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말이 너무 많은 방
Code Destiny · 5,089자
제50화. 말이 너무 많은 방
수성의 문이 열리자마자 말들이 쏟아졌다.
문 너머에는 방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곳은 끝없이 이어지는 흰 복도 같기도 했고, 도서관 같기도 했고, 회의실 같기도 했다.
천장에는 수많은 말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글자들이 물처럼 흘렀다.
벽에는 귀가 있었다.
진짜 귀였다.
작고 큰 귀들이 벽 곳곳에 달려 있었고, 그 귀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이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와.”
그녀의 앞발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여긴 들어가기 전부터 피곤한데.”
모카가 귀를 세웠다가 바로 움찔했다.
“소리가 너무 많아요.”
루나가 낮게 말했다.
“수성의 방이야.”
치즈가 유리 조각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미두수 쪽 거문성도 같이 반응하고 있어요.”
연이는 노트에 적어둔 내용을 떠올렸다.
수성.
말, 생각, 연결, 정보.
거문성.
말, 의심, 논쟁, 질문.
둘 다 나쁘지 않았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질문은 어둠 속에 숨은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금 문 안에서는 그 힘이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말은 길이 아니라 칼이 되고 있었다.
질문은 문이 아니라 창끝이 되고 있었다.
그때 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밀려왔다.
“내 말 좀 들어.”
“아니, 너부터 들어.”
“그게 아니라니까.”
“왜 그렇게 말해?”
“아니라니까?”
“너는 항상 그래.”
“내가 언제?”
“방금 그 말투 뭐야?”
말들이 바람처럼 불어왔다.
아니, 바람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종이 조각이 한꺼번에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연이는 앞발로 귀를 막았다.
“아니, 말이 물리 공격이 되면 반칙이지!”
그 순간 복도 바닥의 글자들이 일어섰다.
글자들은 얇은 검은 선으로 변하더니, 바늘처럼 날아왔다.
네오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금빛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쨍!
말의 바늘 몇 개가 부서졌다.
하지만 부서진 바늘들은 다시 단어로 흩어졌다가, 더 작은 바늘이 되어 모였다.
“반박.”
“정정.”
“오해.”
“비꼼.”
“변명.”
글자 바늘들이 다시 날아왔다.
네오가 이를 드러냈다.
“끝이 없군.”
“베면 늘어나?”
연이가 물었다.
치즈가 유리 조각으로 글자들을 비춰보았다.
“네. 말을 자르면 더 많은 말로 갈라져요.”
“최악이다.”
연이는 몸을 낮췄다.
“그럼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네.”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성이 폭주하면 말이 말꼬리를 물고 번져. 거문성이 흔들리면 질문이 전부 공격처럼 들리고.”
모카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그의 귀가 떨렸다.
“원래 소리가 안 들려요.”
“원래 소리?”
연이가 물었다.
모카는 이를 악물었다.
“말이 너무 많으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묻혀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도 안쪽에서 커다란 말풍선 하나가 떠올랐다.
그 안에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말풍선이 순식간에 둘로 갈라졌다.
다시 넷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여덟으로.
열여섯으로.
말풍선들이 순식간에 복도를 가득 채웠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증식 속도 미쳤는데?”
그때 말풍선 하나가 크림을 향해 날아갔다.
크림이 움찔했다.
또 다른 말풍선.
크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 저는 그냥 힘내라고…….”
연이가 바로 소리쳤다.
“크림, 듣지 마!”
하지만 말풍선은 이미 크림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번엔 치즈에게 날아갔다.
치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팔찌가 흔들렸다.
“저는…….”
모카에게도 말풍선이 날아갔다.
모카의 귀가 축 처졌다.
루나의 류트에도 검은 문장이 감겼다.
루나의 손끝이 굳었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비겁하게 나온다.”
그 순간 네오에게도 말풍선이 몰려갔다.
네오의 금빛 갈기가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는 보았다.
그 말풍선들이 네오의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것을.
네오도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었다.
연이는 앞발을 꽉 쥐려 했다.
역시 잘 쥐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힘을 줬다.
“이 방은 사람 약점만 골라 찌르네.”
루나가 힘겹게 말했다.
“거문성의 나쁜 쪽이 커졌어. 질문이 진실을 찾는 게 아니라, 상대를 몰아붙이는 쪽으로만 움직이고 있어.”
“그럼 답하면 안 돼?”
치즈가 숨을 삼키며 말했다.
“답하면 더 물고 늘어져요. 이 방은 설명을 먹고 커져요.”
연이는 복도 안쪽을 보았다.
그곳에 거대한 입 하나가 떠 있었다.
눈은 없었다.
귀도 없었다.
입만 있었다.
