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마지막 기둥, 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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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마지막 기둥, 신미
등기소 가장 안쪽 서랍이 열렸다.
쿵.
쿵.
쿵.
땅속 깊은 곳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하층 원본 등기소 전체가 흔들렸다.
낡은 나무 서랍들이 하나둘 열리고, 오래된 계약서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치즈의 계약서.
크림의 계약서.
채무자 구역 주민들의 계약서.
꿈 지원 대출.
시간 담보 전환.
행운 유동화.
감정 자산 추적.
연체 재산정.
사후 첨부 약정.
수많은 계약서가 빛을 냈다.
하지만 그 빛은 황금빛이 아니었다.
낡은 종이의 누런 빛.
오래된 약속의 빛.
누군가 처음에는 진심으로 믿고 서명했을지도 모르는, 아주 오래된 본뜻의 빛.
연이는 숨을 삼켰다.
"이게...... 뭐야?"
네오는 서랍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갈기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문 밖에서 청토끼가 다가오고 있었다.
푸른 털.
흰 정장.
깨진 안경을 새로 고친 얼굴.
그리고 더 이상 감추지 않는 차가운 눈빛.
그는 서랍에서 떠오른 낡은 계약서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그 서랍은 닫으십시오."
연이는 청토끼를 보았다.
"왜?"
청토끼는 웃지 않았다.
"그건 고객님들이 열람할 수 있는 문서가 아닙니다."
"그래?"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럼 더 봐야겠네."
청토끼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연이 고객님."
그가 낮게 말했다.
"호기심은 비용이 큽니다."
"알아."
연이는 가슴 안쪽의 세 기둥을 느꼈다.
乙亥.
자기 자리를 붙잡는 힘.
丁未.
꿈을 다시 현실로 꺼내는 힘.
壬午.
본뜻과 덧말을 구분하는 힘.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재성의 섬은 돈만의 섬이 아니었다.
계약.
소유.
책임.
현실.
대가.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붙은 가격표.
이 모든 것을 끝내려면, 마지막 기둥이 필요했다.
서랍 안에서 낡은 계약서 한 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계약서가 펼쳐졌다.
첫 문장이 떠올랐다.
청토끼가 손을 뻗었다.
"멈추십시오."
네오가 그의 앞을 막았다.
작은 몸이었다.
하지만 청토끼는 즉시 멈춰 섰다.
네오는 낮게 말했다.
"한 발 더 오면 이번엔 손목을 잃는다."
청토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폭력은 비용이 큽니다."
"계산해라."
네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내가 낼 생각은 없지만."
청토끼의 얼굴이 굳었다.
그 틈에 계약서의 두 번째 문장이 떠올랐다.
연이의 가슴 안쪽이 울렸다.
세 번째 문장.
치즈가 숨을 삼켰다.
"책임의...... 무게."
모카는 귀를 세웠다.
"소리가 달라요."
"어떻게?"
연이가 물었다.
모카는 계약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청토끼 계약서는 찰칵, 철컥, 쾅. 닫히고 묶고 찍는 소리였어요."
그는 눈을 감았다.
"근데 이건...... 쿵, 사락, 탁."
"그게 무슨 뜻인데?"
"심장, 종이, 손바닥."
모카가 눈을 떴다.
"누군가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고 약속하는 소리예요."
치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처음 크림의 꿈을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던 날.
그때 치즈는 동생의 꿈을 팔려고 한 게 아니었다.
도와주려고 했다.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청토끼는 그 마음에 이자를 붙였다.
책임을 족쇄로 바꾸었다.
약속을 담보로 바꾸었다.
청토끼가 낮게 웃었다.
"감상적이군요."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중앙 원장에서 푸른빛이 치솟았다.
수많은 계약서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등기소의 벽과 천장이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낡은 서랍들이 하나둘 닫히려 했다.
치즈가 외쳤다.
"안 돼!"
모카가 귀를 막았다.
"소리가 다시 닫혀요!"
