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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estiny제5화. 같은 나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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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제5화. 같은 나의 편

Code Destiny · 4,544자

제5화. 같은 나의 편

거울 속 연이가 손을 들었다.

수많은 거울 조각들이 그녀 뒤로 떠올랐다.

조각마다 다른 연이의 얼굴이 비쳤다.

화를 내는 연이.

포기하는 연이.

비교하는 연이.

괜찮은 척 웃는 연이.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얼굴의 연이.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보고 질린 표정의 연이.

연이는 한숨을 삼켰다.

“와. 나 생각보다 버전이 많네.”

네오가 낮게 말했다.

“비겁의 섬 마지막 시험이다.”

“시험 이름이 뭔데?”

그 순간 공중에 글자가 떠올랐다.

[비겁의 섬 최종 시험]
[나와 같은 얼굴을 구분하라.]
[비견은 편으로 삼고, 겁재는 끊어내라.]

연이는 글자를 읽고 눈을 깜빡였다.

“잠깐만. 갑자기 난이도 왜 올라가?”

네오가 말했다.

“비견은 너와 같은 기운이지만 너를 지탱한다. 겁재는 같은 기운으로 네 것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좋은 내 편이랑, 내 자리 뺏는 가짜를 구분하라는 거지?”

“그렇다.”

연이는 거울 조각들을 바라봤다.

다 자기 얼굴이었다.

다 자기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구분하라는 건가.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쉽지 않을걸?”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온 건 화난 얼굴의 연이였다.

그 연이는 팔짱을 끼고 연이를 노려봤다.

“넌 맨날 참다가 뒤늦게 터지잖아.”

연이는 흠칫했다.

“아니, 팩트로 시작하는 건 너무하잖아.”

화난 연이가 말했다.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하면 되는데, 꼭 괜찮은 척하다가 혼자 화내지.”

“그만해. 나 방금 해수 심연 다녀와서 멘탈 촉촉한 상태야.”

“그래서 또 농담으로 넘기려고?”

연이는 입을 다물었다.

말문이 막힌 순간, 화난 연이의 발밑에서 검은 거울 조각이 자라났다.

네오가 외쳤다.

“조심해라. 저건 겁재로 기울고 있다.”

“왜?”

“너를 밀어붙여서 네 자리를 흔들고 있다.”

화난 연이가 날카롭게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신 말해줄게. 네가 못 하니까.”

그녀의 손에서 붉은 유리 조각들이 날아왔다.

연이는 몸을 움츠렸다.

네오가 튀어 올라 조각을 쳐냈다.

쨍!

“연이!”

“알았어!”

연이는 앞발을 땅에 디뎠다.

가슴 안쪽에서 [乙]의 기운이 따뜻하게 올라왔다.

초록빛 덩굴이 바닥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화난 연이는 멈추지 않았다.

“넌 늘 늦어. 화내는 것도 늦고, 말하는 것도 늦고, 결정하는 것도 늦어.”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이는 화난 연이를 똑바로 봤다.

“맞아. 나 늦게 터질 때 많아.”

화난 연이의 눈이 흔들렸다.

“근데 네가 대신 터져주는 건 싫어.”

“왜?”

“그건 내가 말하는 게 아니잖아.”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화가 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근데 내 자리를 빼앗아서 대신 소리치는 건 아니야.”

붉은 유리 조각들이 흔들렸다.

연이는 말했다.

“너는 내 편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사라지는 방식은 싫어.”

화난 연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발밑 검은 거울 조각이 사라졌다.

대신 붉은 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화난 연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참지만 마.”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신 늦게 터지지 않도록 연습할게.”

화난 연이가 빛으로 흩어졌다.

그 빛은 연이의 옆에 작은 붉은 거울 조각으로 남았다.

네오가 말했다.

“비견으로 바뀌었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오. 나 첫 포켓몬 잡은 느낌인데?”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마라.”

“근데 이해 잘 되는데?”

다음으로 나온 건 포기하는 얼굴의 연이였다.

그 연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안 해도 돼.”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또 안 될 거야.”

연이의 가슴이 살짝 내려앉았다.

그 말은 너무 익숙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지친 마음.

열심히 해도 또 꼬일 것 같은 예감.

기대하면 더 아플 것 같아서 미리 포기하고 싶은 마음.

포기하는 연이가 말했다.

“너도 알잖아. 기대하면 피곤해.”

연이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응. 알아.”

“그러니까 내려놔.”

그녀의 주변에 회색 거울 조각들이 떠올랐다.

