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첫 줄의 무대
Code Destiny · 8,222자
제12화. 첫 줄의 무대
금빛이 무대를 갈랐다.
네오의 발톱 끝에서 뻗어나간 빛은 검은 봉인들을 한순간에 밀어냈다.
그리고 까마귀가 찍어낸 편인도식의 붉은 도장들.
그 모든 글자에 금이 갔다.
쨍.
쨍.
쨍.
하지만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었다.
찢어진 틈이 생겼을 뿐이었다.
네오의 갈기는 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작은 몸 뒤로 거대한 사자의 그림자가 떠올라 있었다.
그림자는 무대 위를 덮을 만큼 컸다.
갈기는 태양처럼 타올랐고, 눈동자는 오래된 별처럼 빛났다.
모카는 노트를 품에 안은 채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저게…… 진짜 네오님……?”
연이도 말없이 네오를 바라봤다.
평소의 네오는 건방지고, 말이 딱딱하고, 가끔은 귀여운 척을 숨기지 못하는 작은 사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네오는 그냥 작은 동물이 아니었다.
사주의 강이 잠깐 몸을 빌려 무대 위에 선 것 같았다.
까마귀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너는 나서면 안 된다.”
네오는 낮게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금빛 발톱을 더 깊게 내리그었다.
무대 위에 닫혀 있던 길이 갈라졌다.
“그러니 오래 버티지 않는다.”
공중에 금빛 문장이 떠올랐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3분?”
네오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안에 해라.”
“뭘?”
“너희가 하려던 것.”
네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표현해라.”
그 말이 떨어지자, 연이의 목을 조이던 [무언]에 금이 갔다.
모카의 노트를 덮고 있던 [무명]도 잠깐 멈췄다.
사라져가던 마지막 한 줄이 희미하게 살아났다.
모카는 그 글자를 보고 숨을 삼켰다.
“남아 있어…….”
연이는 가슴 안쪽을 느꼈다.
꺼질 듯 흔들리던 [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그 아래에서는 [未]의 흙빛이 천천히 무대 바닥을 붙잡았다.
정미.
丁未.
불씨와 그 불씨가 설 자리.
네오는 금빛 틈을 버티며 말했다.
“연이. 모카.”
“응.”
“편인도식은 생각과 평가로 식신을 먹어치우는 힘이다.”
까마귀의 도장이 다시 붉게 빛났다.
네오가 낮게 이어 말했다.
“잘하려고 하면 잡아먹힌다.”
모카의 손이 떨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네오의 대답은 짧았다.
“꺼내라.”
연이는 모카를 보았다.
“들었지?”
모카가 노트를 꽉 잡았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꺼내.”
모카는 눈을 감았다.
무대 위는 아직 반쯤 회색이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지 못했다.
함성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은 돌아오고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눈빛.
응원하고 싶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 눈빛.
맛과 색과 박자를 잃어버린 채, 누군가 다시 시작해주기를 기다리는 눈빛.
모카는 그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모카.”
그 한 줄은 랩이라기보다 자기소개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노트 위의 글자가 더 선명해졌다.
모카는 한 번 더 말했다.
“나는 모카.”
연이가 옆에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선율을 얹었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목소리는 여전히 조금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모카가 박자를 잡았다.
“나는 모카, 아직 무명, 그래도 이름은 안 지워. 첫 줄 하나 남았다면, 다음 줄은 다시 써.”
그 순간 [未]의 흙빛이 무대 바닥에 퍼졌다.
모카의 노트에서 글자 하나가 떨어졌다.
그 글자는 흙 알갱이가 되어 무대 위에 내려앉았다.
또 하나.
또 하나.
지워졌던 흔적들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 쓴 글자들이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미완성의 흙.
초안의 땅.
그 위에 연이의 [丁] 불씨가 내려앉았다.
작은 불꽃이 흔들렸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까마귀가 도장을 찍었다.
쾅.
붉은 글자가 둘을 향해 날아왔다.
연이는 마이크 앞에 섰다.
정확히는 마이크를 앞발로 꽉 눌렀다.
“미숙한 거 맞아.”
[미숙]이 멈칫했다.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근데 미숙해서 지금 하는 거야.”
불씨가 커졌다.
“안 하면 계속 미숙하니까.”
[미숙]의 한 획이 불탔다.
치익.
모카가 이어받았다.
“틀린 박자 위에 다시, 흔들린 숨 위에 다시, 오늘 못하면 내일도 해, 그래도 첫 줄은 여기 남기.”
[미숙]이 갈라졌다.
