다.”
연이는 가슴을 눌렀다.
“이게 이번 글자지?”
“그래.”
네오는 무대 바닥을 보았다.
“丁은 작은 불씨다. 말, 노래, 창작, 표현의 불.”
“그럼 未는?”
“그 불이 꺼지지 않게 받치는 땅이다.”
네오는 모카의 노트를 가리켰다.
“식신은 단순히 말하는 힘이 아니다. 먹고, 만들고, 기르고, 남기는 힘이다. 초안을 쓰고, 다시 고치고, 몸으로 익히고, 결과로 세우는 힘.”
연이는 천천히 이해했다.
정화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불씨만 있으면 번쩍 타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금방 꺼질 수도 있다.
그 불이 오래 남으려면 바닥이 필요했다.
무대.
몸.
노트.
연습.
만든 것.
남겨진 것.
그게 未였다.
연이는 모카를 봤다.
“모카.”
“네.”
“노트 펴.”
모카가 멈칫했다.
“지금요?”
“응.”
“근데 글자가 흐려지고…….”
“그래도 펴.”
모카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펼쳤다.
안쪽의 글자들은 거의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운 줄.
덧쓴 단어.
구겨진 페이지.
손때 묻은 모서리.
그 모든 흔적은 남아 있었다.
연이는 말했다.
“네 노트는 그냥 노트가 아니야.”
모카가 연이를 바라봤다.
“그럼요?”
“네 목소리가 뿌리내린 땅이야.”
그 말에 모카의 손이 멈췄다.
노트 아래에서 아주 작은 흙빛이 피어올랐다.
未의 기운이었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좋다. 아직 살아 있다.”
까마귀가 그쪽을 보았다.
“쓸모없는 초안이다.”
그는 도장을 들어 올렸다.
“지워주마.”
허공에 붉은 글자가 찍혔다.
글자가 모카의 노트를 향해 날아왔다.
모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연이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 말, 안 받을게!”
가슴 안쪽의 [丁]이 튀었다.
작은 불꽃이 허공을 갈랐다.
치익.
[폐기]의 한 획이 탔다.
까마귀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씨가 있군.”
연이는 떨리는 앞발을 내렸다.
“있네.”
자기도 놀랐다.
방금 불이 나갔다.
말이 밖으로 나오자, 불씨가 따라 나갔다.
네오가 말했다.
“그게 丁이다.”
연이는 자기 앞발을 보았다.
작은 붉은 불꽃이 앞발 끝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짜릿했다.
“말이 진짜 불이 되는 거야?”
“정확히는 표현이 불씨가 되는 거다.”
“오.”
연이는 하늘의 [폐기]를 노려봤다.
“그럼 한 번 더.”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초안도 버릴 게 아니야.”
치익.
[폐기]의 두 번째 획이 탔다.
“틀린 줄도 연습한 흔적이고.”
치익.
“지운 문장도 다시 쓰려고 남긴 자리야.”
쨍!
[폐기]가 깨졌다.
모카의 노트가 다시 빛났다.
글자들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몇 줄은 선명해졌다.
모카의 눈이 커졌다.
“돌아왔어요…….”
“다 돌아온 건 아니야.”
연이는 하늘의 봉인진을 봤다.
“그러니까 더 만들어야 해.”
모카는 노트를 품에 안았다.
“어떻게요?”
연이는 무대를 바라봤다.
검은 봉인 아래에서 조명은 흐려지고 있었다.
DEST1NOVA는 움직이려 했지만, 표현의 경로가 막힌 채였다.
관객들은 소리 내지 못했다.
식신·상관의 섬 전체가 다음 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대.”
모카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무대 위에서 해야 해.”
“뭘요?”
“노래.”
모카가 얼어붙었다.
“누가요?”
연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나랑 너.”
모카의 귀가 천천히 내려갔다.
“네?”
“나도 믿기 싫어.”
연이는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분홍빛 꽃돼지.
짧은 앞발.
동그란 배.
머리 위 꽃.
“나도 이 비주얼로 아이돌 같은 걸 하게 될 줄 몰랐어.”
모카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아직 데뷔 전인데요.”
“나도 데뷔 전이야.”