조각마다 연이가 포기했던 장면들이 비쳤다.

지원서를 닫는 손.

보내려던 메시지를 지우는 손.

괜히 아무것도 아닌 척 휴대폰을 뒤집어놓던 밤.

포기하는 연이가 속삭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안 해.”

그 말은 달콤했다.

아프지 않게 해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연이는 잠시 흔들렸다.

그때 머리 위 꽃 아래로 푸른 물결이 감돌았다.

[亥]의 기운이었다.

깊은 물.

가라앉아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근데 나 실망 안 하려고 포기한 적 많거든.”

포기하는 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연이는 말했다.

“그때 편하긴 했어. 잠깐은.”

회색 거울 조각들이 흔들렸다.

“근데 나중에 더 오래 남더라.”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해보고 망한 건 속상한데, 안 해보고 넘긴 건 계속 생각났어.”

포기하는 연이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래도 무섭잖아.”

“응. 무서워.”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무섭다는 이유로 네가 내 선택을 대신 접는 건 싫어.”

회색 거울 조각들이 하나둘 떨어졌다.

포기하는 연이가 작게 말했다.

“그럼 힘들 때는?”

연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때는 쉬자.”

“포기하지 말고?”

“응. 쉬는 거랑 포기하는 거 구분하자.”

포기하는 연이는 한참 연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회색빛에서 은빛으로 바뀌었다.

작은 은색 거울 조각이 연이 옆으로 날아왔다.

네오가 말했다.

“두 번째 비견이다.”

연이는 숨을 내쉬었다.

“이거 생각보다 심리 상담인데?”

“비겁의 섬은 네 안의 같은 기운을 정리하는 곳이다.”

“그래도 서비스명은 좀 순화해줘. 방금 거의 멘탈 헬스장 느낌이었어.”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거울 속 연이가 손뼉을 쳤다.

짝.

“감동적이네.”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런데 전부 네 편이 될 수 있을까?”

이번엔 수십 개의 거울 조각이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비교하는 연이.

질투하는 연이.

억지로 웃는 연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연이.

“쟤는 잘하는데 넌 왜 못 해?”

“괜찮은 척해. 분위기 망치지 마.”

“너는 원래 운이 없잖아.”

“기대하지 마.”

“괜히 나섰다가 더 창피해져.”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연이는 양쪽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앞발이라 제대로 막히지 않았다.

“아, 진짜 단체 채팅방 알림 같아!”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전부 너야.”

목소리들이 커졌다.

“비교해.”

“숨겨.”

“포기해.”

“웃어넘겨.”

“네 자리 같은 건 원래 없었어.”

연이의 머리 위 꽃이 흔들렸다.

[乙]의 빛이 약해졌다.

[亥]의 물결도 검게 흔들렸다.

네오가 앞에 서서 거울 조각들을 베어냈다.

하지만 조각은 너무 많았다.

“연이! 하나씩 상대하지 마라!”

“그럼 어떡해!”

“기준을 세워라!”

“기준?”

네오가 외쳤다.

“너를 지키는 목소리와, 너를 빼앗는 목소리를 나눠라!”

연이는 숨을 삼켰다.

너를 지키는 목소리.

너를 빼앗는 목소리.

그 순간, 연이의 눈에 거울 조각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화난 연이는 사실 말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포기하는 연이는 사실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교하는 연이는 연이를 계속 작게 만들었다.

억지로 웃는 연이는 연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비하하는 연이는 연이의 자리를 비우게 만들었다.

연이는 앞발을 땅에 디뎠다.

“오케이.”

그녀의 머리 위 꽃이 빛났다.

“너희 중에 나를 지키려는 애들은 이쪽.”

초록빛 덩굴이 연이의 오른쪽으로 뻗어 나갔다.

붉은 거울 조각과 은색 거울 조각이 그 옆에 붙었다.

“나를 깎아먹는 애들은.”

연이는 거울 속 연이를 똑바로 봤다.

“거기 있어.”

거울 속 연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네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방금 대충 감 잡았어.”

“틀리면?”

“또 배우겠지.”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나 완벽하게 고르는 사람 아니야. 근데 이제 아무 목소리나 내 목소리라고 착각하진 않을 거야.”

그 순간 [乙亥]의 빛이 연이의 앞에 떠올랐다.

초록빛 새싹이 깊은 물 위에 뿌리를 내렸다.

물은 어둡지만 맑았다.

새싹은 작지만 단단했다.

연이는 그 빛을 향해 앞발을 뻗었다.

거울 속 연이가 소리쳤다.

