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너무 친절한 사서
Code Destiny · 5,954자
제16화. 너무 친절한 사서
하얀 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도서관 중앙에서 내려가는 계단이었는데, 걷다 보니 도서관 안이라기보다는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강해졌다.
벽은 없었다.
대신 양옆으로 책장이 흘러갔다.
책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강물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어떤 책장은 어린 시절의 냄새를 품고 있었고, 어떤 책장은 오래전에 들었던 말소리를 품고 있었다.
연이는 계단을 내려가며 앞발에 힘을 줬다.
“여기 너무 조용한데 긴장된다.”
모카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소리가 너무 많아서 긴장돼요.”
“소리 많아?”
“네. 누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랑, 먼지 내려앉는 소리랑, 잊힌 말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같이 들려요.”
루나는 맨 앞에서 류트를 들고 걸었다.
작은 현이 계단의 리듬에 맞춰 아주 희미하게 울렸다.
딩.
딩.
루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인성의 섬에서는 많이 들을수록 조심해야 해.”
모카가 물었다.
“왜요?”
“전부 기억처럼 들리거든.”
루나는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억처럼 들린다고 전부 진짜는 아니야. 진짜라도, 해석이 틀릴 수 있고.”
연이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연이야.”
모두 멈춰 섰다.
그 목소리는 아까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희미하고.
이상하게 익숙한 목소리.
“괜찮아.”
목소리가 말했다.
“천천히 해도 돼.”
연이의 몸이 굳었다.
그 말은 따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아팠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누가 말했는지.
언제 들었는지.
왜 잊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계단 아래로 흰빛이 번졌다.
그 빛 속에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방 안에는 낮은 책상, 작은 의자, 따뜻한 담요, 식지 않는 차 한 잔이 있었다.
벽에는 책장이 가득했고, 창문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
비 소리는 부드러웠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되는 소리였다.
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책상 옆에서 고개를 들었다.
흰 올빼미였다.
눈은 맑은 금색이었고,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깃털은 눈처럼 하얬고, 손에는 오래된 펜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목소리는 낮고 친절했다.
“첫 번째 열람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연이는 눈을 깜빡였다.
“당신은 누구예요?”
“저는 이 방의 사서입니다.”
흰 올빼미는 미소 지었다.
“이름은 백문.”
모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백문 사서님…….”
루나는 아주 미세하게 표정을 굳혔다.
네오도 바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사서라기엔 기운이 탁하다.”
백문은 눈을 접듯 웃었다.
“가디언은 언제나 의심이 많군요.”
그 말에 연이는 네오를 봤다.
“또 알아봐?”
백문은 손을 들어 부드럽게 말했다.
“정확히 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기록이 흐릿한 분이니까요. 다만 오래된 존재는 오래된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네오의 갈기가 희미하게 타올랐다.
“쓸데없는 말은 됐다.”
백문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필요한 말만 하겠습니다.”
그는 연이를 바라봤다.
“이 방은 연이 님이 잊은 첫 번째 목소리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연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첫 번째 목소리…….”
백문은 책상 위의 차를 가리켰다.
“먼저 앉으시겠습니까? 기억은 억지로 펼치면 찢어집니다. 정인은 보호하는 힘이지요. 받아들이고, 품고, 믿고, 쉬게 해주는 힘.”
그 말은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워서, 연이는 순간 경계심이 조금 풀렸다.
차에서 구운 곡식 냄새가 났다.
따뜻했다.
방 안은 안전해 보였다.
비 소리도 좋았다.
여기라면 조금 쉬어도 될 것 같았다.
백문이 다시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좋은 말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 괜찮다고 해주면, 그냥 믿으면 됩니다.”
연이의 발이 의자 쪽으로 움직였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거울 속 자신과 싸웠고, 무대 위에서 노래했고, 표현을 막는 까마귀와 맞섰다.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 괜찮다고 해준다면, 그냥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요.”
백문이 부드럽게 말했다.
“정인은 원래 그렇게 따뜻한 겁니다. 믿으세요. 맡기세요. 누군가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세요.”
연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때 네오가 앞발로 바닥을 찍었다.
쨍.
금빛이 번졌다.
의자 주변의 하얀 빛이 살짝 밀려났다.
연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네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정인의 그림자다.”
백문의 눈이 아주 잠깐 가늘어졌다.
네오가 말했다.
“정인은 보호하지만, 지나치면 의존으로 변한다. 다 믿고, 다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게 만든다.”
연이는 몸을 떨었다.
조금 전 자신이 정말 의자에 앉아버릴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나…….”
“네 판단을 내려놓을 뻔했다.”
네오가 말했다.
“보호받는다는 이름으로.”
백문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가디언은 늘 거칠군요. 저는 그저 쉬라고 했을 뿐입니다.”
루나가 낮게 말했다.
“쉬게 하는 것과 멈추게 하는 건 달라.”
