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맛있는 작별 인사
Code Destiny · 7,298자
제13화. 맛있는 작별 인사
식신·상관의 섬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 시끄러움은 전과 달랐다.
단순히 소리가 많다는 뜻이 아니었다.
돌아온 소리였다.
잃어버릴 뻔했다가 다시 찾아온 웃음.
막힐 뻔했다가 다시 터진 박수.
사라질 뻔했다가 다시 살아난 노래.
회색으로 굳어가던 거리에는 색이 돌아왔고, 냄새를 잃었던 음식들은 다시 따뜻한 김을 피워 올렸다.
달빛 크림빵은 다시 부풀었다.
구름솜 튀김은 다시 바삭한 향을 냈다.
노을빛 탕후루는 반짝이며 굳었고, 리듬 팬케이크 가게 앞에서는 아이들이 뒤집개를 들고 줄을 섰다.
“하나, 둘, 셋!”
휙.
팬케이크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짝짝짝.
이번에는 박수가 제대로 났다.
아까 봉인에 막혀 허공에서 멈추던 손들이 이제는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섬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들렸다.
연이는 무대 옆 계단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계단에 앉으려고 했는데, 다리가 짧아 자연스럽게 털썩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녀는 아직도 조금 멍했다.
“나 진짜 무대 했네.”
말로 꺼내자 다시 민망해졌다.
옆에 있던 모카가 두 손으로 가사 노트를 꼭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너는 래퍼니까 언젠가 했을 일이잖아.”
“연이님도 했잖아요.”
“나는 사고였어.”
“사고치고는 후렴이 너무 좋았어요.”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외쳤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연이는 두 앞발로 얼굴을 감쌌다.
“아…… 내 흑역사가 후렴이 됐다.”
모카는 조용히 말했다.
“저도 제 첫 줄이 섬 전체에 퍼졌어요.”
“부끄럽지?”
“엄청요.”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웃었다.
부끄러운데 싫지는 않았다.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표현이란 건 무섭고, 민망하고, 평가받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서 꺼낸 말들이 누군가의 입에 다시 불리는 것을 보니, 그것은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내가 낸 작은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닿는 것.
내가 쓴 첫 줄이 누군가의 장난이 되고, 응원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
그게 조금 부끄럽고.
조금 따뜻했다.
그때 무대 아래쪽에서 주민들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몇 명뿐이었다.
달빛 크림빵 가게의 곰.
리듬 팬케이크 가게의 두더지.
말놀이 골목의 붉은 여우와 초록 앵무새.
그다음에는 악기 장인들, 음식 부스 주인들, 아이들, 관객들까지 하나둘 모여들었다.
연이는 그들을 보고 살짝 굳었다.
“왜, 왜 다들 오시지?”
모카도 바짝 긴장했다.
“혹시 후렴 저작권 문제?”
“그게 지금 제일 먼저 떠올라?”
“제가 무명이라 권리에 민감해요.”
달빛 크림빵 가게 곰이 앞으로 나왔다.
커다란 앞발에는 갓 구운 빵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고맙네.”
연이는 눈을 깜빡였다.
“네?”
“이 섬의 맛을 되찾아줘서.”
곰은 따뜻한 달빛 크림빵 하나를 연이에게 내밀었다.
“아까 첫 입은 선물이었지. 이번 건 감사 인사일세.”
연이는 조심스럽게 빵을 받았다.
따뜻했다.
이번에는 냄새도 났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아주 약간 짭짤한 별소금 향.
연이는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눈이 커졌다.
맛이 더 진했다.
아까 먹었던 것보다 더 따뜻했다.
빵 안의 크림이 부드럽게 퍼졌고, 그 안쪽에서 작은 불씨 같은 온기가 올라왔다.
연이는 작게 말했다.
“와…….”
곰이 웃었다.
“표현이 돌아오면 맛도 깊어지지.”
“이건 진짜 사과가 아니라 보상인데요.”
“그렇게 받아도 좋네.”
옆에서 두더지가 리듬 팬케이크 접시를 내밀었다.
“이건 무대 축하 팬케이크예요.”
팬케이크 위에는 작은 글자가 시럽으로 적혀 있었다.
모카가 그걸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저…… 이거 먹어도 돼요?”