“안 돼!”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비교하는 연이, 억지로 웃는 연이, 자기비하하는 연이의 거울 조각들이 한꺼번에 합쳐졌다.

검은 유리로 된 거대한 손이 만들어졌다.

그 손이 [乙亥]를 움켜쥐려 했다.

네오가 뛰어올랐다.

“연이!”

“알아!”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새싹아 버텨줘!”

네오가 순간 멈칫했다.

“그 이름으로 확정할 셈인가?”

“지금은 급하잖아!”

초록빛 덩굴이 폭발하듯 뻗어 나갔다.

덩굴은 검은 유리 손을 휘감았다.

하지만 손은 너무 컸다.

덩굴이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연이의 몸이 뒤로 밀렸다.

“으아, 힘 차이 너무한데!”

거울 속 연이가 외쳤다.

“봐. 결국 넌 약해.”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약한 거랑 지는 건 다르거든?”

그 순간 [亥]의 물이 움직였다.

깊은 물이 덩굴 아래로 흐르더니, 뿌리를 받쳐주었다.

덩굴이 더 굵어졌다.

초록빛과 푸른빛이 섞였다.

네오가 외쳤다.

“乙亥가 연결됐다! 지금이다!”

연이는 앞발을 세게 내리쳤다.

“내 자리에서 나가!”

덩굴이 검은 유리 손을 조였다.

쨍.

작은 금이 갔다.

거울 속 연이의 얼굴이 굳었다.

연이는 다시 외쳤다.

“내가 흔들리는 건 맞아!”

쨍.

금이 더 커졌다.

“근데 흔들린다고 네가 나 대신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쨍그랑!

검은 유리 손이 산산조각났다.

비교하는 연이.

억지로 웃는 연이.

자기비하하는 연이의 거울들이 함께 깨졌다.

조각들은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남은 것은 몇 개의 작은 거울 조각뿐이었다.

화난 연이의 붉은 조각.

쉬어도 된다고 말하던 은색 조각.

그리고 새롭게 생긴 작은 푸른 조각.

네오가 말했다.

“잘했다.”

연이는 숨을 헐떡였다.

“나 방금 진짜 잘한 거 맞지?”

“그래.”

“오케이. 저장 좀 해줘. 이런 순간 자주 안 와.”

네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공중에 문장이 떠올랐다.

[비견 분류 완료]
[겁재 정화 진행 중]
[乙亥 일주 회수율 87%]

연이는 글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왜 100% 아니야?”

거울 속 연이가 천천히 웃었다.

그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깨진 거울 조각 위에 서서, 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지.”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지막 겁재는 나니까.”

연이의 표정이 굳었다.

거울 속 연이의 몸 뒤로 검은 거울 날개가 펼쳐졌다.

그 날개에는 수많은 얼굴이 비쳤다.

연이가 부러워했던 얼굴.

연이가 비교했던 사람들.

연이가 되고 싶었던 모습들.

그리고 연이가 가장 싫어했던 자기 얼굴들.

거울 속 연이가 말했다.

“네가 내게서 이기려면, 나를 부수는 게 아니라.”

그녀는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네 안으로 다시 가져가야 해.”

연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나는 네가 버린 네 모습이니까.”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나를 없애면 네 일부도 같이 사라져.”

연이는 말을 잃었다.

네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연이.”

“응.”

“마지막 시험이다.”

연이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인간의 얼굴.

완벽해 보이는 표정.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빼앗는 힘.

겁재.

연이는 앞발에 힘을 줬다.

“오케이.”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번엔 보스전이네.”

거울 속 연이가 웃었다.

“맞아.”

섬 전체가 다시 흔들렸다.

공중에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최종 겁재전]
[거울 속의 나를 회수하라.]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회수라니. 말이 쉽지.”

네오가 말했다.

“네가 도망치면 저것은 네 자리를 빼앗는다.”

“그럼 싸우면?”

“부수기만 하면 너도 잃는다.”

“그럼 답이 뭐야?”

네오는 조용히 말했다.

“네 것으로 만들어라.”

연이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거울 속 연이도 똑같이 연이를 바라봤다.

둘의 얼굴은 달랐다.

하나는 인간.

하나는 꽃돼지.

하지만 눈빛은 처음보다 조금 닮아 있었다.

연이는 작게 말했다.

“진짜 어렵게 산다, 나.”

거울 속 연이가 대답했다.

“그러게.”

이번에는 비웃음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같은 사람이 같은 피로를 나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울 속 연이가 검은 날개를 펼치며 달려들었다.

비겁의 섬 최종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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