연이는 명리 노트를 펼쳤다.
"壬午!"
검푸른 물빛이 원본 계약서들 위로 퍼졌다.
덧말과 본뜻이 갈라졌다.
그러나 청토끼의 본계약은 너무 강했다.
재성의 섬 전체의 계약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壬午의 물빛이 흔들렸다.
연이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많아...... 너무 많아."
네오가 청토끼를 막으며 소리쳤다.
"연이! 전부 읽으려 하지 마라!"
"그럼 뭘 읽어!"
네오의 발톱이 청토끼의 계약서 장벽을 갈랐다.
쨍!
"처음 문장."
연이는 멈칫했다.
처음 문장.
최초의 대가.
본뜻.
덧말이 붙기 전.
이자가 붙기 전.
소유가 덧씌워지기 전.
연이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계약서들.
수많은 숫자들.
수많은 수수료들.
그 모든 것 아래에 있는 처음 문장.
누군가의 꿈을 돕고 싶었던 마음.
누군가와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
무언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불하려 했던 정당한 노력.
연이는 눈을 떴다.
"乙亥."
작은 새싹이 깊은 물 위에 뿌리내렸다.
원본 계약서들이 흔들리던 자리 아래에 뿌리가 생겼다.
"丁未."
작은 불씨가 따뜻한 흙 위에 섰다.
불씨는 청토끼의 계약서를 태우지 않았다.
대신 원본 계약서 위에 붙어 있던 흐릿한 먼지를 밝혀냈다.
"壬午."
큰 물 위에 한낮의 빛이 떠올랐다.
덧말들이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모두 본뜻 옆으로 밀려났다.
그제야 최초의 대가 계약서 마지막 장이 열렸다.
안쪽에서 두 글자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주 희미했다.
금속처럼 차갑고.
흙처럼 묵직했다.
신미.
辛未.
날카로운 흰 금속과, 따뜻하지만 무거운 흙.
연이는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辛은 칼 같았다.
하지만 사람을 베는 칼이 아니었다.
거짓된 조항과 진짜 약속을 구분하는 얇고 정확한 칼.
未는 땅 같았다.
하지만 사람을 묻는 땅이 아니었다.
씨앗을 품고, 책임을 현실로 세우는 땅.
네오가 낮게 말했다.
"찾았다."
연이가 중얼거렸다.
"신미......"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명리 노트 마지막 빈칸이 환하게 빛났다.
청토끼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그 글자는......"
연이는 그를 보았다.
"왜? 네가 찾기 전에 내가 찾아서 아쉬워?"
청토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건 고객님께 너무 무겁습니다."
"또 고객님."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나 고객 아니야."
그녀의 머리 위 꽃이 빛났다.
乙亥의 새싹.
丁未의 불씨.
壬午의 물과 빛.
그리고 辛未의 흰 칼날과 땅.
네 기둥이 처음으로 모두 연결되었다.
사주의 강에서 흩어진 네 기둥.
이제 연이 안에 모두 돌아왔다.
청토끼가 낮게 말했다.
"정면 대결이라."
그는 회중시계를 들어 올렸다.
"그럼 보여드리죠."
찰칵.
순간 등기소의 천장이 깨졌다.
위쪽 경매장의 금빛 구조물들이 무너져 내리듯 열렸다.
청토끼의 비행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유리병이 매달려 있었다.
크림의 꿈.
치즈의 선택권.
다른 주민들의 시간.
행운.
미래.
첫 도전.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부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
모든 것이 병에 담겨 있었다.
청토끼는 그 한가운데에 섰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계약서 날개가 펼쳐졌다.
"재성의 섬은 제 장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섬 전체에 울렸다.
"돈이 없으면 꿈도 없습니다."
계약서 날개가 흔들렸다.
"대가를 치르지 못하는 자는 선택할 권리도 없습니다."
황금빛 사슬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사랑도, 꿈도, 미래도, 모두 값을 치러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연이는 그 말을 들으며 숨을 들이켰다.