두더지가 웃었다.
“먹으라고 만든 거죠.”
모카는 한입 먹었다.
그리고 눈이 커졌다.
“박자가 나요.”
“네?”
“입안에서 박자가 나요.”
모카는 잠시 씹다가, 갑자기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탁.
탁탁.
탁.
“이거 후렴으로 쓸 수 있어요.”
연이는 웃었다.
“너 진짜 래퍼 맞구나. 먹으면서도 곡 생각하네.”
모카는 팬케이크를 꼭 쥐었다.
“이건 영감이에요.”
“팬케이크 영감.”
“진지해요.”
말놀이 골목의 붉은 여우가 다가왔다.
“꽃돼지 친구.”
연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여우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 연이.”
“좋아. 빠른 수정 마음에 들어.”
여우는 웃으며 작은 사탕 주머니를 건넸다.
“이건 보컬 사탕이야. 먹으면 잠깐 목이 맑아져.”
연이는 경계했다.
“혹시 먹으면 다시 무대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죠?”
초록 앵무새가 옆에서 말했다.
“아니. 하지만 노래방 가고 싶어질 수는 있어.”
“위험하네.”
네오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받아둬라.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이는 사탕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아이템 같아.”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
“오.”
모카가 노트에 적었다.
연이는 그걸 보고 물었다.
“지금 뭐 해?”
“기록이요.”
모카는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앞으로도?”
모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직 겁도 있고, 긴장도 있었다.
하지만 식신·상관의 섬에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그저 꿈만 말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한 번 무대에 섰고, 한 번 자기 이름을 지킨 얼굴이었다.
모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이님은 다음 섬으로 가는 거죠?”
연이는 빵을 먹다 멈췄다.
“응.”
네오가 말했다.
“가야 한다. 아직 흩어진 글자가 남아 있다.”
모카는 노트를 끌어안았다.
“그럼 저도…….”
그때 무대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지.”
SOLV였다.
DEST1NOVA 멤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SOLV는 은빛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BAMBI는 따뜻한 수프 컵을 들고 있었다.
LUNE은 기타를 등에 멘 채 계속 코드를 튕기고 있었고, RAVEN은 말없이 뒤따라왔다.
모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 팬케이크 접시가 흔들렸다.
“데, 데, 데…….”
연이가 옆에서 말했다.
“DEST1NOVA.”
“맞아요. 그거요.”
SOLV는 모카 앞에 섰다.
“좋은 첫 줄이었다.”
모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진짜요?”
“그래.”
SOLV는 모카의 가사 노트를 보았다.
“사라질 뻔했는데 지켰지.”
모카는 노트를 품에 안았다.
“혼자 지킨 건 아니에요.”
“그래서 더 좋다.”
SOLV는 짧게 말했다.
“무대는 혼자 찢는 게 아니라, 같이 버티는 거니까.”
모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LUNE이 기타를 튕기며 웃었다.
“우리 rookie 오늘 진짜 데뷔한 거 아냐?”
모카가 바로 손을 저었다.
“아니요! 저는 아직…….”
BAMBI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직이라고 해도 괜찮아. 아직은 부끄러운 말이 아니라, 다음이 있다는 말이니까.”
그 말에 모카가 멈췄다.
“다음이 있다…….”
RAVEN이 조용히 말했다.
“연습해.”
모카는 바로 허리를 폈다.
“네!”
RAVEN은 짧게 덧붙였다.
“도망치지 말고.”
모카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네.”
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모카, 오늘 인생 멘토 다 만났네.”
모카는 거의 울면서 말했다.
“저 오늘 죽어도 돼요.”
연이와 네오가 동시에 말했다.
“안 돼.”
모카가 깜짝 놀랐다.
연이가 말했다.
“너 아직 다음 줄 써야 하잖아.”
네오도 말했다.
“그리고 기술 연습이 필요하다.”
모카는 눈물범벅 얼굴로 웃었다.
“네. 살게요.”
BAMBI가 연이에게 수프 컵을 내밀었다.
“이건 너에게.”
연이는 컵을 받아 들었다.
“또 마음 데우는 수프인가요?”
“이번 건 무대 뒤풀이 수프.”
“그런 것도 있어요?”