그 순간 LUNE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직 기타 소리는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줄 하나가 떨렸다.
딩.
정말 작은 소리였다.
LUNE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웃었다.
입은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살렸다.
LUNE은 기타 줄을 다시 튕겼다.
딩.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했다.
그 소리가 연이와 모카의 어설픈 후렴 사이로 들어왔다.
틀린 코드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틀린 코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LUNE은 그것을 바로 다음 박자로 바꿨다.
딩딩.
딩.
멜로디가 생겼다.
모카의 눈이 커졌다.
“LUNE 님……!”
LUNE은 아직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타로 대답했다.
다음 박자.
연이는 그 소리를 붙잡았다.
“꺼내, 꺼내, 작은 소리도 꺼내.”
LUNE의 기타가 뒤를 받쳤다.
곡이 아주 조금 아이돌 노래처럼 변했다.
관객들의 손끝이 떨렸다.
아직 박수는 치지 못했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색이 돌아왔다.
까마귀가 이를 악물었다.
“소용없다.”
그는 다시 도장을 찍었다.
음식 거리의 냄새가 다시 죽어갔다.
달빛 크림빵은 회색이 되었고, 수프는 김을 잃었다.
BAMBI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아직 노래하지 못했다.
연이는 BAMBI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BAMBI!”
BAMBI가 연이를 보았다.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맛이 사라지는 거, 진짜 싫어!”
까마귀가 순간 멈칫했다.
연이는 아주 진지했다.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나는 건, 마음이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거랑 똑같잖아.”
[丁]의 불씨가 따뜻하게 흔들렸다.
“맛있으면 맛있다고 해야지.”
모카가 바로 받았다.
“한입 먹고 살아나는 맛, 숨 막힌 날에 필요한 밥, 말 못 해도 몸은 알아, 따뜻한 건 마음을 살려.”
그 순간 BAMBI가 숨을 들이켰다.
목을 감싸던 검은 봉인에 금이 갔다.
쨍.
BAMBI의 첫 음은 노래라기보다 숨이었다.
“아…….”
하지만 그 숨에 온기가 있었다.
회색으로 굳었던 달빛 크림빵에서 다시 희미한 냄새가 났다.
BAMBI가 눈을 감고 노래했다.
“괜찮아, 처음 숨도 노래가 돼. 맛을 잃은 마음에도, 따뜻한 빛은 돌아와.”
그 순간 [무미]가 갈라졌다.
달빛 크림빵의 단 냄새가 돌아왔다.
구름솜 튀김이 다시 고소해졌다.
수프에 김이 올랐다.
연이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 돌아왔다.”
그 한마디에 [丁未]가 더 선명해졌다.
까마귀가 뒤로 물러났다.
“식신이…….”
네오가 이를 악물고 금빛 틈을 버텼다.
“그래. 만들고 먹이고 살리는 힘이다.”
까마귀의 붉은 눈이 네오를 향했다.
“네가 길을 열었군.”
네오는 차갑게 대답했다.
“길은 열었을 뿐이다.”
그의 시선이 연이와 모카에게 향했다.
“걷는 건 저들이다.”
그 말에 연이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모카도 노트를 더 세게 잡았다.
노트의 글자들이 이제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니, 예전 문장이 그대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줄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에서.
바로 이 순간.
SOLV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의 마이크에는 아직 검은 금이 있었다.
까마귀가 바로 도장을 찍었다.
SOLV의 입술이 다시 막히려 했다.
모카가 앞으로 나섰다.
“아니!”
모카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그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SOLV 형의 말은 길이랬어!”
모카의 노트에서 은빛 글자가 떠올랐다.
그가 처음 SOLV 존에서 들었던 문장.
모카가 외쳤다.
“그럼 지금은 길이야!”
연이가 바로 후렴을 올렸다.
“꺼내, 꺼내, 막힌 길도 다시 꺼내.”
모카가 랩을 얹었다.
“닫힌 문 위에 첫 글자, 막힌 목 위에 내 박자, 무명이라도 말할 수 있어, 내 이름으로 길을 그어.”
그 순간 SOLV의 눈빛이 번쩍였다.
마이크의 검은 금이 깨졌다.
쨍!
SOLV의 랩이 무대 위를 갈랐다.
“First line, break the frame, 이름 없는 밤도 make a name, 삼킨 말이 길이 될 때, 무대는 다시 숨을 쉬네.”
관객석의 눈빛이 살아났다.
아직 함성은 못 나왔다.
하지만 입술들이 움직였다.
소리 없는 외침.
