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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estiny제15화. 기억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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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제15화. 기억 도서관

Code Destiny · 4,822자

제15화. 기억 도서관

인성의 섬 도서관은 숲 안쪽에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연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 숲 안에 있는 게 아니었다.

숲이 도서관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책장처럼 서 있었고, 가지 사이에는 책들이 새처럼 앉아 있었다.

잎사귀에는 문장이 떠올랐다가 사라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사락.

사락.

조용한데, 이상하게 시끄러웠다.

모카는 귀를 살짝 움직였다.

“소리가 많아요.”

연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가?”

“책 넘기는 소리 말고도요. 누가 예전에 말하려다 삼킨 말, 잊어버린 멜로디, 지워진 문장 같은 게 섞여 있어요.”

연이는 모카를 바라봤다.

식신·상관의 섬을 지나온 뒤, 모카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전처럼 부산스럽고 잘 들뜨는 건 그대로였지만, 소리를 듣는 방식이 깊어졌다.

그냥 큰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소리 뒤에 남은 마음을 듣는 것 같았다.

네오가 말했다.

“식상의 감각이 인성의 재료를 듣기 시작한 거다.”

연이는 바로 손, 아니 앞발을 들었다.

“짧게.”

네오가 한숨을 쉬었다.

“표현하려면 재료가 필요하다. 모카는 그 재료를 듣고 있다.”

“오케이. 그건 이해됐어.”

루나는 앞에서 조용히 걸었다.

청록색 망토가 나뭇잎 사이를 스치고, 등에 멘 작은 류트가 가끔 낮은 소리를 냈다.

딩.

소리가 날 때마다 근처 책들이 살짝 흔들렸다.

마치 그 음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도서관 입구는 문이 아니었다.

두 그루의 기억나무가 가지를 맞대어 만든 아치였다.

아치 위에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읽으려는 자는 먼저 읽힌다.]

연이는 문장을 보자마자 멈췄다.

“들어가기 싫어지는 문장이네.”

루나가 웃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곳은 공격하지 않아.”

“그럼 뭘 하는데요?”

“보여줘.”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루나가 먼저 아치 아래로 들어갔다.

모카도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그가 문턱을 넘자 아치의 글자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모카의 발밑에 희미한 문장이 떠올랐다.

[다음 줄을 찾는 자.]

모카는 그걸 보고 가만히 숨을 삼켰다.

연이가 다음으로 발을 디뎠다.

그녀의 발밑에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왜 잊었는가.]

연이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뭘?”

문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네오가 들어섰다.

아치의 글자가 네오에게 닿는 순간, 잠깐 빛이 튀었다.

마치 책장을 열려고 했는데, 잠긴 표지를 만난 것처럼.

연이는 그걸 봤다.

“어?”

네오는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가라.”

“방금 너한테만 이상했는데?”

“오래된 도서관이라 오류가 있나 보군.”

“그런 대충 설명으로 넘어갈 줄 알아?”

“넘어가라.”

그 말투가 너무 당당해서 더 수상했다.

모카도 네오를 힐끗 봤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도서관 안쪽은 따뜻했다.

높은 천장에는 별자리처럼 책들이 떠 있었고, 책장 사이에는 작은 방들이 있었다.

어떤 방에는 담요와 차가 놓여 있었고, 어떤 방에서는 어린 동물들이 책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부드러운 등불이 켜져 있었다.

[정인의 서가]

루나가 말했다.

“쉬는 기억들이 모이는 곳이야.”

연이는 그 방을 보자마자 조금 마음이 풀렸다.

“여긴 좋다.”

“배우려면 먼저 안심해야 하니까.”

루나는 작은 찻잔을 하나 건넸다.

연이는 조심스럽게 받아 마셨다.

차에서는 구운 곡식과 종이 냄새가 났다.

한 모금 마시자, 머릿속에 정신없이 떠다니던 일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비겁의 섬.

거울 속 연이.

식신·상관의 섬.

무대.

정미의 불씨.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대신, 책장에 꽂히듯 차분히 제자리를 찾았다.

연이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거 좋다.”

모카도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이 조용해져요.”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인은 마음이 쉴 자리를 만들어줘.”

연이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공부라면 괜찮을지도.”

네오가 말했다.

“그 말은 기억해두겠다.”

“아니, 시험 볼 생각은 하지 마.”

루나는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반대편 책장으로 향했다.

