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오늘의 운세 제작진
Code Destiny · 5,348자
제34화. 오늘의 운세 제작진
현실로 돌아온 뒤, 며칠이 지났다.
놀랍게도 세상은 멀쩡했다.
하늘에서 타로 카드가 쏟아지지도 않았고, 엘리베이터가 달빛 문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연이는 다시 대학생이었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사고.
조별 과제 채팅방에서 눈치를 보고.
밤에는 내일의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지는 평범한 대학생.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나였다.
휴대폰 한가운데에 여전히 〈Code Destiny〉 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앱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것.
진짜로.
너무.
이상하게.
잘 맞았다.
아침 8시 12분.
연이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전공 과제 초안.
교양 발표 자료 정리.
조별 과제 피드백 확인.
그리고 지난주 강의 복습.
연이는 노트북 화면을 보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대학생 생존 게임 시작이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오늘 운세는 길었다.
크게 한 방이 오는 날은 아니지만, 작은 선택을 잘 쌓으면 이긴다고 했다.
본문부터 덤비지 말고 목차부터 잡으라는 말, 답장은 한 번 숨을 고른 뒤 보내라는 말, 오후 세 시를 넘기면 단것에 기대지 말라는 말이 이어졌다.
마지막 줄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연이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목차부터 잡으라고?"
그녀는 열려 있던 문서 제목을 보았다.
문서는 새하얬다.
끝내자는 파일명과 달리,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연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새 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 아래에 목차를 적기 시작했다.
1. 문제 제기.
2. 사례 정리.
3. 비교 분석.
4. 결론.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본문부터 쓰려고 했을 때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는데, 목차를 적으니 길이 보였다.
연이는 노트북 화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벌써 맞네."
그때 앱 아래쪽에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
연이는 가슴 안쪽의 기둥을 느꼈다.
丁未.
작은 불씨와 따뜻한 흙.
완성보다 초안.
무대 위 첫 줄.
현실에서는 목차와 문단.
연이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지 않았다.
말이 조금 어색해도 적었다.
문장이 길어져도 일단 두었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한 시간 뒤, 문서에는 꽤 많은 내용이 쌓여 있었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나 오늘 왜 이렇게 정상적이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연이는 웃으며 답장했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답이 없었다.
그러다 모카가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연이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반박이 안 되네."
연이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평범한 운세 앱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뒤에서 수달이 현실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연이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 앱, 수동 운영이었어?"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연이는 순간 자세를 바로 했다.
연이는 그 문장을 보고 잠시 손을 멈췄다.
네가 쓴 거야.
그 말은 늘 이상하게 좋았다.
앱이 맞췄다.
동료들이 도와줬다.
하지만 결국 키보드를 두드린 건 연이였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오전 수업은 무난했다.
교수님은 예정에 없던 짧은 퀴즈를 냈다.
연이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아침 운세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전날 밤 대충이라도 읽어둔 강의 노트가 떠올랐다.
정확히 한 문제.
어제 밑줄 그은 부분이 나왔다.
연이는 답을 적고 나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도 맞네."
수업이 끝나자 친구 민지가 물었다.
"너 오늘 뭔가 여유롭다?"
연이는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운세가 좋대."
민지가 웃었다.
"너 그런 거 안 믿잖아."
연이는 잠깐 생각했다.
사주의 강.
거울 속 연이.
무대.
기억 도서관.
청토끼의 계약서.
그리고 꽃돼지.
연이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믿게 되는 순간이 와."
민지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퀴즈 하나 맞았다고 그렇게까지?"
"그 이상이 있어."
"뭔데?"
연이는 가방끈을 고쳐 멨다.
"목차."
민지는 더 묻지 않았다.
점심시간.
연이는 카페 앞에 섰다.
원래라면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샀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 운세가 떠올랐다.
연이는 메뉴판을 보았다.
바닐라 라떼.
초코 프라페.
카라멜 크림 라떼.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적힌.
레몬티.
연이는 한참 고민했다.
"이걸 믿어야 하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연이는 눈을 깜빡였다.
연이는 메뉴판을 다시 보았다.
카라멜 크림 라떼가 갑자기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연이는 계산대 앞에 섰다.
"레몬티 하나 주세요."
직원이 물었다.
"500원 추가하시면 라지로 변경 가능하세요."
연이는 순간 멈칫했다.
치즈의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실제 필요량보다 많습니다.
연이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요. 기본으로 주세요."
결제 후, 그녀는 음료를 받아 들고 창가 쪽으로 가려 했다.
그때 또 운세가 떠올랐다.
연이는 창가 자리를 보았다.
햇빛이 예쁘게 들어오고 있었다.
공부하기 좋아 보였다.
