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인성의 섬, 다음 줄이 태어나는 곳
Code Destiny · 6,037자
제14화. 인성의 섬, 다음 줄이 태어나는 곳
연잎 배는 조용히 강을 건넜다.
식신·상관의 섬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아직도 노래가 들려왔다.
“꺼내, 꺼내.”
“숨겨둔 마음을 꺼내.”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목소리.
기타 소리.
웃음소리.
빵이 구워지는 냄새.
그 모든 것이 강물 위로 희미하게 번졌다.
모카는 배 한쪽에 앉아 가사 노트를 꼭 붙잡고 있었다.
노트에는 새로 생긴 은빛 노바 링이 달려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빈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한 줄을 적었다.
그 아래에 다시 썼다.
그리고 멈췄다.
연이는 그 모습을 보다 물었다.
“왜 멈췄어?”
모카는 노트를 내려다본 채 말했다.
“다음 줄이 안 나와요.”
“벌써 부담 와?”
“네.”
모카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에서는 그냥 나왔거든요. 너무 무서우니까, 오히려 생각할 틈도 없이 막 나왔어요.”
“그건 좀 알 것 같아.”
“근데 이제는…….”
모카는 빈 페이지를 앞발로 눌렀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첫 줄은 썼는데, 그다음 줄은 어디서 가져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이는 잠시 생각했다.
“일단 아무거나 써보면 되지 않아?”
“그건 식신·상관의 방식 같아요.”
모카가 고개를 저었다.
“꺼내는 건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연이는 모카를 조금 신기하게 바라봤다.
“너 진짜 성장했네.”
“성장이라기보다는…….”
모카는 귀를 살짝 접었다.
“숙제가 생긴 느낌이에요.”
그때 네오가 배 앞쪽에서 말했다.
“그게 인성의 문턱이다.”
연이와 모카가 동시에 네오를 봤다.
“인성?”
네오는 앞쪽의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안개는 식신·상관의 섬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황금빛도 아니었다.
차분하고 깊은 빛.
오래된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 같은 빛이었다.
“식상은 밖으로 꺼내는 힘이다.”
네오가 말했다.
“먹고, 만들고, 말하고, 노래하고, 움직이는 힘.”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인성은 그 이전에 쌓이는 힘이다. 배우고, 기억하고, 이해하고, 보호받고, 다시 생각하는 힘.”
연이는 바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공부?”
“공부도 포함된다.”
“포함된다는 말은 거의 맞다는 뜻이잖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네오는 이번에는 모카가 아니라 연이를 보고 말했다.
“밖으로 꺼낸 다음에도, 그 말이 정말 네 것인지 다시 붙잡는 힘이다.”
연이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왜 나 보고 말해.”
“지금 네게 제일 필요한 말이니까.”
모카는 노트를 펼쳤다.
“정리해도 돼요?”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카는 바로 적었다.
연이는 그걸 보고 말했다.
“너 기록 담당 진짜 잘 맞는다.”
모카는 살짝 뿌듯한 얼굴이 됐다.
네오는 계속 설명했다.
“인성에는 두 흐름이 있다. 정인과 편인.”
모카의 펜이 바로 움직였다.
“정인은 바른 배움, 보호, 안정, 따뜻한 이해에 가깝다. 누군가가 너를 가르치고, 품고, 지켜주고, 쉬게 해주는 힘.”
모카가 적었다.
“편인은 낯선 지식, 직감, 꿈, 이상한 영감에 가깝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힘.”
모카는 다시 적었다.
연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인은 친절한 선생님 느낌이고, 편인은 새벽 세 시에 갑자기 ‘나 천재인가?’ 하면서 이상한 아이디어 떠오르는 느낌?”
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정확하다.”
연이는 으쓱했다.
“나 이해력 좋아졌나 봐.”
“다만 편인이 지나치면 식신을 막는다.”
모카의 손이 멈췄다.
“편인도식.”
그 말이 나오자 세 사람 사이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까마귀가 썼던 기술.
생각과 평가로 초안을 지우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표현을 멈추게 하던 힘.
연이는 인성의 섬을 감싼 안개를 바라봤다.
