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갈기 있는 고양이? 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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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갈기 있는 고양이? 네오
연잎 배가 비겁의 섬 선착장에 닿았다.
툭.
생각보다 작은 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뒤에서 검은 손들이 쫓아오고 있었는데, 섬 가까이에 다가오자 그것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
검은 손들은 안개 밖에서 꿈틀거리다가, 강물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연이는 연잎 배 가장자리를 붙잡은 채 한참 숨을 골랐다.
짧은 앞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손가락은 없지만, 어떻게든 붙잡기는 붙잡고 있었다.
“살았다…….”
말끝에 작은 콧김이 섞였다.
꿀.
연이는 바로 자기 입을 막았다.
“아니, 방금 건 숨소리야. 돼지 소리 아님.”
네오는 아무 말 없이 선착장으로 뛰어내렸다.
그 작은 몸이 사뿐히 내려앉자, 유리처럼 반짝이는 바닥에 금빛 발자국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연이는 그걸 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효과음만 있으면 진짜 게임인데.”
“아직도 게임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희망은 버리지 않았어.”
“현실 부정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군.”
“칭찬으로 들을게.”
연이는 조심스럽게 연잎 배에서 내려왔다.
아니, 내려오려고 했다.
짧은 다리가 생각보다 말을 안 들었다.
앞발을 먼저 디디고, 뒷다리를 옮기려는 순간 중심이 흔들렸다.
“어어?”
그녀는 그대로 선착장 바닥에 엎어졌다.
퍽.
아프진 않았다.
대신 자존심이 조금 아팠다.
네오가 옆에서 말했다.
“착지는 조금 연습이 필요하군.”
연이는 바닥에 엎어진 채 고개만 들었다.
“분석하지 마.”
비겁의 섬은 조용했다.
식물도, 집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섬 전체가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바닥은 검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주변에는 크고 작은 거울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어떤 거울은 손바닥만 했고, 어떤 거울은 문처럼 컸다.
거울마다 각도가 달랐다.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강을 비추는 거울.
연잎 배를 비추는 거울.
그리고 연이를 비추는 거울.
연이는 가까운 거울 하나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꽃돼지가 있었다.
분홍빛 몸.
작은 꽃.
짧은 앞발.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었다.
“아직도 적응 안 돼.”
연이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꼬리가 같이 흔들렸다.
그게 또 귀여웠다.
“아 진짜.”
“왜 그러지?”
“나는 걸크한게 추구미인데 귀여운 게 짜증 나.”
네오는 잠시 생각했다.
“... 복잡한 감정이군.”
“너는 몰라. 갑자기 외모 장르가 바뀐 사람의 마음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형이었다.”
“아, 그러셔”
연이는 대충 넘기고 다른 거울 쪽으로 걸었다.
섬 안쪽으로 갈수록 거울 조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떤 거울은 지금의 꽃돼지 연이를 비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연이는 멈춰 섰다.
거울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젖은 머리.
헐렁한 후드티.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
침대 위에 던져둔 충전기.
손에 들린 휴대폰.
그리고 피곤한 얼굴로 화면을 내려다보는 스물셋의 대학생.
연이였다.
원래의 연이.
그 모습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연이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앞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게 탁, 탁 소리가 났다.
거울 속 연이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현실에 있던 그대로였다.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건 연이가 알던 자기 얼굴이었다.
사람의 손.
사람의 다리.
사람의 눈.
연이는 자기 앞발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거울을 봤다.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조여왔다.
“나…… 저렇게 생겼었지.”
말이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넘기던 감각.
머리를 묶을 때 손목에 걸리던 머리끈.
젖은 양말을 벗어 던지던 짜증.
과제 파일이 날아갔을 때의 허탈함.
그 모든 게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연이는 앞발을 들어 거울에 댔다.
차가웠다.
거울 속 연이도 손을 들었다.
손바닥과 앞발이 마주 닿았다.
그 순간, 연이는 이상하게 울컥했다.
돌아가고 싶었다.
정말로.
방금 전까지는 “집에 갈래”를 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말이 갑자기 진짜가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
내 방으로.
내 침대로.
내 손가락으로.
내 몸으로.
“네오.”
연이가 작게 불렀다.
“응.”
“저거…… 진짜 나야?”
네오는 거울을 보았다.
그의 표정도 조금 진지해졌다.
“네 본래 모습이다.”
“그럼 저기로 들어가면 돌아갈 수 있어?”
“아니다.”
대답은 빠르고 단호했다.
연이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왜?”
“비겁의 섬의 거울은 출구가 아니다.”
네오가 천천히 말했다.
“네가 잃어버린 자리들을 비추는 곳이다.”
“자리?”
“네가 네 자신이라고 믿었던 자리. 남들이 보는 너. 네가 되고 싶었던 너. 그리고 네가 밀려났다고 느꼈던 자리.”