그쪽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책장들이 바르게 서 있지 않았다.

어떤 책장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어떤 책은 물고기처럼 허공을 헤엄쳤다.

계단은 중간에서 끊겼다가 옆 벽으로 이어졌고, 창문 안에는 낮이 아니라 꿈 같은 밤하늘이 있었다.

[편인의 서가]

연이는 그쪽을 보고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여긴 잠 덜 깬 꿈 같다.”

루나가 말했다.

“영감은 대체로 그런 모양으로 와.”

모카는 그 말에 눈을 떴다.

“영감?”

“작사와 작곡을 하려면 정인만으로는 부족해. 편인도 필요해.”

루나는 허공을 헤엄치던 책 한 권을 손짓으로 불렀다.

책은 새처럼 날아와 그녀의 손 위에 내려앉았다.

표지에는 제목이 없었다.

루나는 책을 펼쳤다.

글자는 없었다.

대신 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멀리서 누군가 웃던 소리.

무대 뒤편에서 심장이 뛰던 소리.

떨리는 숨.

찢어질 뻔한 가사 노트의 종이 소리.

모카의 귀가 떨렸다.

그는 숨을 삼켰다.

“이거…… 제 소리예요?”

“네가 무대에서 남긴 소리야.”

책장 사이로 작은 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아직 완성된 멜로디는 아니었다.

잡으려 하면 사라질 것처럼 약했다.

모카가 무심코 손을 뻗자, 루나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잡지 마.”

모카의 손이 멈췄다.

“왜요?”

“너무 빨리 붙잡으면 가사가 아니라 설명이 돼.”

모카는 이해한 듯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루나는 미소 지었다.

“모카. 네 다음 줄은 머리로 짜내는 게 아니야.”

“그럼요?”

“네가 크게 들었던 소리, 말하지 못했던 마음, 그리고 다음에도 지키고 싶은 약속. 그 세 가지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나와.”

모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노트를 꺼내려다 멈췄다.

이번에는 적지 않았다.

그냥 루나의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것 같았다.

연이는 그 모습을 조용히 봤다.

조금 전까지 모카는 뭐든 쓰려고 했다.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까 봐 불안한 아이처럼.

그런데 지금은, 처음으로 적지 않고 듣고 있었다.

루나도 그걸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은 쓰지 말고 들어.”

모카가 작게 대답했다.

“네.”

그때 도서관 중앙 쪽에서 낮은 울림이 들렸다.

둥.

책장들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루나의 표정이 변했다.

연이가 물었다.

“왜요?”

“도서관이 손님을 부르네.”

“좋은 뜻이에요?”

“그건 가봐야 알아.”

“이 세계는 항상 그런 식이네.”

루나는 중앙 홀로 향했다.

연이와 모카, 네오가 뒤따랐다.

도서관 중앙에는 둥근 책상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책상 위에 검은 유리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검은 판.

반짝이는 표면.

연이는 그걸 보자마자 멈칫했다.

“어……?”

너무 익숙했다.

스마트폰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마트폰처럼 보이게 만든 무언가였다.

모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뭐예요?”

연이는 대답하려 했다.

“그러니까, 인간 세계에 있는…….”

그때 네오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함부로 누르지 마라. 저런 건 화면이 켜지는 순간부터 끌려간다.”

연이의 시선이 천천히 네오에게 향했다.

“너 되게 잘 아네?”

모카도 고개를 갸웃했다.

“화면이요? 누른다는 건 뭔데요?”

네오는 아주 짧게 멈췄다.

그리고 태연하게 말했다.

“인간 세계를 관찰한 적 있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관찰만 한 것치고는 사용 경험이 있는데?”

“네가 지금 그런 말을 할 상황은 아니다.”

“넘어가자는 뜻이지?”

“그래.”

모카는 아직도 검은 유리판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작은 거울 같은데요.”

연이는 낮게 말했다.

“거울보다 더 위험할 때도 있어.”

네오가 그녀를 봤다.

잠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연이는 처음 이 세계로 끌려오던 밤을 떠올렸다.

삭제되지 않던 앱.

〈Code Destiny〉

YES와 나중에.

나중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열린 타로의 문.

검은 유리판이 스스로 켜졌다.

연이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화면 한가운데 달빛 문양의 아이콘이 떠올랐다.

〈Code Destiny〉

모카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연이님을 이곳으로 부른 문이에요?”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오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

“루나.”