“그럼 여기 좋은 섬처럼 보여도 위험할 수 있겠네.”
네오가 말했다.
“모든 힘은 좋고 나쁨이 함께 있다. 정인은 보호가 되지만 지나치면 의존이 된다. 편인은 영감이 되지만 지나치면 고립이나 망상이 된다.”
모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사도 그런 것 같아요.”
연이가 물었다.
“작사?”
“네.”
모카는 빈 페이지를 내려다봤다.
“무대에서는 그냥 꺼냈어요. 그런데 곡을 계속 쓰려면 기억이 필요하잖아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지. 그런 걸 모아야 다음 가사가 나오니까요.”
네오가 말했다.
“그게 인성이다.”
모카의 눈이 커졌다.
“그럼 작사 작곡도 인성의 영역이에요?”
“일부는 그렇다.”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상은 꺼내는 힘이다. 하지만 꺼낼 재료가 없다면 빈 소리만 나온다. 인성은 그 재료를 쌓는다.”
그는 강물 위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바라봤다.
“기억, 언어, 공부, 멜로디의 원리, 들었던 이야기, 읽었던 문장, 마음속에 남은 장면.”
모카는 빠르게 적었다.
연이는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거 좋은데?”
모카의 눈이 반짝였다.
“저 지금 좋은 줄 잡은 것 같아요.”
“벌써 인성 효과 나오네.”
그때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인성의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는 처음에 그 섬을 보고 조용해졌다.
식신·상관의 섬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곳은 떠들썩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듯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숨을 낮게 쉬는 섬 같았다.
섬 전체에 오래된 책장 냄새가 감돌았다.
비 온 뒤의 종이 냄새.
따뜻한 차 냄새.
나무 책상 냄새.
먼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냄새.
섬 입구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서 있었다.
나무의 잎은 종이처럼 얇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마다 글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떤 잎에는 시가 적혀 있었다.
어떤 잎에는 누군가의 일기 조각이 적혀 있었다.
어떤 잎에는 오래된 악보의 음표가 흐르고 있었다.
모카는 숨을 삼켰다.
“여긴…… 조용한데 시끄러워요.”
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소리는 크지 않은데, 들을 게 너무 많아요.”
모카는 귀를 세웠다.
“나뭇잎마다 문장이 있고, 바람 속에 멜로디가 있어요. 강물에는 누가 잊은 말이 떠다니고요.”
네오가 말했다.
“인성의 섬답군.”
연잎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작은 등불들이 줄지어 있었고, 등불 안에는 불꽃 대신 글자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이는 조심스럽게 배에서 내렸다.
발을 디디자, 바닥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연이는 바로 굳었다.
“어.”
모카의 발밑에도 글자가 떠올랐다.
모카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섬…… 질문을 해요.”
네오의 발밑에도 글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글자가 잠깐 흔들리더니 흐려졌다.
연이는 놓치지 않았다.
“어? 네오 글자 왜 흐려져?”
네오는 태연하게 발을 옮겼다.
“섬의 기운이 불안정한 모양이다.”
“아니, 너한테만 그런 것 같은데?”
모카도 노트에 적었다.
네오가 말했다.
“그건 적지 마라.”
모카는 노트를 품에 숨겼다.
“기록 담당이라서요.”
연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동료 잘 뽑았다.”
네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숲 안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딸랑.
맑고 얇은 소리였다.
그런데 종소리 아래로 아주 작은 멜로디가 깔려 있었다.
모카의 귀가 움직였다.
“저쪽이에요.”
그가 숲 오른쪽을 가리켰다.
“종소리 뒤에 누가 멜로디를 적고 있어요.”
“멜로디를 적는다고?”
연이는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종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조금 더 집중하자, 정말로 그 아래에 희미한 멜로디가 있었다.
라라라.
음이 아니라 기억 같은 멜로디.
언젠가 들은 적 있는 것 같지만 떠오르지 않는 노래.
세 사람은 그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숲 안쪽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물은 푸른색이 아니라 잉크색이었다.