틀린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대가 없이 얻는 건 없다.
현실은 필요하다.
돈도 필요하다.
책임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청토끼의 말은 더 위험했다.
그는 진실을 들고 있었다.
다만 그 진실을 칼처럼 뒤집어, 사람을 묶고 있었다.
연이는 신미의 빛을 느꼈다.
辛.
자르는 기준.
未.
책임의 땅.
"맞아."
연이가 말했다.
청토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요?"
"대가는 필요해."
모카가 놀라 연이를 보았다.
치즈도 숨을 멈췄다.
연이는 계속 말했다.
"돈도 필요하고, 책임도 필요하고, 약속도 필요해."
청토끼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오르려 했다.
하지만 연이가 먼저 말했다.
"근데 빼앗는 건 대가가 아니야."
신미의 흰 빛이 번뜩였다.
"속이는 것도 계약이 아니고."
未의 땅빛이 등기소 바닥으로 퍼졌다.
"꿈을 담보로 잡아 말라 죽이는 건 책임이 아니야."
청토끼의 미소가 사라졌다.
연이는 앞발을 들었다.
"이제 잘라볼게."
辛의 빛이 앞발 끝에 모였다.
손가락은 없었다.
하지만 칼날은 생겼다.
아주 얇고 하얀 빛.
연이는 치즈의 원본 계약서와 사후 첨부 약정을 동시에 보았다.
"본뜻은 살리고."
흰 칼날이 사후 첨부 약정을 스쳤다.
치익.
"거짓 덧말은 자른다."
쨍!
치즈의 목걸이가 크게 갈라졌다.
쩌저적!
숫자가 흔들렸다.
목걸이에서 검은 사슬들이 빠져나왔다.
치즈는 숨을 삼켰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목걸이는 아직 남아 있었다.
연이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남겨."
치즈가 놀라 연이를 보았다.
"네?"
"네가 실제로 받은 교육 준비 비용."
연이는 치즈를 똑바로 봤다.
"그건 갚아야 하는 책임이야. 근데 꿈이나 선택권까지 빼앗기는 건 아니야."
치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의 목걸이가 작아졌다.
무거운 금속 족쇄가 아니라, 작은 약속의 팔찌처럼 변했다.
치즈는 목을 만지며 울었다.
"숨이...... 쉬어져요."
모카의 눈이 반짝였다.
"연이님, 진짜 됐어요!"
청토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개별 계약 하나를 정리한 것뿐입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수백 개의 유리병이 흔들렸다.
"이 섬 전체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하나씩."
"하나씩?"
청토끼가 비웃듯 말했다.
"수천, 수만 개입니다."
"그래."
연이는 모카를 보았다.
"모카."
"네!"
"첫 울림 찾아."
모카는 바로 귀를 세웠다.
수많은 유리병과 계약서.
그 안에서 같은 소리를 찾았다.
전부 다르지만, 공통된 소리가 있었다.
처음의 약속.
작은 시작.
누군가를 돕고 싶었던 마음.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
빚이 되기 전의 소리.
모카가 외쳤다.
"원본 소리는 다 아래쪽에 있어요! 위쪽 계약서들은 전부 덧붙은 소리예요!"
연이는 치즈를 보았다.
"치즈."
치즈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네."
"채무자 구역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어?"
"뭐를요?"
"자기 계약의 원본을 말하라고."
치즈의 눈이 커졌다.
연이는 말했다.
"네가 시작해. 네가 했던 것처럼."
치즈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등기소 밖, 채무자 구역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그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작았다.
하지만 목걸이의 족쇄가 사라진 만큼, 더 멀리 나아갔다.
"원본을 말하세요!"
골목의 문들이 하나둘 열렸다.
숫자가 걸린 목걸이를 한 동물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치즈는 외쳤다.
"처음에 무엇에 서명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넘긴 적 없는지 말하세요!"
청토끼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입을 막으십시오."