“연이님은 아예 아이돌 지망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더 큰일이지.”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심각한 상황인데, 너무 말도 안 되는 조합이었다.
무명 수달 래퍼.
꽃돼지 임시 보컬.
그리고 옆에 서 있는 갈기 달린 가디언.
연이는 네오를 봤다.
“너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오는 바로 말했다.
“나는 하지 않는다.”
“왜?”
“나는 가디언이다.”
“그 말 진짜 많이 우려먹는다.”
“나는 길을 열겠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대에는 안 올라오겠다는 거지?”
“필요하면 오른다.”
“아. 결국 오른다는 뜻이네.”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카는 노트를 펼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노래를 어떻게 만들어요? 저 랩은 조금 하는데, 아이돌 노래는…….”
그때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딩.
연이와 모카가 동시에 무대 위를 봤다.
LUNE이었다.
그는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타 줄 하나를 아주 약하게 튕겼다.
소리는 작았고,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히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박자.
LUNE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틀려도 살려.
BAMBI가 한 손을 가슴에 얹었다.
그녀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입모양으로 천천히 말했다.
숨.
처음은 숨.
SOLV는 마이크를 모카 쪽으로 아주 작게 기울였다.
말은 없었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첫 줄.
RAVEN은 발끝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움직임은 막혀 있었지만, 바닥에 작은 원이 생겼다.
무대의 중심.
네오가 말했다.
“그들이 길을 알려주고 있다.”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첫 줄.
숨.
다음 박자.
무대의 중심.
모카는 노트를 바라봤다.
흐려진 글자들 사이에서 한 줄이 남아 있었다.
모카는 그 줄을 보고 작게 웃었다.
“맨날 이 줄만 남네요.”
연이는 말했다.
“그럼 그게 시작인가 보지.”
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후렴은요?”
연이는 잠깐 생각했다.
아이돌처럼 노래해야 한다면, 어렵고 멋진 말보다 모두가 따라 할 수 있는 말이어야 했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배운 것.
맛있으면 맛있다고 말하기.
좋으면 좋다고 웃기.
틀리면 다시 하기.
사라지기 전에 꺼내기.
연이는 천천히 말했다.
“꺼내.”
모카가 고개를 들었다.
“꺼내요?”
“응.”
연이는 가슴 안쪽의 [丁]을 느꼈다.
“말도, 마음도, 박자도, 맛도.”
그리고 [未]의 따뜻한 흙을 느꼈다.
“꺼내서 무대 위에 세우는 거야.”
모카의 눈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는 노트에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자가 자꾸 흐려졌다.
[무작]의 봉인이 노트를 누르고 있었다.
모카가 이를 악물었다.
“글씨가 안 남아요.”
연이는 노트를 보았다.
“그럼 말로 해.”
“말이 막히면요?”
“박자로 해.”
“박자가 막히면요?”
연이는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그럼 몸으로 해.”
모카는 눈을 깜빡였다.
“연이님, 지금 되게 상관의 섬 주민 같았어요.”
“칭찬이지?”
“네. 약간 무모한 칭찬이요.”
연이는 앞으로 걸어갔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는 검은 선이 생겨 있었다.
그 글자는 검고 차가웠다.
연이는 앞발을 들어 선 위에 올려놓았다.
찌릿.
표현을 막는 기운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왜 올라가야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 꼴로 무대에?
웃기잖아.
그 생각들이 밀려왔다.
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모카가 옆에 섰다.
그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같이 가요.”
연이는 모카를 봤다.
“너 무섭지?”
“네.”
“나도.”
“그래도 가죠?”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때 네오가 그들 앞에 섰다.
금빛 발톱이 빛났다.
“길을 열겠다.”
그가 검은 선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쨍!
[무대 접근 금지]에 금이 갔다.
하지만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까마귀가 차갑게 웃었다.
“힘으로는 무대에 오를 수 없다.”
네오는 이를 드러냈다.
“알고 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며 연이와 모카를 보았다.
“마지막은 너희가 해야 한다.”
연이는 모카를 봤다.
“한 줄.”
모카가 숨을 들이켰다.
검은 선 앞에서 그는 노트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모카.”
선이 흔들렸다.
“아직 무명.”
금이 조금 더 커졌다.
“그래도 오늘.”
모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내 첫 줄은 내가 써.”