검푸른 잉크가 잔잔하게 고여 있었고, 그 위에는 하얀 악보들이 연꽃처럼 떠 있었다.
악보 위에는 음표들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떤 음표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어떤 음표는 새처럼 날아올랐다.
호수 한가운데에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정자 안에는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긴 귀.
달빛처럼 은은한 털.
청록색 망토.
무릎 위에는 작은 류트와 두꺼운 노트가 놓여 있었다.
토끼는 눈을 감은 채 손끝으로 류트 줄을 아주 약하게 튕기고 있었다.
딩.
한 음이 울리자, 호수 위의 악보 하나가 움직였다.
토끼는 그 음을 듣고 노트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
다시 한 음.
딩.
모카는 숨을 멈췄다.
“저건…….”
토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맑은 회색 눈동자였다.
그녀는 연이 일행을 보고 조용히 웃었다.
“손님이네.”
연이는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
“우리를 기다린 건 아니죠?”
토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누가 올지 몰라.”
연이는 마음속으로 살짝 안도했다.
이전 섬들에서는 종종 이상하게 자신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토끼는 달랐다.
알고 기다린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고 돌아본 얼굴이었다.
토끼는 노트를 덮었다.
“나는 루나.”
모카가 눈을 크게 떴다.
“루나?”
“응.”
루나는 무릎 위의 류트를 가볍게 두드렸다.
“인성의 섬에서 기억을 멜로디로 엮고, 꿈을 가사로 번역하는 일을 해.”
모카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작사 작곡가예요?”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를 수도 있지.”
모카의 눈이 반짝였다.
“저 래퍼예요.”
연이가 옆에서 덧붙였다.
“백 년째 데뷔 전이었다가, 최근에 첫 줄 썼어.”
모카가 황급히 말했다.
“설명은 맞는데 너무 요약됐어요.”
루나는 모카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깊이 듣는 눈이었다.
“노트가 무겁구나.”
모카는 노트를 품에 안았다.
“이게 보여요?”
“무게가 들려.”
“무게가…… 들려요?”
연이는 조용히 네오에게 속삭였다.
“편인 느낌 나지?”
네오는 낮게 말했다.
“강하다. 하지만 적의는 없다.”
루나는 모카의 노트에 시선을 두었다.
“방금 쓴 줄보다, 지워질 뻔한 줄들이 더 많이 울고 있어.”
모카의 표정이 굳었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백지화될 뻔한 노트.
사라질 뻔한 초안들.
모카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저…… 다음 줄이 안 써져요.”
루나는 노트를 바라보았다.
“당연해.”
모카의 귀가 축 처졌다.
“역시 제가 부족해서…….”
“아니.”
루나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첫 줄을 쓴 사람은 바로 다음 줄을 억지로 쓰면 안 돼.”
모카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기억이 숨을 쉬어야 하니까.”
루나는 잉크빛 호수를 가리켰다.
“무대 위에서 꺼낸 말은 바로 다음 가사가 되지 않아. 먼저 네 안에 내려앉아야 해. 기억이 되고, 이유가 되고, 질문이 되고, 그다음에 다시 가사가 돼.”
모카는 숨을 삼켰다.
“그럼…… 지금 안 써지는 게 실패가 아니에요?”
루나는 작게 웃었다.
“그건 발효 중인 거야.”
연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사도 발효돼요?”
“좋은 가사는 대체로 그래.”
루나는 류트를 한 번 튕겼다.
딩.
호수 위 악보가 흔들렸다.
“너는 첫 줄을 너무 급하게 다음 줄로 밀어붙이고 있어. 그런데 모카.”
“네.”
“네 첫 줄은 무대에서 태어났어. 그러면 다음 줄은 무대 밖에서 자라야 해.”
모카는 말없이 노트를 바라봤다.
루나는 손가락으로 노트의 빈칸을 가리켰다.
“여기에 바로 멋진 라임을 쓰려고 하지 마.”
“그럼 뭘 써요?”
“기억을 모아.”
루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들은 소리, 네가 무서웠던 순간, 네가 부끄러웠던 표정, 네가 고마웠던 사람, 네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한마디.”
모카의 눈이 흔들렸다.