연이는 이해한 듯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알 것 같아서 더 싫은 말이었다.
그때 거울 속 연이가 움직였다.
연이는 숨을 멈췄다.
분명 방금까지 거울은 연이의 움직임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거울 속 인간 연이는 연이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더 차분했다.
조금 더 똑바로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연이답지 않게, 자신감 있어 보였다.
거울 속 연이가 입을 열었다.
“늦었네.”
연이는 얼어붙었다.
“……뭐?”
거울 속 연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너 항상 늦잖아.”
그 말은 작았다.
하지만 날카로웠다.
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거울 속 연이는 계속 말했다.
“알람도 늦고, 답장도 늦고, 사과도 늦고, 기회도 늦고.”
거울 표면에 작은 금이 갔다.
“이번에도 늦었어.”
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 뭐야?”
“나?”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연이.”
그 대답이 더 싫었다.
연이는 자기 가슴을 앞발로 툭 쳤다.
“연이는 나거든?”
“그래?”
거울 속 연이는 연이의 꽃돼지 몸을 위아래로 바라봤다.
“지금 그 모습으로?”
연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화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로 받아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거울 속 연이가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자기 방에 있던 모습.
자기 목소리.
자기 얼굴.
자기 표정.
만약 누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누구를 진짜 연이라고 할까.
분홍 꽃돼지?
아니면 저 사람?
네오가 연이 옆에 섰다.
“조심해라.”
“저거 뭐야?”
“비겁의 섬이 만든 반영이다.”
“반영?”
“너와 같은 얼굴을 가진 경쟁자. 네 자리를 노리는 또 다른 너.”
연이는 거울 속 연이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도플갱어네.”
“쉽게 말하면 그렇다.”
“내 인생 진짜 콘텐츠 많다.”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여긴 네 자리 없어.”
그 말이 섬 전체에 퍼졌다.
그러자 주변 거울들이 하나둘 빛났다.
작은 거울들마다 다른 장면이 비쳤다.
강의실 맨 뒷자리.
누군가가 먼저 앉아 있는 자리.
조별 과제 채팅방에서 늦게 올라간 연이의 메시지.
읽히지 않은 답장.
면접 취소 문자.
공모전 제출 실패 화면.
편의점 바닥에 떨어진 삼각김밥.
연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 삼각김밥은 빼라. 그건 너무 하찮잖아.”
하지만 목소리는 조금 흔들렸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 장면들은 생각보다 아팠다.
전부 사소한 일들인데.
하나하나는 웃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인데.
쌓이니까 자신이 계속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제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늦고, 놓치고, 결국 없는 사람이 되는 느낌.
그때 가장 큰 거울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다른 거울들과 달랐다.
검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거울 표면은 물처럼 흔들렸다.
그 안에는 연이의 본래 모습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 안이 아니었다.
검은 강 위에 서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그 연이의 발밑에는 아주 작은 새싹 하나가 돋아 있었다.
그리고 새싹 아래로 깊은 물결이 보였다.
거울 가장자리에 글자가 떠올랐다.
연이는 그 글자를 바라봤다.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을해.
처음 보는 글자처럼 낯설었는데, 이상하게 오래전부터 알던 이름 같았다.
가슴 안쪽이 작게 울렸다.
머리 위 꽃이 희미하게 빛났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찾았다.”
연이는 고개를 돌렸다.
“뭘?”
“네 일주.”
“일주?”
“네가 태어난 날의 기둥. 네 중심에 가장 가까운 글자.”
네오는 거울 속 [乙亥]를 바라보았다.
“을해일주.”
연이는 천천히 그 말을 따라 했다.
“을해일주…….”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머리 위 꽃이 조금 더 밝게 빛났다.
거울 속 인간 연이도 그 빛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표정이 굳었다.
“안 돼.”
거울 속 연이가 손을 뻗었다.
거울 속 [乙亥] 글자가 그녀의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네오가 낮게 외쳤다.
“연이, 막아라!”
“어떻게?”
“네 이름을 붙잡아!”
“그게 뭔소리야? 알기 쉽게 좀 얘기하란 말이야!”
“네 자리를 뺏기지 말라는 뜻이다!”
거울 속 인간 연이가 미소 지었다.
“너는 지금 네가 싫잖아.”
연이는 멈칫했다.
“그 몸도 싫고, 여기 있는 것도 싫고, 운이 나빠진 네 현실도 싫고.”
거울 속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거울 표면이 물처럼 출렁였다.
“그럼 내가 할게.”
“뭘?”
“내가 진짜 연이야”
그 말에 연이의 심장이 철렁했다.
거울 속 연이가 말했다.
“네 대신 내가 돌아갈게.”
순간 연이는 숨이 막혔다.
거울 속의 자신은 너무 그럴듯했다.
인간의 모습.
익숙한 얼굴.
정상적인 손.