“식신·상관의 섬에는 있어.”
연이는 한입 마셨다.
맛은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고소했고, 끝에는 살짝 매콤했다.
마치 긴장했던 마음을 풀어주면서도, 다음 길로 갈 힘을 주는 맛이었다.
연이는 눈을 감았다.
“이건…… 쉬었다가 다시 가는 맛이네요.”
BAMBI가 미소 지었다.
“맞아.”
LUNE은 작은 피크 하나를 연이에게 내밀었다.
피크는 달빛 모양이었다.
“이건 선물.”
연이는 앞발로 받아 들었다.
“나는 기타 못 치는데?”
“괜찮아. 틀린 박자를 살리고 싶을 때 써.”
“이게 그런 기능이 있어?”
“있을지도?”
“있을지도라니.”
LUNE은 웃었다.
“식신·상관의 섬 아이템은 대체로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져.”
연이는 피크를 바라봤다.
“되게 상관답다.”
SOLV는 모카에게 은빛 링 하나를 건넸다.
“노바 링이다.”
모카는 그대로 굳었다.
“저, 저한테요?”
“데뷔 선물은 아니다.”
SOLV는 낮게 말했다.
“숙제다.”
모카는 두 손으로 링을 받았다.
“숙제…….”
“다음에 만날 때, 네 두 번째 줄을 들려줘라.”
모카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겁 때문이 아니었다.
“네.”
그는 노트에 노바 링을 끼웠다.
달빛 아래서 은빛 링이 반짝였다.
RAVEN은 연이와 네오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둘 다 숨기는 게 많군.”
연이의 눈이 커졌다.
“저요?”
RAVEN은 연이의 머리 위 꽃을 보았다.
“꽃 안쪽에 불과 물과 흙이 같이 있다.”
그다음 네오를 보았다.
“그리고 저쪽은 더 많다.”
네오의 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연이는 바로 네오를 봤다.
“들었지? 너 더 많대.”
네오는 태연하게 말했다.
“무대 뒤풀이 중에 할 이야기는 아니다.”
“또 넘기네.”
SOLV도 네오를 바라봤다.
“사주 가디언.”
그 말에 모카가 다시 귀를 쫑긋했다.
“맞다. 저도 아직 궁금해요. 사주 가디언이라는 건 여기서도 처음 들어요.”
BAMBI도 조용히 말했다.
“나도 오래 전설을 들었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야.”
LUNE이 눈을 반짝였다.
“작은데 거대한 사자 그림자 나오는 것도 처음 봤고.”
RAVEN은 짧게 말했다.
“봉인자도 네오를 알아봤다.”
공기가 잠깐 조용해졌다.
연이의 시선이 네오에게 꽂혔다.
네오는 매우 태연한 척했다.
“우연이다.”
연이, 모카, DEST1NOVA 멤버 전원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연이가 말했다.
“그건 너무 무리야.”
모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은 진짜 무리였어요.”
LUNE이 웃었다.
“거짓말도 리듬이 있어야 하는데, 방금은 박자가 안 맞았어.”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되게 많이 쓴다?”
“필요한 말이다.”
SOLV는 네오를 한참 보더니 더 묻지 않았다.
“그럼 아직은 묻지 않지.”
그는 연이를 보았다.
“하지만 조심해라. 봉인자가 네오를 알아봤다면, 다음 섬에서도 그 이름이 반응할 수 있다.”
연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네오 이름이?”
“아니.”
SOLV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오의 정체가.”
네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이는 더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았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배운 게 있었다.
말은 꺼내야 하지만, 모든 말을 한 번에 꺼낼 필요는 없었다.
초안이 있고.
다음 줄이 있고.
때가 있다.
연이는 네오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 꼭 물어볼 거야.”
네오가 대답했다.
“그때도 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그다음에도 물어볼 거야.”
“끈질기군.”
“내 장점이야.”
그때 광장 전체에서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뒤풀이가 열린 것이다.
길게 이어진 테이블 위에는 식신·상관의 섬 음식들이 잔뜩 올라왔다.
달빛 크림빵.
구름솜 튀김.
노을빛 탕후루.
리듬 팬케이크.
마음 수프.
불꽃 라면.
보컬 사탕.