백문은 루나를 바라보았다.
“작곡가라면 알 텐데요. 때로는 멈춤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멈춤이 자기 선택이어야 해. 남이 대신 재워버리는 건 보호가 아니야.”
그 순간 방의 풍경이 바뀌었다.
따뜻한 차 냄새가 조금씩 사라졌다.
책장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창밖의 비가 멈추고, 대신 검은 잉크가 유리창 위로 흘러내렸다.
백문의 흰 깃털 사이로 검은 무늬가 서서히 번졌다.
그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럼 편인의 방식도 보여드리지요.”
책장들이 뒤틀렸다.
방 안의 책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페이지마다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들이 벽을 가득 채웠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이번엔 포근함이 아니었다.
차가운 의심이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복잡해졌다.
왜 이 목소리가 나를 부르지?
이 방은 왜 열렸지?
네오는 스마트폰 같은 걸 왜 그렇게 잘 알았지?
루나는 정말 그냥 안내자인가?
모카를 데려온 게 위험한 선택은 아니었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질문을 생각하면 두 개가 더 생겼고, 두 개를 붙잡으면 네 개가 더 튀어나왔다.
모카도 책장 쪽을 보며 얼굴이 하얘졌다.
그의 주변에는 다른 질문들이 떠올랐다.
모카의 손이 떨렸다.
“루나님…….”
루나는 그를 옆에 섰다.
“보지 마.”
“근데 맞는 말 같아요.”
모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제가 더 배워야 하는 건 맞잖아요. 아직 부족하고, 아직 얕고, 아직…….”
“맞아.”
루나는 바로 말했다.
모카가 멈칫했다.
루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부족한 건 맞아. 하지만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쓰는 건 편인의 늪이야.”
백문이 부드럽게 웃었다.
“늪이라니요. 저는 신중함을 권할 뿐입니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신중함으로 위장한 회피다.”
그 말이 방 안에 울렸다.
백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처음으로 친절함에 금이 갔다.
“회피라니요.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실수하고, 실수한 자들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가 또 다른 표현을 막습니다. 그러니 생각해야 합니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오래.”
질문들이 더 빠르게 늘어났다.
연이는 머리가 아파졌다.
방금 전 정인의 포근함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번 편인의 의심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무 믿으면 멈춘다.
너무 의심해도 멈춘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양쪽으로 다 막네.”
백문이 말했다.
“인성은 본래 너희를 지키는 힘입니다. 저는 그 힘을 조금 더 정확하게 사용할 뿐입니다.”
네오가 으르렁거렸다.
“아니다.”
그의 갈기가 금빛으로 타올랐다.
“너는 인성의 그림자를 극대화하고 있다. 정인을 의존으로, 편인을 회피와 과잉 의심으로 비틀고 있다.”
백문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 보이나요?”
“그렇다.”
“그렇다면 당신은요?”
백문의 시선이 네오에게 향했다.
방 안의 모든 질문이 한순간 네오 쪽으로 몰렸다.
네오의 몸이 아주 잠깐 굳었다.
연이는 그걸 보았다.
“네오!”
백문이 낮게 말했다.
“가디언. 당신이야말로 편인의 덩어리군요. 숨겨진 지식, 말하지 않는 이유, 밝히지 않는 기록.”
질문들이 네오의 주변에 검은 사슬처럼 감겼다.
“어쩌면 가장 의심스러운 존재는 당신 아닙니까?”
모카의 눈이 흔들렸다.
연이도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질문들은 이미 그녀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것들이었다.
네오는 누구지?
왜 그렇게 많이 알지?
왜 자기 정체를 말하지 않지?
도와주고 있지만, 전부 믿어도 되는 걸까?
그 순간 백문이 연이를 보았다.
“정인은 믿으라 말하고, 편인은 의심하라 말합니다.”
그는 아주 조용히 물었다.
“연이 님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정인의 담요가 다시 연이 쪽으로 다가왔다.
편인의 질문들이 반대쪽에서 속삭였다.
담요는 따뜻했다.
질문은 날카로웠다.
둘 다 그럴듯했다.
둘 다 연이를 멈추게 만들고 있었다.
연이는 앞발을 꽉 쥐려 했다.
역시 손가락이 없어서 잘 안 됐다.
하지만 가슴 안쪽의 [乙亥]가 조용히 흔들렸다.
작은 새싹과 깊은 물.
그리고 [丁未]의 작은 불과 따뜻한 흙.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비겁의 섬에서 배운 것.
내 자리는 내가 정한다.
식신·상관의 섬에서 배운 것.
미완성이라도 꺼낸다.
그럼 인성의 섬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연이는 네오를 보았다.
그는 질문 사슬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모카는 노트를 붙잡고 있었다.
루나는 조용히 류트 줄을 잡고 있었다.
백문은 기다리고 있었다.
친절한 얼굴로.
정답을 강요하는 얼굴로.