쨍.
선이 절반 갈라졌다.
이번엔 연이 차례였다.
연이는 마이크도 없었다.
노래도 할 줄 몰랐다.
아이돌 무대 경험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 안쪽에서 멜로디 하나가 떠올랐다.
BAMBI가 준 숨.
LUNE이 준 다음 박자.
SOLV가 준 첫 줄.
RAVEN이 준 중심.
그리고 모카의 떨리는 목소리.
연이는 눈을 감았다.
처음 나온 소리는 작았다.
“꺼내.”
검은 선이 멈칫했다.
연이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선율을 얹었다.
“숨겨둔 마음도 꺼내.”
그 순간 [丁]의 불씨가 작게 빛났다.
모카가 박자를 얹었다.
“꺼내, 꺼내, 막힌 말도 다시 꺼내.”
연이는 이어 불렀다.
“맛을 잃은 하루에도, 작은 불을 켜.”
모카의 눈이 커졌다.
“후렴……!”
연이는 자기도 놀랐다.
노래가 아주 잘 나온 건 아니었다.
전문적인 보컬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소리가 세계 밖으로 나갔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표현이었다.
[무대 접근 금지]가 크게 갈라졌다.
쨍그랑!
검은 선이 깨졌다.
연이와 모카는 동시에 무대 위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무대 바닥이 따뜻하게 빛났다.
흙빛 원이 생겼다.
그 위에 작은 붉은 불꽃이 피어났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정미가 무대에 섰다.”
까마귀의 얼굴이 굳었다.
“불완전한 표현이다.”
연이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맞아.”
모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불완전해요.”
연이는 까마귀를 올려다봤다.
“근데 지금 나왔잖아.”
모카가 노트를 펼쳤다.
이번에는 글자가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다음 줄을 적었다.
그 글자가 무대 바닥으로 떨어졌다.
흙빛 원이 더 넓어졌다.
연이는 다시 노래했다.
“꺼내, 꺼내, 작은 소리도 꺼내.”
모카가 랩을 받았다.
“무명이어도 이름은 있어, 떨려도 내 박자는 있어, 틀린 줄 위에 다시 써, 오늘 내 무대는 여기서 켜.”
관객석에서 아주 작은 반응이 일어났다.
한 아이가 손을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끝에서 작은 색이 피어났다.
다른 관객이 눈을 깜빡였다.
회색으로 굳었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음식 거리의 달빛 크림빵에서 아주 희미한 냄새가 났다.
연이는 그것을 느꼈다.
“돌아오고 있어.”
네오가 말했다.
“아직 약하다. 하지만 시작됐다.”
모카가 가사 노트를 끌어안고 말했다.
“연이님, 더 해야 해요.”
“응.”
연이는 무대 위를 보았다.
DEST1NOVA 멤버들은 아직 완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살아나고 있었다.
SOLV는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BAMBI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LUNE의 손가락은 다음 코드를 찾고 있었다.
RAVEN의 발끝은 바닥에서 떨어지려 했다.
연이는 심장이 뛰었다.
이제 혼자 노래하는 게 아니었다.
자기 목소리와 모카의 랩이, 멈춰 있던 DEST1NOVA의 무대를 다시 두드리고 있었다.
까마귀는 붉은 도장을 들어 올렸다.
“그만.”
하늘의 [절대표현봉인]이 더 낮게 내려왔다.
공중에 숫자가 떠올랐다.
연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절반에 가까웠다.
까마귀가 말했다.
“불완전한 노래는 지워진다.”
그가 도장을 찍었다.
검은 글자가 연이와 모카를 향해 날아왔다.
모카의 얼굴이 굳었다.
“무가치…….”
그 말은 그에게 너무 강했다.
무명.
데뷔 전.
부족한 랩.
부족한 기술.
연이는 모카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모카!”
그러나 [무가치]는 이미 모카의 가슴 앞에 닿고 있었다.
모카의 노트가 다시 흐려졌다.
연이의 노래도 순간 막혔다.
가슴 안쪽의 [丁] 불씨가 흔들렸다.
까마귀가 차갑게 말했다.
“너희의 무대는 완성되지 않았다.”
연이는 앞발에 힘을 줬다.
정말 그랬다.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 어설펐다.