그리고 그 입은 계속 말하고 있었다.
“왜?”
“어째서?”
“그 말의 진짜 뜻은?”
“숨기는 거 있지?”
“대답해.”
“반박해.”
“설명해.”
모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중심이에요.”
“말하는 입?”
“아니요.”
모카는 귀를 눌렀다.
“저건 듣지 않는 입이에요.”
연이는 숨을 멈췄다.
듣지 않는 입.
정확했다.
저 입은 계속 질문하지만, 듣지 않는다.
답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더 많은 말을 만들고, 더 많은 반박을 낳고, 모두가 서로의 말을 공격으로 느끼게 만든다.
수성의 길이 끊어진 것이다.
거문성의 질문이 어둠을 밝히는 대신, 어둠 자체가 되었다.
연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말풍선들이 그녀를 향해 몰려왔다.
연이는 멈칫했다.
맞는 말도 있었다.
벼락치기한 건 사실이다.
아직 별의 세계를 다 모른다.
수성도, 거문성도, 자미두수 성궁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
연이가 말했다.
말풍선들이 잠깐 멈췄다.
“나 아직 다 몰라.”
그녀는 노트를 펼쳤다.
“그런데 몰라서 묻는 것과, 찌르려고 묻는 건 달라.”
복도 벽의 귀들이 일제히 연이를 향했다.
연이는 계속 말했다.
“수성은 말로 이기라고 있는 별이 아니야.”
그녀의 머리 위 꽃이 빛났다.
“수성은 생각과 생각 사이에 길을 놓는 별이야.”
말풍선 하나가 갈라지려 했다.
연이는 바로 앞발을 들어 올렸다.
“멈춰.”
丁未의 작은 불씨가 문장 앞에 떠올랐다.
불씨는 문장을 태우지 않았다.
그 위에 아주 작은 쉼표를 만들었다.
말풍선이 갈라지지 않고 멈췄다.
모카가 눈을 크게 떴다.
“말이 멈췄어요.”
“쉼표야.”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말 사이에는 쉬는 곳이 있어야 해.”
루나가 류트를 조심스럽게 켰다.
이번엔 빠른 리듬이 아니었다.
짧고 낮은 음.
딩.
쉼표처럼 끊긴 음.
모카의 귀가 조금씩 올라갔다.
“들려요.”
“뭐가?”
“처음 말.”
모카가 눈을 감았다.
수많은 말풍선 사이에서, 그는 아주 작고 흐릿한 소리를 찾아냈다.
“왜 그렇게 말했어?” 아래에 숨은 소리.
“나 상처받았어.”
“내 말 좀 들어줘.”
“나 무시당한 것 같아.”
모카의 눈이 떴다.
“공격이 아니었어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도움 요청이었어요.”
연이는 거대한 입을 향해 걸어갔다.
네오가 옆에 서려 하자, 연이가 손을 들었다.
“잠깐.”
“혼자 가겠다는 뜻인가?”
“아니.”
연이는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이번엔 네가 베면 더 늘어날 것 같아서.”
네오는 잠시 침묵했다.
“맞다.”
“그러니까 길만 막아줘.”
네오의 입가가 아주 작게 움직였다.
“알겠다.”
그는 연이의 옆이 아니라 뒤쪽으로 물러섰다.
금빛 발톱으로 몰려오는 말의 바늘들을 쳐냈다.
베지 않고 튕겨냈다.
쨍.
쨍.
쨍.
연이는 거대한 입 앞에 섰다.
입은 그녀를 향해 벌어졌다.
“대답해.”
“설명해.”
“증명해.”
“틀렸잖아.”
연이는 눈을 감았다.
말이 너무 많았다.
생각도 많아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틀리면 어떡하지.
내 말이 또 다른 오해가 되면?
하지만 그 순간, 손목의 은빛 현이 울렸다.
딩.
그리고 모카가 외쳤다.
“연이님! 원래 소리는 ‘들어줘’예요!”
연이는 눈을 떴다.
“좋아.”
그녀는 거대한 입을 향해 말했다.
“너는 질문이 아니야.”
입이 멈췄다.
“너는 답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까.”
복도 전체가 흔들렸다.
거대한 입이 갈라질 듯 웃었다.
“그럼 너는 들을 수 있나?”
그 순간 수많은 목소리가 연이에게 쏟아졌다.
크림의 불안.
치즈의 죄책감.
모카의 열등감.
루나의 부담.
네오의 숨긴 이름.
민지의 증명 강박.
카페 사람들의 공허.
도서관 학생들의 말싸움.
현실과 운세 세계의 모든 말이 한꺼번에 연이에게 밀려왔다.
연이의 몸이 뒤로 밀렸다.