그리고 DEST1NOVA 멤버들의 이름을 딴 특별 음식들도 있었다.
SOLV의 은빛 후추 스테이크 꼬치.
BAMBI의 따뜻한 허그 수프.
LUNE의 랜덤 코드 쿠키.
RAVEN의 그림자 초코 타르트.
연이는 테이블을 보고 멈춰 섰다.
“여긴 천국인가?”
네오가 말했다.
“적당히 먹어라.”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라는 말은 예의가 아니야.”
모카는 이미 리듬 팬케이크 앞에 앉아 있었다.
“이건 영감용으로 먹어야 해요.”
연이가 말했다.
“먹는 핑계가 점점 전문적이네.”
“식신의 섬이니까요.”
연이는 불꽃 라면 앞에 섰다.
가게 주인이 경고했다.
“이 라면은 자존심을 먹고 매워집니다.”
연이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럼 난 안 먹어.”
LUNE이 웃었다.
“왜?”
“내 자존심은 이미 오늘 무대에서 많이 소모됐어.”
SOLV가 낮게 말했다.
“현명하군.”
BAMBI는 연이에게 허그 수프를 한 그릇 더 건넸다.
“너는 이쪽이 더 어울려.”
연이는 수프를 받고 웃었다.
“감사합니다. 매운 자존심보다 따뜻한 위로가 좋네요.”
RAVEN은 그림자 초코 타르트를 조용히 먹고 있었다.
연이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거 맛있어요?”
RAVEN은 잠시 생각했다.
“달다.”
“끝?”
“깊다.”
“오.”
연이는 타르트 한 조각을 받아 먹었다.
처음에는 진한 초콜릿 맛이 났다.
그다음에는 살짝 쌉싸름했고, 끝에는 이상하게 조용한 달콤함이 남았다.
“이거 RAVEN 같네요.”
RAVEN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평가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먹고, 이야기하고, 웃었다.
연이는 오랜만에 정말 쉬는 것 같았다.
비겁의 섬에서는 자기 자신과 싸웠고, 식신·상관의 섬에서는 표현이 지워질 뻔했다.
그런데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방금 만난 이들이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도 운명 회복의 일부일지도 몰랐다.
거창한 깨달음만이 아니라.
맛있는 걸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고맙다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
그때 모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이님.”
“응?”
“저…… 같이 가도 돼요?”
연이는 수프를 마시다 멈췄다.
네오도 모카를 보았다.
모카는 노바 링이 달린 가사 노트를 품에 안고 있었다.
“저 오늘 첫 줄을 썼어요.”
그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근데 다음 줄은 여기만 보고는 못 쓸 것 같아요.”
연이는 조용히 들었다.
“다른 섬도 보고 싶어요. 표현이 돈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마음이 지식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운명이 또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
모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의 다음 줄을 도와주고 싶어요.”
네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모카를 바라봤다.
“앞으로의 길은 위험하다.”
“알아요.”
“오늘처럼 무대가 있는 곳만 나오지 않는다.”
“알아요.”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다.”
모카는 손에 든 노트를 꽉 잡았다.
“그때도 한 줄은 남겨볼게요.”
연이는 작게 웃었다.
“좋은 대답인데?”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따라와라.”
모카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모카는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동료 됐어요!”
LUNE이 기타를 튕겼다.
“축하해, rookie!”
BAMBI가 박수를 쳤다.
“잘 다녀와.”
SOLV는 짧게 말했다.
“다음 줄을 써라.”
RAVEN은 말했다.
“살아서.”
모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연이는 모카를 보며 말했다.
“역할은 정했어?”
모카는 눈을 반짝였다.
“비트 서포터 겸 기록 담당!”
네오는 말했다.
“소리 감지와 기록 담당이다.”
모카가 바로 수정했다.
“소리 감지와 기록 담당, 별칭 비트 서포터!”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있어 보여.”
축제가 조금씩 마무리될 무렵, 연잎 배가 다시 강가에 나타났다.
배는 이전보다 조금 넓어진 것 같았다.
마치 새로운 동료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연이는 배를 보고 말했다.
“이 배, 자동 확장 기능도 있어?”
네오가 말했다.
“사주의 강은 필요한 만큼 길을 만든다.”