정상적인 목소리.
지금의 연이가 잃어버린 것들.
그리고 거울 속 연이는 그것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너는 여기 있어.”
거울 속 연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모습으로 돌아가도 아무도 너라고 안 믿을걸?”
그 말이 목에 걸렸다.
연이는 앞발을 내려다봤다.
분홍빛.
짧고 둥근.
귀여운데 자기 같지 않은 몸.
잠깐이었다.
정말 잠깐.
그녀는 생각했다.
저 애가 대신 돌아가면?
저게 나보다 더 낫다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연이는 스스로에게 조금 충격이었다.
네오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너무 귀기울여 듣지 마.”
“근데…….”
“거울은 네가 싫어하는 틈을 파고든다.”
네오는 연이 앞에 섰다.
“비겁의 섬은 싸움의 섬이다. 하지만 상대는 남이 아니다. 네 자리를 빼앗으려는 또 다른 너다.”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말이 많네.”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주변 거울 조각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연이와 네오를 향해 쏟아졌다.
네오의 갈기가 금빛으로 타올랐다.
“뒤로!”
그가 뛰어올랐다.
작은 몸이 공중에서 회전했다.
금빛 발톱이 유리 조각들을 쳐냈다.
쨍!
쨍!
쨍!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네오는 착지하자마자 다시 자세를 낮췄다.
“[乙亥] 글자에서 눈 떼지 마!”
연이는 큰 거울을 바라봤다.
을해[乙亥].
그 글자는 거울 속 인간 연이와 현재의 꽃돼지 연이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둘 중 진짜 주인을 고르지 못하는 것처럼.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내 거라며.”
“그래.”
“그럼 왜 쟤한테 가려고 해?”
“네가 네 자신을 부정하고 있으니까.”
그 말에 연이는 숨을 멈췄다.
현실 부정.
꿈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이세계 전이물이라고 우겼다.
꽃돼지가 된 자신을 계속 밀어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으니까.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그 틈을, 거울 속 연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
연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식이야?”
거울 속 연이가 손을 뻗었다.
[乙亥] 글자가 그녀 쪽으로 더 끌려갔다.
연이의 머리 위 꽃이 흔들렸다.
네오는 다시 유리 조각을 베어내며 외쳤다.
“연이!”
연이는 눈을 감았다.
잠깐.
아주 잠깐만.
그리고 다시 떴다.
거울 속 인간 연이는 여전히 멋대로 자신처럼 서 있었다.
연이는 분명 겁이 났다.
아직도 집에 가고 싶었다.
아직도 이 몸이 싫었다.
아직도 이게 꿈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야.”
연이가 말했다.
거울 속 연이가 그녀를 보았다.
연이는 자기 앞발로 가슴을 툭 쳤다.
“나도 지금 내 꼴이 마음에 안 들어.”
네오가 잠깐 연이를 봤다.
“손가락도 없고, 다리도 짧고, 놀라면 꿀 소리 나와.”
말끝에 정말 작게 꿀, 하고 소리가 섞였다.
연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봐. 이것도 짜증 나.”
거울 속 연이가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근데.”
연이가 말을 끊었다.
그녀의 머리 위 꽃이 다시 빛났다.
아직 약했지만, 전보다 선명했다.
“그래도 연이는 나야.”
거울 속 연이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이 꼴이어도.”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짧은 다리라 걸음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였다.
“내가 늦었어도.”
또 한 걸음.
“꼬였어도.”
또 한 걸음.
“운이 망했어도.”
그녀는 큰 거울 앞에 섰다.
“내 자리는 내가 정해.”
그 순간, [乙亥] 글자가 크게 흔들렸다.
거울 속 인간 연이가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너는 아직 네가 뭔지도 몰라.”
거울 표면이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 검푸른 물이 흘러나왔다.
깊고 차가운 물.
그 물속에서 아주 작은 초록빛 새싹이 올라왔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乙.”
새싹 아래로 검푸른 물결이 감돌았다.
“亥.”
연이는 숨을 삼켰다.
을목.
해수.
작은 새싹과 깊은 물.
거울 속 글자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 인간 연이가 거울 밖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연이는 얼어붙었다.
거울에서 나온 인간 연이는 연이와 똑같은 얼굴로 웃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그럼 증명해봐.”
주변 거울들이 일제히 빛났다.
“네가 진짜 연이라는 걸.”
연이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상대를 바라봤다.
아직 손에 들어온 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알았다.
저 글자.
乙亥.
그건 자신이 되찾아야 할 첫 번째 기둥이었다.
네오가 옆에 섰다.
“물러서지 마라.”
연이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작은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응.”
그리고 그녀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근데 하나만 말하자.”
거울 속 연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연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얼굴로 그렇게 재수 없게 웃지 마.”
거울 속 연이가 웃음을 멈췄다.
비겁의 섬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