루나도 검은 유리판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보다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

“이건 내가 꺼낸 책이 아니야.”

연이의 몸이 굳었다.

“그 말은?”

“도서관이 보여주는 기억이 아니야.”

검은 유리판에 알림이 떴다.

[열람 대기 중]
[첫 번째 목소리]

연이의 가슴이 철렁했다.

숲에서 받았던 잎사귀의 문장.

[네가 잊은 첫 번째 목소리를 찾아라.]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건드리지 마라.”

“나도 안 건드릴 거야.”

연이는 앞발을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저런 선택지는 안 믿어.”

화면 아래에 두 버튼이 떠올랐다.

[열람]
[나중에]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싫다, 이 구성.”

모카가 작게 물었다.

“나중에 누르면 어떻게 되는데요?”

“보통 더 싫은 일이 생겨.”

네오가 유리판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문을 닫아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강했다.

검은 유리판은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문장이 바뀌었다.

[나중에 미룬 기억은 인성의 섬에서 오래 숨어 있지 못합니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나는 안 눌렀어.”

그 순간 [나중에] 버튼이 흐려졌다.

[자동 열람 준비 중]

“야.”

[첫 번째 목소리 색인 중]

“안 누른다니까?”

네오가 바로 움직였다.

금빛 발톱이 유리판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닿기 직전, 책상 위로 하얀 책들이 솟아올라 방패처럼 막았다.

쨍!

네오의 발톱이 튕겨 나갔다.

루나의 얼굴이 굳었다.

“도서관이 막았어.”

“왜요?”

연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나는 천천히 말했다.

“인성의 섬은 필요한 기억을 피하게 두지 않아.”

검은 유리판에서 달빛이 터졌다.

도서관 중앙의 책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수많은 페이지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사락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폭풍처럼 커졌다.

모카는 귀를 막았다.

“소리가 너무 많아요!”

연이는 움직이려 했지만, 발밑에서 하얀 빛이 피어올랐다.

책상 아래 바닥이 조용히 갈라졌다.

그 아래로 계단이 나타났다.

하얀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작고 희미한 목소리.

하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목소리.

“연이야.”

연이의 몸이 굳었다.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무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으면서도, 바로 귓가에 닿는 것 같았다.

“괜찮아.”

목소리가 말했다.

“천천히 해도 돼.”

연이의 머리 위 꽃이 조용히 떨렸다.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누구지.

분명 모르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왜 이런 말을, 예전에 들은 적 있는 것 같지.

화면 위에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첫 번째 목소리의 방이 열립니다.]

루나는 조용히 말했다.

“첫 번째 열람실이야.”

모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들어가야 해요?”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연이는 하얀 계단을 바라봤다.

무대보다 조용하고.

거울보다 깊고.

사주의 강보다 오래된 느낌이 그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네오가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연이.”

“응.”

“준비가 안 됐다면 억지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연이는 그를 보았다.

“정말?”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다만 문은 열린다.”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문은 열린다.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미 기억은 깨어난다.

모카는 조용히 연이 옆에 섰다.

“같이 갈게요.”

연이는 모카를 보았다.

“무섭지 않아?”

“무서워요.”

모카는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저도 다음 줄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어요. 연이님 기억일지라도, 듣는 건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루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나는 길을 안내할게. 하지만 안쪽에서 무엇을 만날지는 나도 몰라.”

연이는 하얀 계단을 다시 보았다.

아래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연이야.”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괜찮아.”

연이는 앞발에 힘을 줬다.

손가락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쳐도 기억은 닫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연이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누르진 않았으니까, 책임은 도서관이 져라.”

네오가 낮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정리할 일은 아니다.”

“나 긴장 풀려고 한 말이야.”

연이는 첫 번째 계단에 발을 올렸다.

하얀 빛이 발밑에서 번졌다.

모카가 뒤따랐다.

루나는 류트를 들고 조용히 내려왔다.

네오가 마지막으로 검은 유리판을 한 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이상하게 어두웠다.

연이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네오는 낮게 중얼거렸다.

“스마트폰의 형태를 빌린 문이라…….”

그리고 곧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너무 작아서, 모카는 듣지 못했다.

연이도 듣지 못했다.

도서관의 책들이 조용히 닫혔다.

사락.

하얀 계단은 네 사람을 기억의 아래쪽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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