까마귀 직원들이 도장을 들었다.
하지만 네오가 움직였다.
금빛 선이 골목을 가로질렀다.
쨍!
도장들이 잘려 나갔다.
네오는 청토끼를 향해 낮게 말했다.
"이번엔 방해하지 마라."
청토끼의 계약서 날개가 펼쳐졌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네오의 갈기가 조용히 타올랐다.
"막는 게 아니다."
그는 연이 옆에 섰다.
"시간을 버는 거다."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
그때 채무자 구역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는 시간 담보에 동의한 적 없습니다!"
"제 아이의 웃음을 넘긴 적 없어요!"
"제 첫 도전은 재료비 담보가 아니었습니다!"
"행운 30%는 사후에 붙은 조항이에요!"
"저는 집을 담보로 했지, 가족의 기억을 담보로 한 적 없어요!"
목소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모카는 그 소리를 들었다.
"박자가 돌아와요."
정말이었다.
채무자 구역의 참는 소리가 바뀌고 있었다.
한숨이 아니라 발걸음.
체념이 아니라 주장.
목소리들이 원본을 불러냈다.
등기소의 서랍들이 미친 듯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락!
사락!
사락!
수많은 원본 계약서가 떠올랐다.
연이는 명리 노트를 펼쳤다.
네 기둥이 모두 빛났다.
그녀는 처음으로 알았다.
사주는 운명을 대신 살아주는 힘이 아니다.
자기 자리를 알고.
자기 말을 꺼내고.
기억을 다시 읽고.
정당한 책임과 부당한 착취를 구분하는 힘.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辛未."
흰 칼날과 따뜻한 흙빛이 동시에 퍼졌다.
칼날은 사람을 베지 않았다.
원본을 자르지 않았다.
오직 사후 첨부, 미고지 담보, 감정 자산 추적, 선택권 압류, 꿈 전체 소유권 같은 거짓 조항만 잘라냈다.
쨍!
쨍!
쨍!
경매장과 채무자 구역 곳곳에서 목걸이들이 깨졌다.
숫자가 줄어들었다.
유리병들이 흔들렸다.
어떤 꿈은 바로 주인에게 돌아갔다.
어떤 시간은 아직 일부만 풀렸다.
어떤 빚은 사라지지 않고 작은 약속으로 남았다.
연이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모두 없애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와 착취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신미였다.
청토끼가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멈추십시오!"
그의 계약서 날개가 거대하게 펼쳐졌다.
수천 장의 계약서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네오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연이가 막지 않았다.
네오의 금빛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쾅!
계약서 폭풍의 앞부분이 찢어졌다.
하지만 뒤쪽에서 더 많은 계약서가 몰려왔다.
청토끼는 소리쳤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연이는 그를 보았다.
"맞아."
청토끼가 멈칫했다.
연이는 말했다.
"돈은 필요해."
그녀의 발밑에 未의 땅이 퍼졌다.
"대가도 필요하고, 책임도 필요해."
辛의 칼날이 빛났다.
"근데 네가 만든 건 돈이 아니야."
청토끼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라고요?"
"겁을 담보로 잡은 거지."
채무자 구역의 목소리들이 커졌다.
"원본을 보여줘!"
"사후 약정을 떼어내!"
"내 꿈은 담보가 아니야!"
"내 시간은 내가 정해!"
청토끼의 계약서 날개가 흔들렸다.
그의 힘은 숫자에서 나왔다.
숫자는 계약서에서 나왔다.
계약서는 동의에서 나왔다.
그런데 원본이 다시 읽히고 있었다.
거짓 동의가 깨지고 있었다.
그 순간 청토끼의 회중시계에 금이 갔다.
쩍.
청토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됩니다."
그는 회중시계를 꽉 쥐었다.
"이 섬은 질서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계산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값을 매겨야 합니다."
"그래."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너일 필요는 없어."
辛未의 빛이 환하게 터졌다.
연이는 청토끼를 향해 달렸다.
짧은 다리.