“윽!”
모카가 소리쳤다.
“연이님!”
네오가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연이가 앞발을 들었다.
“아직!”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말로 이기는 게 아니다.
듣는 것.
그게 수성의 원래 길이다.
거문성의 질문도 마찬가지다.
찌르기 위해 묻는 게 아니라, 어둠 속에 숨은 것을 들으려 묻는 것.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하나씩.”
목소리들이 멈칫했다.
“한 번에 다 말하면, 아무도 못 들어.”
그녀는 앞발로 바닥을 톡 쳤다.
통.
작은 소리.
식신·상관의 섬에서 무대를 열던 첫 박자처럼.
모카가 바로 알아들었다.
그가 발로 박자를 찍었다.
쿵.
루나가 류트를 맞췄다.
딩.
크림이 빵 바구니를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짝.
치즈가 종이 묶음을 접어 리듬을 만들었다.
탁.
네오는 꼬리로 바닥을 쳤다.
톡.
작은 박자가 생겼다.
말들이 그 박자에 맞춰 하나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쏟아지던 목소리들이 줄을 섰다.
처음에는 크림의 목소리.
“나는 그냥 힘내라고 빵을 줬어.”
그 말풍선이 맑아졌다.
다음은 치즈.
“나는 계산만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속지 않게 보고 싶었어.”
말풍선이 빛났다.
다음은 모카.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들으려고 해.”
다음은 루나.
“나는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도, 길을 잃은 음을 찾아줄 수 있어.”
마지막으로 네오의 말풍선이 떴다.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저 금빛으로 잠겨 있었다.
연이는 그것을 보았다.
묻고 싶었다.
정말 묻고 싶었다.
네 이름이 뭐냐고.
왜 숨기냐고.
왜 나를 돕냐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연이는 그 말풍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
네오의 눈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연이는 거대한 입을 바라보았다.
“수성은 억지로 캐묻는 별이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말과 말 사이에 길을 놓는 별이야.”
거대한 입이 비명을 질렀다.
“거문성은 의심으로 물어뜯는 별이 아니야.”
루나의 류트 소리가 높아졌다.
“어둠 속에 숨은 진짜 말을 찾는 별이야.”
모카가 외쳤다.
“원래 소리로 돌아와!”
그 순간 복도 벽의 귀들이 방향을 바꿨다.
서로를 향하던 귀들이, 이제 말하는 사람을 향했다.
듣기 시작했다.
말풍선들은 더 이상 갈라지지 않았다.
검은 바늘도 멈췄다.
거대한 입은 점점 작아졌다.
입술이 닫혔다.
그리고 입만 있던 얼굴에, 아주 작게 귀가 생겼다.
하나.
둘.
그 얼굴은 처음으로 듣는 표정을 지었다.
쨍.
복도 중앙의 검은 고리 조각이 깨졌다.
연이는 그제야 힘이 풀렸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싸움 던전…… 진짜 최악.”
모카가 달려와 웃었다.
“그래도 이겼어요!”
“이긴 게 아니라 들은 거야.”
연이가 말했다.
“말로 이기는 방이 아니었어.”
치즈가 고리 조각을 주워 들었다.
“이 조각은 아까보다 더 복잡해요. 태양과 달 조각보다 회전 흔적이 많아요.”
루나가 말했다.
“수성은 원래 빠르게 움직이는 별이니까. 흔들리면 퍼지는 속도도 빠를 거야.”
크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음은 뭐예요?”
연이는 위쪽을 보았다.
수성의 방 너머, 새로운 문이 보였다.
문은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웠다.
분홍빛과 초록빛, 금빛이 섞여 있었다.
문 위에는 금성의 문양이 떠 있었다.
그 옆에는 자미두수의 탐랑성처럼 보이는 보랏빛 별이 흔들렸다.
문틈에서는 향기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달콤해서, 위험할 정도로.
연이는 표정을 굳혔다.
“다음은 금성.”
모카의 귀가 쫑긋 섰다.
“그리고 탐랑성 같아요.”
크림이 작게 말했다.
“냄새는 좋은데…… 너무 달아요.”
네오가 조용히 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연이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홍빛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
“좋아하는 마음은 잡아야지.”
“매력은 증명해야지.”
“사랑은 선택받아야 의미가 있지.”
연이의 가슴 안쪽이 묘하게 흔들렸다.
제38화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 문장이 이번엔 조금 다른 빛으로 반짝였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금성.
탐랑성.
부부궁.
이 방은 왠지,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조심해라.”
연이는 그를 보았다.
“너도.”
네오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
연이는 그걸 보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분홍빛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향이 별빛 계단 위로 밀려왔다.
다음 방은 말보다 더 위험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