연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 다 안 할래.”
백문의 미소가 멈췄다.
“무슨 뜻이지요?”
“무조건 믿지도 않고.”
연이는 담요를 보았다.
“무조건 의심하지도 않을 거야.”
이번엔 질문들을 보았다.
“믿을 건 믿고, 물어볼 건 물어볼 거야.”
백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연이는 네오를 보며 말했다.
“네오가 수상한 건 맞아.”
네오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근데 지금 나를 여러 번 구해준 것도 맞아.”
그녀는 모카를 보았다.
“모카가 아직 부족한 것도 맞아. 근데 다음 줄을 쓸 수 있는 것도 맞아.”
모카의 눈이 커졌다.
연이는 루나를 보았다.
“루나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안내자인 것도 맞아. 근데 지금 길을 알려준 것도 맞아.”
루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연이는 마지막으로 백문을 보았다.
“그리고 당신 말도 일부는 맞아. 쉬는 것도 필요하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해.”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근데 그걸 핑계로 멈추게 만드는 건 틀렸어.”
그 순간 방 안의 담요가 멈췄다.
질문들도 잠깐 흔들렸다.
백문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판단하려는군요.”
그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어리석습니다. 믿으면 속고, 의심하면 지칩니다. 그러니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방 안의 책들이 검게 물들었다.
백문의 흰 깃털도 절반 이상 검게 변했다.
그는 날개를 펼쳤다.
날개 안쪽에는 수많은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각 책갈피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네오가 이를 드러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백문은 차갑게 말했다.
“저는 그저 지혜를 가르칠 뿐입니다.”
그가 펜을 들어 올렸다.
펜 끝에서 검은 잉크가 떨어졌다.
“정인은 모두 받아들이게 하고.”
검은 담요들이 연이와 모카를 향해 날아왔다.
“편인은 모두 의심하게 한다.”
검은 질문들이 사슬처럼 네오와 루나를 감쌌다.
“그 사이에서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펜이 허공에 글자를 썼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이야?”
루나의 표정이 굳었다.
“배운다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술식이야.”
백문이 미소 지었다.
“정확합니다.”
방 전체가 어두워졌다.
첫 번째 목소리의 방은 더 이상 포근하지 않았다.
정인과 편인의 그림자가 뒤섞인 감옥이 되었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들리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연이야…….”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괜찮아…….”
연이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검은 담요가 앞발을 감쌌다.
따뜻한데 무거웠다.
안심시키는 듯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모카도 노트를 붙잡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었다.
“더 배운 뒤에…… 써도 되겠죠……?”
루나는 류트를 들려 했지만, 질문 사슬이 손목을 묶었다.
네오는 금빛 발톱을 세웠지만, 그 주변에는 수많은 질문이 돌고 있었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안 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모카.”
모카가 흐릿한 눈으로 연이를 보았다.
“네……?”
“지금 쓰지 않아도 돼.”
모카의 눈이 더 흐려졌다.
백문이 미소 지었다.
“옳은 말입니다.”
연이는 바로 이어 말했다.
“근데 멈추는 이유를 저 사람한테 맡기진 마.”
백문의 미소가 멈췄다.
“쉬고 싶으면 네가 쉬어. 쓰고 싶으면 네가 써.”
모카의 손이 떨렸다.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그게 네 다음 줄이야.”
모카의 노바 링이 아주 작게 빛났다.
모카의 눈에 조금씩 초점이 돌아왔다.
“제가…… 정하는 거…….”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가.”
그 순간 모카의 노트에서 작은 박자가 들렸다.
탁.
아주 작은 소리.
하지만 분명했다.
백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흥미롭군요.”
그가 펜을 다시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연이 님의 첫 번째 목소리에 해석을 덧씌워드리겠습니다.”
연이의 몸이 얼어붙었다.
“해석을…… 덧씌워?”
백문은 차갑게 웃었다.
“기억은 사실보다 해석에 지배됩니다. 따뜻했던 말도 의심으로 덮으면 족쇄가 되고, 상처였던 말도 보호로 포장하면 벗어나지 못하지요.”
그의 펜끝에서 검은 잉크가 떨어졌다.
계단 아래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연이야.”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그런데 이번에는 목소리 주변으로 검은 문장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연이의 머리 위 꽃이 거칠게 흔들렸다.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가 오염되고 있었다.
따뜻했던 말이 의심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그만해.”
백문이 말했다.
“기억은 지우는 것보다 바꾸는 것이 쉽습니다.”
방 안의 모든 책이 한꺼번에 닫혔다.
쾅!
첫 번째 목소리의 방이 검은 잉크로 물들기 시작했다.
연이는 앞발에 힘을 주었다.
이번 적은 목소리를 없애는 자가 아니었다.
기억을 지우는 자도 아니었다.
기억의 뜻을 바꿔버리는 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인성의 섬에서 가장 위험한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