그 움직임만으로도 무대는 더 밝아졌다.
까마귀는 다급하게 도장을 찍었다.
RAVEN의 발이 다시 바닥에 묶였다.
이번엔 더 강했다.
그림자가 검은 사슬처럼 발목을 감았다.
RAVEN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무대 바닥이 그를 붙잡았다.
까마귀가 말했다.
“몸짓은 말보다 위험하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니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RAVEN의 그림자가 완전히 굳었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RAVEN까지 막히면…….”
네오가 낮게 말했다.
“무대의 몸이 닫힌다.”
연이는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짧은 다리.
둥근 몸.
꽃돼지.
방금 전까지 가장 민망했던 몸.
하지만 RAVEN 존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무대에서는 멋있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게 먼저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짧은 다리로 한 걸음.
통.
바닥이 반응했다.
다시 한 걸음.
딩.
흔들리는 몸.
어설픈 박자.
아이돌 댄스라고 하기엔 너무 귀여운 움직임.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연이는 RAVEN을 보며 말했다.
“몸도 말한다며.”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그럼 내 몸도 말하게 해볼게.”
그녀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통.
딩.
통.
딩.
식신·상관의 섬 바닥이 다시 반응했다.
처음 이 섬에 도착했을 때처럼.
통딩통딩.
연이의 걸음은 리듬이 되었다.
모카가 바로 그 박자를 잡았다.
“통딩, 통딩, 꽃돼지 step in, 짧은 다리라도 멈추지 않지!”
연이는 순간 모카를 봤다.
“너 방금 꽃돼지 스텝이라고 했어?”
“죄송해요! 라임 때문에!”
“나중에 이야기하자!”
하지만 박자는 살아났다.
LUNE이 기타로 그 리듬을 받았다.
BAMBI가 숨을 얹었다.
SOLV가 랩으로 밀었다.
그리고 RAVEN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검은 사슬에 금이 갔다.
RAVEN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쿵.
첫 박자.
쿵.
두 번째 박자.
그리고 세 번째.
RAVEN의 몸이 회전했다.
검은 사슬이 꽃잎처럼 흩어졌다.
그가 무대 중앙을 가로질렀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춤은 분명히 외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움직인다.
[무동]이 깨졌다.
쨍그랑!
네 명이 돌아왔다.
SOLV.
BAMBI.
LUNE.
RAVEN.
DEST1NOVA가 다시 완성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연이와 모카의 어설픈 후렴이 있었다.
어설퍼서 시작된 노래.
미완성이라서 살아남은 무대.
까마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완전한 것들이…… 어떻게…….”
연이는 숨을 헐떡이며 마이크 앞에 섰다.
“계속하니까.”
모카가 노트를 펼쳤다.
이제 노트는 하얗지 않았다.
새로운 가사로 가득 차고 있었다.
“망해도 다시 쓰고, 틀려도 다시 부르고, 막혀도 다시 두드리면, 처음은 결국 길이 돼.”
그 순간 무대 위에 거대한 글자가 떠올랐다.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丁의 불꽃은 작지만 선명했다.
未의 흙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작은 불이 흙 위에 서자, 무대 전체가 하나의 촛불처럼 빛났다.
네오가 무대 아래에서 무릎을 살짝 굽혔다.
금빛 틈을 유지하느라 힘이 빠진 듯했다.
연이는 그것을 보았다.
“네오!”
네오는 숨을 가다듬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까마귀는 마지막으로 도장을 높이 들었다.
도장은 검게 변해 있었다.
붉은 도장이 아니라, 이제는 먹구름 같은 검은 도장이었다.
그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네오의 눈이 굳었다.
“온다.”
까마귀가 외쳤다.
“생각이 창작을 삼키고, 평가가 목소리를 삼키며, 두려움이 무대를 삼킨다.”
검은 도장이 하늘에 찍혔다.
거대한 검은 문장이 내려왔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력.
연이의 [丁未]가 흔들렸다.
모카의 노트가 다시 떨렸다.
DEST1NOVA의 악기와 목소리와 몸도 동시에 눌렸다.
까마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라져라!”
그 말에 무대 전체가 굳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그 문장이 너무 무거웠다.
모카의 랩도.
연이의 노래도.
LUNE의 기타도.
BAMBI의 숨도.
SOLV의 첫 줄도.
RAVEN의 발끝도.
모두 조금씩 흔들렸다.
세상에 완벽한 표현은 없었다.
그렇다면 전부 사라져야 하는가.