꽃돼지 몸.
하지만 발밑에는 未의 땅이 열렸다.
그 땅은 그녀를 밀어주었다.
네오가 계약서 폭풍을 찢었다.
모카가 외쳤다.
"왼쪽! 진짜 계약서 아니에요!"
치즈가 소리쳤다.
"그건 사후 첨부예요!"
연이는 그 사이를 뚫고 나아갔다.
청토끼가 마지막 계약서를 펼쳤다.
연이는 壬午로 읽었다.
본뜻은 없었다.
처음부터 원본이 없는 계약서.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는 종이.
연이는 웃었다.
"이건 계약도 아니네."
청토끼의 눈이 커졌다.
연이는 辛의 칼날을 들어 올렸다.
"그냥 욕심이지."
흰빛이 계약서를 갈랐다.
쨍!
[최종 소유권 계약]이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未의 땅빛이 청토끼의 발밑을 붙잡았다.
돈과 꿈과 시간과 사랑을 전부 자기 장부에 올리려던 청토끼.
그 발밑에 처음으로 책임의 땅이 생겼다.
청토끼는 비틀거렸다.
"이럴 수는......"
그의 계약서 날개가 무너졌다.
유리병들이 하나둘 깨졌다.
그 안의 빛들이 하늘로 올라가 주인을 찾아 흩어졌다.
청토끼의 회중시계가 바닥에 떨어졌다.
찰칵.
시계가 멈췄다.
청토끼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푸른 털에서 금빛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청토끼는 고개를 들어 연이를 보았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돈은 다시 힘을 얻습니다."
연이는 숨을 몰아쉬며 그를 내려다봤다.
"알아."
"사람은 다시 빚을 지고, 다시 욕망하고, 다시 가격표를 붙일 겁니다."
"그것도 알아."
연이는 명리 노트를 닫았다.
"그러니까 다시 읽어야지."
청토끼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이는 말했다.
"계속."
그 순간 청토끼의 몸이 수많은 계약서 조각으로 흩어졌다.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계약서 조각들은 바람을 타고 흩어져, 재성의 섬 어딘가로 사라졌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끝난 것은 아니다."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이번 계약은 끝났어."
공중에 글자가 떠올랐다.
치즈는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무거운 족쇄는 사라지고, 작은 팔찌만 남아 있었다.
거기에는 숫자가 없었다.
대신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치즈는 울음을 터뜨렸다.
"크림한테...... 돌아가야 해요."
모카가 웃었다.
"가요. 빵 냄새 따라가면 되겠어요."
멀리 채무자 구역 어딘가에서 따뜻한 냄새가 흘러왔다.
갓 구운 빵 냄새.
첫 번째 성공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금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다시 만들기 시작한 냄새였다.
연이는 가슴 안쪽의 네 기둥을 느꼈다.
乙亥.
丁未.
壬午.
辛未.
드디어 흩어진 사주 글자들이 모두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자신의 운명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네오가 조용히 그녀 옆에 섰다.
"돌아갈 준비가 되어간다."
연이는 그를 보았다.
"현실로?"
"그래."
"그럼 너는?"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아주 짧은 침묵이었다.
하지만 연이는 그 침묵 안에서 많은 걸 느꼈다.
아직 읽히지 않은 덧말.
아직 펼쳐지지 않은 본뜻.
네오는 고개를 돌렸다.
"먼저 치즈의 동생을 보러 가자."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넘기네."
"지금은 빵 냄새가 우선이다."
모카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연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일단 빵 먹고 보자."
그녀의 머리 위 꽃이 조용히 흔들렸다.
재성의 섬 하늘에는 더 이상 황금빛 안개만 떠 있지 않았다.
곳곳에서 작은 빛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꿈.
시간.
선택.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며 다시 살아갈 힘.
연이는 그 빛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제 내 사주, 다 찾았다."
사주의 강 저편에서 바람이 불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던 날과는 다른 바람이었다.
돌아갈 문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