하지만 벽 쪽 자리도 비어 있었다.
조용하고 콘센트가 가까웠다.
연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벽 쪽에 앉았다.
5분 뒤.
창가 쪽 블라인드가 고장 났다.
햇빛이 정면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앉은 학생이 눈을 찡그리며 자리를 옮겼다.
연이는 벽 쪽 자리에서 레몬티를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와."
진짜로.
너무 잘 맞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열었다.
연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 운세 제작진 진짜 열심히 일하네."
그 말과 동시에 앱에 작은 알림이 떴다.
연이는 마지막 줄을 보고 손가락을 멈췄다.
그 방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연이는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래. 아직은 아니겠지."
오후에는 조별 과제 회의가 있었다.
도서관 3층 세미나실.
연이는 들어가기 전에 앱을 확인했다.
연이는 화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또 너무 구체적인데."
회의가 시작됐다.
민지가 말했다.
"이번 발표 자료, 연이가 초안 올린 건 좋은데 뒷부분이 조금 약한 것 같아."
예전 같으면 바로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약하다.
내가 부족하다.
또 나 때문에 밀린다.
하지만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壬午.
본뜻과 덧말.
본뜻은?
뒷부분이 약하다.
덧말은?
나를 탓한다.
못 믿는다.
내가 별로다.
연이는 덧말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물었다.
"뒷부분 중에 사례 분석 쪽이 약한 거야, 결론 쪽이 약한 거야?"
민지는 바로 답했다.
"사례 분석. 자료는 있는데 연결이 조금 급해."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사례 사이에 비교 표 하나 넣을게."
재훈이 말했다.
"그럼 내가 자료 출처 더 붙일게."
수아가 말했다.
"디자인은 내가 맞춰볼게."
회의가 갑자기 부드럽게 흘렀다.
연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나?
누가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냥 일이 되었다.
회의가 끝날 때쯤, 민지가 말했다.
"연이 오늘 정리 잘한다."
연이는 순간 멈칫했다.
칭찬이었다.
이번에는 덧말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냥 받았다.
"고마워."
휴대폰이 진동했다.
연이는 화면을 보고 작게 웃었다.
"진짜 관리받는 느낌이네."
도서관 구석에 앉아 과제를 이어가는데, 모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연이는 그 메시지를 오래 바라봤다.
덜 꼬인다.
그 말이 좋았다.
현실이 완전히 쉬워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엉킨 실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
그런 평온.
저녁 무렵, 연이는 과제 초안을 다시 저장했다.
그리고 잠깐 앱의 [타로 한 장] 메뉴를 눌렀다.
"이제 일반 운세 앱 메뉴도 한 번 써볼까."
카드가 한 장 뒤집혔다.
연이는 화면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너무 정곡인데?"
그녀는 완벽하게 다듬으려던 결론 문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단 제출 가능한 80점짜리 초안을 조원들에게 보냈다.
답장은 빠르게 왔다.
연이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절제 카드도 맞았네."
그때 루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연이는 휴대폰을 빤히 봤다.
연이는 그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
동료들이 열심히 도와준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운세가 잘 맞는 이유는, 앱이 연이의 흐름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운세 세계 친구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다듬어주고 있는 것이다.
모카는 소리를 듣고.
루나는 흐름을 정리하고.
치즈는 비용과 조건을 보고.
크림은 음식과 컨디션을 살핀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연이의 하루에 작은 조언으로 도착한다.
연이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작게 말했다.
"나 진짜 과외받는 기분이네."
밤 10시.
연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무너지듯 침대에 눕지 않았다.
먼저 가방을 정리했다.
과제 파일을 다시 저장했다.
내일 할 일을 세 줄로 적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레몬티 컵을 버렸다.
아주 평범한 일들.
하지만 이상하게 뿌듯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연이는 웃었다.
"동료 기여 높음."
바로 채팅창에 메시지를 보냈다.
모카가 가장 먼저 답했다.
치즈가 이어 보냈다.
크림도 바로 왔다.
루나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연이는 그 문장을 보고 천천히 웃었다.
연이는 채팅방 목록을 닫으려다가, 회색 빈칸을 보았다.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연이는 잠시 바라보다가 화면을 껐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큰 모험은 없었다.
위험한 계약서도 없었다.
검은 사슬도 없었다.
그 대신 목차가 생겼고, 회의가 잘 끝났고, 단 음료를 피했고, 초안을 보냈다.
현실은 잔잔했다.
하지만 그 잔잔함 안에도 운은 흐르고 있었다.
연이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휴대폰 화면이 아주 희미하게 켜졌다.
연이는 눈을 감은 채 웃었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조언이네."
그녀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