그 질문이 무대 전체를 짓눌렀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SOLV가 낮게 말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BAMBI가 이어 불렀다.
“따뜻할 수 있어.”
LUNE이 기타를 튕겼다.
“틀려도.”
RAVEN이 발을 디뎠다.
쿵.
“움직일 수 있다.”
모카가 눈물을 닦았다.
“무명이어도.”
연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일 수 있어.”
그 순간 모두의 기운이 하나로 이어졌다.
DEST1NOVA의 무대.
모카의 첫 줄.
연이의 정미.
네오가 열어둔 금빛 길.
전부 한곳에 모였다.
연이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다 같이.”
SOLV가 마이크를 들었다.
BAMBI가 숨을 열었다.
LUNE이 기타를 높이 들었다.
RAVEN이 몸을 낮췄다.
모카가 노트를 펼쳤다.
네오는 금빛 틈을 마지막으로 넓혔다.
그리고 모두가 동시에 시작했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SOLV의 랩이 들어왔다.
“완벽 전의 first line, 흔들려도 still shine.”
BAMBI의 노래가 덮었다.
“작은 숨도 노래가 돼, 따뜻하면 살아 있어.”
LUNE의 기타가 틀을 부쉈다.
딩!
“틀린 코드도 우리 거야!”
RAVEN의 춤이 봉인의 선을 갈랐다.
쿵.
쿵.
쿵.
모카가 외쳤다.
“나는 모카, 아직 무명, 그래도 내 이름 안 지워!”
연이가 마지막으로 노래했다.
“맛을 잃은 밤에도, 작은 불을 켜.”
그 순간 [丁未]가 완전히 빛났다.
작은 불이 흙 위에서 타올랐다.
그 불은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번졌다.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관객석에서 음식 거리로.
음식 거리에서 말놀이 골목으로.
말놀이 골목에서 섬 전체로.
맛이 돌아왔다.
색이 돌아왔다.
몸이 돌아왔다.
글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관객들의 손이 서로 닿았다.
짝!
첫 번째 박수.
이번엔 막히지 않았다.
짝짝짝!
박수가 번졌다.
함성도 돌아왔다.
“DEST1NOVA!”
“모카!”
“연이!”
“네오!”
네오는 그 함성을 들을 여유도 없이 금빛 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까마귀의 [편인도식] 문장은 무대 위에서 불타기 시작했다.
치익.
치이익.
완성되지 않은 모든 표현을 삭제한다.
그 문장이 [丁未]의 불에 타들어갔다.
연이는 까마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삭제 안 돼.”
모카가 이어 말했다.
“아직 쓰는 중이니까.”
SOLV가 낮게 랩했다.
“미완성이라서 다음 줄이 있고.”
BAMBI가 노래했다.
“다음 줄이 있어서 살아 있어.”
LUNE이 웃었다.
“그리고 틀리면 또 살리면 돼!”
RAVEN이 발을 찍었다.
“멈추지 않으면 무대다.”
[편인도식]이 산산조각났다.
까마귀의 검은 도장이 깨졌다.
쨍그랑!
까마귀는 뒷걸음질쳤다.
그의 연미복이 검은 깃털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것들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사라지지 않는 거지…….”
연이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완성하려고 계속하니까.”
까마귀의 붉은 눈이 흔들렸다.
“계속…….”
그의 몸이 무너졌다.
검은 깃털들이 무대 위로 흩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깃털들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따뜻한 불빛에 녹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작은 깃털 하나가 남았다.
그 깃털은 이상하게도 완전히 검지 않았다.
끝부분에 희미한 회색빛이 있었다.
까마귀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렸다.
“표현은…… 두려운 것이다…….”
연이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응.”
무대가 조용해졌다.
“그래도 해야 해.”
그 순간 마지막 깃털도 사라졌다.
공중에 글자가 떠올랐다.
연이는 그 글자를 바라봤다.
가슴 안쪽으로 [丁未]가 스며들었다.
따뜻했다.
작은 불과 단단한 흙.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는 힘.
초안이 작품이 되도록 기다리는 힘.
맛을 되찾고, 몸을 움직이고, 말을 꺼내는 힘.
연이는 가슴을 눌렀다.
“정미…….”
머리 위 꽃에 작은 붉은 불빛이 붙었다.
그리고 꽃 아래로 따뜻한 흙빛 무늬가 생겼다.
모카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하얗게 지워졌던 페이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 빈 페이지 위에 새로운 첫 줄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모카는 그것을 보고 한참 울었다.
연이는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좋은 제목이네.”
모카는 훌쩍이며 웃었다.