“그게 가사가 돼요?”
“응.”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사는 멋진 말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잊히면 안 되는 감각을 붙잡는 일이야.”
모카는 천천히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연이는 그 문장을 보고 조용히 감탄했다.
“좋다.”
모카는 노트를 품에 안았다.
“그럼 저는 뭘 하면 돼요?”
루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세 가지를 모아와.”
모카의 귀가 쫑긋했다.
“세 가지요?”
“첫 번째. 네가 가장 크게 들은 소리.”
모카는 적었다.
“두 번째. 네가 말하지 못한 마음.”
모카의 손이 잠깐 멈췄다.
“세 번째. 네가 다음 줄로 남기고 싶은 약속.”
모카는 조용히 마지막 줄을 적었다.
루나는 말했다.
“그 세 가지를 찾으면, 너는 두 번째 줄을 쓸 수 있을 거야.”
모카는 노트를 꼭 안았다.
그 얼굴은 조금 전보다 달라져 있었다.
불안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방향도 생겼다.
“그럼…… 루나님이 제 작사 선생님이 되는 건가요?”
루나는 살짝 웃었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안내자.”
“정인인가요?”
루나는 조금 놀란 듯 모카를 보았다.
“그 말도 아네?”
모카는 뿌듯하게 말했다.
“기록 담당이라서요.”
연이는 옆에서 말했다.
“모카 진짜 인성의 섬 체질일지도.”
네오는 루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는 그 시선을 느끼고 네오를 보았다.
“그쪽은…….”
연이는 바로 귀를 세웠다.
“오. 혹시 뭔가 보여요?”
네오도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연이가 물었다.
“왜요?”
“기록이 잘 안 읽혀.”
루나는 네오를 보며 말했다.
“보통 이 섬에 들어온 존재는 기억의 잔향이 조금씩 들리거든. 그런데 당신은…… 소리가 강한데, 정작 문장은 흐려.”
네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가.”
루나는 잠시 더 네오를 바라봤다.
“사자의 형태를 한 존재라는 것밖에 모르겠어. 가디언인지 뭔지, 그런 건 나는 몰라.”
연이는 네오를 힐끗 봤다.
이번엔 루나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수상했다.
기록이 잘 안 읽힌다.
소리는 강한데 문장은 흐리다.
그건 네오에게 뭔가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모카도 조용히 노트에 적었다.
네오가 말했다.
“그것도 지워라.”
모카는 노트를 품에 숨겼다.
“기록 담당이라서요.”
연이는 웃음을 참았다.
루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연이가 물었다.
“어디로요?”
“인성의 섬 도서관.”
모카의 눈이 반짝였다.
“도서관!”
연이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진짜 공부 섬이었네.”
루나가 웃었다.
“걱정 마. 이곳의 책들은 글자로만 되어 있지 않아.”
“그럼요?”
“어떤 책은 냄새로 읽고, 어떤 책은 음악으로 읽어. 어떤 책은 꿈으로 읽고, 어떤 책은 네가 잊은 기억으로 읽지.”
연이는 멈칫했다.
“잊은 기억?”
루나는 숲 안쪽을 바라봤다.
“인성의 섬에 온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먼저 만나게 돼.”
연이는 가슴 안쪽의 [乙亥]와 [丁未]를 느꼈다.
자기 자리.
자기 목소리.
그다음은 기억.
모카는 노트를 꼭 안고 있었다.
그의 빈 페이지에는 이제 아무 말도 없지 않았다.
숙제가 있었다.
가장 크게 들은 소리.
말하지 못한 마음.
다음 줄로 남기고 싶은 약속.
그 세 가지.
연이는 모카를 보며 말했다.
“이번 섬에서 너 진짜 많이 크겠다.”
모카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루나는 숲길을 따라 걸어갔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문장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마지막 잎 하나가 연이의 앞에 떨어졌다.
연이는 그것을 앞발로 받아 들었다.
잎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연이는 숨을 멈췄다.
“첫 번째 목소리……?”
잎사귀는 곧 잉크처럼 녹아 사라졌다.
숲 안쪽.
인성의 섬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