“오. 이번엔 좀 멋있다.”
모카는 조심스럽게 연잎 배에 올랐다.
처음 타는 배라 그런지 살짝 비틀거렸다.
연이가 앞발을 내밀었다.
“괜찮아?”
모카가 웃었다.
“네. 생각보다 푹신하네요.”
“나 처음엔 여기서 돼지 된 걸 깨달았어.”
“기념비적인 장소네요.”
“그렇게 포장하지 마.”
DEST1NOVA 멤버들과 주민들이 강가에 모였다.
달빛 크림빵 가게 곰이 빵 바구니를 흔들었다.
말놀이 골목의 여우와 앵무새는 동시에 외쳤다.
“다음에도 말하러 와!”
아이들은 후렴을 불렀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모카는 울면서 손을 흔들었다.
“저 진짜 다음 줄 쓰고 올게요!”
SOLV는 손을 들었다.
BAMBI는 따뜻하게 웃었다.
LUNE은 기타로 짧은 작별 코드를 쳤다.
딩.
RAVEN은 고개를 숙였다.
네오는 조용히 앞을 바라봤다.
연이는 강가의 모두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이제는 작별이 아쉬운 이들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운명 세계는 무섭고 이상했지만, 이렇게 연결되는 순간도 있었다.
연잎 배가 천천히 움직였다.
식신·상관의 섬이 뒤로 멀어졌다.
연이는 가슴 안쪽의 [丁未]를 느꼈다.
작은 불.
따뜻한 흙.
그리고 그 위에 남은 노래 한 줄.
모카는 배 한쪽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빈 페이지 위에 새 문장을 적었다.
연이는 그걸 보고 웃었다.
“벌써 기록해?”
“기록 안 하면 날아가요.”
모카가 진지하게 말했다.
“표현은 꺼내야 남으니까요.”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때 강 앞쪽에 새로운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번 안개는 황금빛이 아니었다.
차분하고 깊은 빛이었다.
마치 오래된 책장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
혹은 조용한 도서관 창가에 쌓인 먼지 빛.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저긴 어디야?”
네오가 말했다.
“인성의 섬이다.”
“인성?”
“배우고, 기억하고, 보호받고, 이해하는 힘.”
모카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공부하는 섬인가요?”
연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공부?”
네오는 태연하게 말했다.
“어느 정도는.”
연이는 바로 배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잠깐만. 나 방금까지 무대 뛰고 먹고 놀다가 왔는데 다음이 공부 섬이라고?”
“정확히는 지식과 기억의 섬이다.”
“그게 공부잖아.”
모카는 노트를 끌어안고 말했다.
“저는 좋을지도 몰라요. 가사 쓰려면 많이 알아야 하니까.”
연이는 모카를 바라봤다.
“너 동료 되자마자 모범생 포지션 잡는 거야?”
모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트 서포터 겸 기록 담당이니까요.”
“아, 역할 몰입 빠르네.”
네오는 인성의 섬 쪽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묘하게 진지했다.
연이는 그걸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또 표정이 그래?”
“인성의 섬은 조용해 보이지만 쉽지 않다.”
“또 위기 있어?”
“기억은 때로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
연이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인성의 섬.
배우고.
기억하고.
보호받고.
이해하는 힘.
그 말은 어딘가 따뜻했지만, 동시에 조금 무서웠다.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무엇을 배우게 될까.
그리고 이 세계가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할까.
연이는 가슴 안쪽의 글자들을 느꼈다.
자기 자리를 찾았고.
자기 목소리를 꺼냈다.
이제는 아마도,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조금 더 배워야 할 차례였다.
연잎 배는 조용히 강을 따라 흘렀다.
뒤에서는 식신·상관의 섬의 노래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앞에서는 인성의 섬의 안개가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연이는 짧은 앞발을 가슴에 올렸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공부든 기억이든, 한번 해보자.”
잠시 후, 작게 덧붙였다.
“근데 시험은 없었으면 좋겠다.”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이는 바로 그를 노려봤다.
“왜 대답 안 해?”
모카가 노트에 조용히 적었다.
연이는 그걸 보고 소리쳤다.
“그런 거 기록하지 마!”
연잎 배는 세 사람을 태운 채, 인성의 섬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