“그러게요.”
그때 네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니, 정확히는 네 발 중 하나가 살짝 무너졌다.
연이는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네오!”
네오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거대한 사자의 그림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다시 작은 사자.
아니, 갈기 달린 고양이처럼 보이는 네오가 무대 위에 앉아 있었다.
연이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괜찮아?”
네오는 고개를 들었다.
“괜찮다.”
“거짓말하지 마.”
“가디언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그 말 하는 애들이 꼭 쓰러지던데?”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네오님…… 방금 그 모습은 뭐였어요?”
네오의 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연이도 바로 물었다.
“맞아. 너 아까 되게 컸어.”
“착각이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달 조명보다 컸는데 착각은 무리야.”
모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들도 다 봤어요.”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무대 연출이다.”
연이와 모카가 동시에 말했다.
“거짓말.”
네오는 시선을 피했다.
그때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DEST1NOVA!”
“모카!”
“연이!”
그리고 조금 뒤.
“네오!”
네오의 귀가 다시 미세하게 움직였다.
연이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좋아하지 마.”
“안 했다.”
“했다.”
“무대 상황이 정리됐는지 확인한 것뿐이다.”
“귀로?”
“그렇다.”
연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 위, DEST1NOVA 멤버들이 다가왔다.
SOLV는 모카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은 첫 줄이었다.”
모카는 또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저…… 진짜 괜찮았나요?”
SOLV가 말했다.
“괜찮은 정도는 넘었다.”
모카는 그대로 굳었다.
LUNE이 기타를 들고 웃었다.
“우리 후렴도 생겼잖아. 꺼내, 꺼내!”
BAMBI가 연이를 보며 말했다.
“연이의 목소리도 좋았어. 떨렸지만, 그래서 더 진짜였어.”
연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돌 칭찬은 부담이 크네.”
RAVEN은 짧게 말했다.
“무대 체질이다.”
“아니라니까요.”
네오는 옆에서 말했다.
“관객 반응은 좋았다.”
연이는 바로 그를 봤다.
“너도 즐겼잖아.”
“임무 수행이었다.”
“거대한 사자 그림자까지 띄우는 임무 수행?”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연이는 마음속으로 표시해두었다.
네오 정체 수상함.
매우 수상함.
하지만 지금은 추궁할 때가 아니었다.
식신·상관의 섬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음식 냄새가 돌아왔고, 조명은 다시 색을 찾았다.
아이들은 웃었고,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말놀이 골목에서는 벌써 방금 무대를 흉내 내고 있었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모카는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제 흑역사가 섬 전체 후렴이 됐어요.”
연이는 웃었다.
“축하해. 밈이 됐네.”
“이거 좋은 거죠?”
“대체로.”
네오는 조용히 무대 위의 마지막 깃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조금 어두웠다.
연이는 그것을 보았다.
“네오.”
“왜.”
“그 까마귀, 완전히 끝난 거야?”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까마귀는 사라졌다.”
“그 말은 흑막은 안 끝났다는 뜻이지?”
네오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연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숨기는 거 많다.”
네오는 낮게 말했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
“그 말 제일 수상한 거 알지?”
“알고 있다.”
연이는 네오를 바라봤다.
이 작은 사자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다.
사주의 강.
흩어진 글자.
봉인자들.
그리고 아까 무대 위에서 드러난 거대한 사자의 그림자.
궁금한 건 많았다.
하지만 식신·상관의 섬에서 배운 것도 있었다.
모든 말을 한 번에 꺼낼 필요는 없다는 것.
초안이 있고, 다음 줄이 있고, 언젠가 완성될 문장이 있다는 것.
연이는 일단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말했다.
“다음 줄에서 물어볼게.”
네오가 그녀를 보았다.
“무슨 뜻이지?”
“지금은 넘어가 준다는 뜻이야.”
“그렇군.”
“근데 안 까먹을 거야.”
“그럴 것 같았다.”
무대 위의 조명이 따뜻하게 내려왔다.
정미의 불씨가 연이의 가슴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식신·상관의 섬은 다시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소란이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말할 수 있다는 것.
만들 수 있다는 것.
맛있다고 웃을 수 있다는 것.
틀려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생각보다 쉽게 빼앗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연이는 작은 앞발을 가슴에 올렸다.
“꺼내라…….”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주문이네.”
모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후렴이에요.”
연이는 웃었다.
“그래. 우리 후렴.”
그리고 그 순간.
식신·상관의 섬의 하늘에 다시 음악이 올랐다.
이번엔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