아이돌처럼 보이기엔 너무 부족했다.
하나는 꽃돼지.
하나는 무명 수달.
노래도, 랩도, 동작도 불완전했다.
까마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때 무대 바닥의 [未]가 작게 울렸다.
따뜻한 흙.
초안이 쌓이는 곳.
불완전한 것이 버려지지 않고 익는 곳.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맞아.”
까마귀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이는 마이크도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완성 안 됐어.”
[무가치]가 멈췄다.
모카가 연이를 봤다.
연이는 계속 말했다.
“근데 완성 안 됐다고 가치 없는 건 아니야.”
[丁]이 다시 빛났다.
“초안도 무대의 시작이고.”
모카의 노트가 흔들렸다.
“떨리는 첫 줄도 노래의 시작이야.”
[무가치]의 한 획이 불탔다.
치익.
연이는 모카를 향해 손, 아니 앞발을 내밀었다.
“모카. 다음 줄.”
모카의 눈이 떨렸다.
“저…….”
“완성하려고 하지 마.”
연이는 웃었다.
“일단 꺼내.”
모카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완성 전이라도, 난 여기 있어.”
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초안이어도, 난 안 지워.”
노트의 글자가 돌아왔다.
모카가 랩을 이어갔다.
“틀린 라임, 흔들린 숨, 그래도 내 안에 살아 있는 꿈, 가치 없단 말에 안 팔아, 내 첫 줄은 내가 지켜 나가.”
쨍!
[무가치]가 갈라졌다.
연이의 [丁] 불씨가 다시 피어났다.
[未]의 흙빛 무대가 더 넓어졌다.
관객석에서 작은 박수가 들렸다.
짝.
아주 작았다.
하지만 진짜 박수였다.
연이는 그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박수…….”
짝.
다른 관객도 손을 쳤다.
짝.
또 다른 관객.
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음식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살아났다.
LUNE의 기타 줄 하나가 떨렸다.
딩.
BAMBI의 목에서 작은 숨소리가 나왔다.
SOLV의 입술이 움직였다.
RAVEN의 발끝이 바닥을 밀었다.
까마귀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불완전한 것들이…….”
연이는 모카와 눈을 마주쳤다.
“한 번 더.”
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연이가 불렀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도 꺼내.”
모카가 랩을 얹었다.
“작아도 내 목소리, 흔들려도 내 story.”
연이가 다시 노래했다.
“맛을 잃은 밤에도, 작은 불을 켜.”
모카가 이어갔다.
“말라버린 무대 위, 내 첫 줄을 세워.”
둘의 목소리가 겹쳤다.
전문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 순간 무대 위에 붉고 따뜻한 원이 펼쳐졌다.
두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아직 완전히 회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했다.
丁은 연이의 목소리 끝에서 피어났고, 未는 모카의 노트와 무대 바닥에서 받쳐주고 있었다.
식신의 기능.
만들고.
먹이고.
남기고.
다시 자라게 하는 힘.
처음으로 그 힘이 깨어나고 있었다.
네오가 무대 아래에서 말했다.
“연이.”
“응.”
“계속해라. 멈추면 꺼진다.”
연이는 까마귀를 노려봤다.
까마귀는 다시 도장을 들고 있었다.
[절대표현봉인]은 아직 절반 가까이 내려온 상태였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하지만 연이는 더 이상 무대 아래에 있지 않았다.
모카도 더 이상 관객이 아니었다.
둘은 무대 위에 있었다.
불완전한 노래와 불완전한 랩으로.
하지만 분명 자기 목소리로.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모카.”
“네.”
“우리 지금 아이돌 같아?”
모카는 잠깐 고민했다.
“솔직히 아직은 축제 장기자랑에 가까운데요.”
연이는 피식 웃었다.
“정확해서 아프네.”
모카도 웃었다.
“근데.”
그는 노트를 펼쳤다.
“후렴은 조금 아이돌 같아요.”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늘의 봉인진이 다시 움직였다.
까마귀가 차갑게 말했다.
“다음에는 완전히 지워주마.”
숫자가 절반을 넘었다.
연이는 마이크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모카가 옆에 섰다.
그리고 둘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가, 무대 위에서 꺼지지 않기 위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