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별 없는 문
Code Destiny · 5,721자
제55화. 별 없는 문
검은 문이 열렸다.
문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손잡이도 없고, 문틀도 없었다.
그저 복덕궁 한가운데에 별빛이 빠져나간 구멍 하나가 떠 있었다.
텅 빈 원.
그 안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도 아니었다.
어둠이라면 어둡다는 감각이라도 있어야 했다.
저 안쪽은 그냥 없었다.
별도 없고.
소리도 없고.
방향도 없고.
그 안을 바라보는 순간, 연이는 잠깐 자기 생각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가면 안 된다.’
그 생각만 아주 겨우 남았다.
모카가 귀를 눌렀다.
“소리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요.”
루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줄이 떨리지 않았다.
조금 전 복덕궁에서 되찾은 달빛도, 검은 문 앞에서는 작아졌다.
치즈의 유리 조각은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크림의 바구니 안에서는 별가루빵들이 조용히 굳어갔다.
네오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금빛 갈기가 아주 낮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드물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이는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오.”
“물러서라.”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그래서 말하는 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차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긴장되어 있었다.
연이는 검은 문을 노려봤다.
“저게 무성으로 가는 길이야?”
루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길이 아니라 틈이야. 별의 궁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빈자리.”
치즈가 침을 삼켰다.
“성궁 구조상 저 위치에는 복덕궁의 회복 흐름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문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처음엔 바람 소리 같았다.
하지만 곧 다르게 들렸다.
철컥.
철컥.
고리가 맞물리는 소리.
둥.
별이 없는 심장이 뛰는 소리.
둥.
복덕궁의 달빛 호수에 검은 파문이 퍼졌다.
문 안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검은 손.
아니, 손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고리가 겹겹이 얽힌 팔.
금속과 어둠이 섞인 형태.
그 팔은 복덕궁의 공기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비틀었다.
끼이이이익.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연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저거 뭐야?”
치즈의 유리 조각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그 안에 글자 몇 개가 깨진 채 떠올랐다.
치즈가 눈을 크게 떴다.
“이름 조각이 보여요.”
“뭐라고?”
“흑…… 천…… 의……?”
루나가 숨을 삼켰다.
“흑천의.”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검은 문 안쪽의 고리들이 동시에 울렸다.
둥.
복덕궁 전체가 흔들렸다.
네오가 낮게 말했다.
“이름을 들었군.”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야 이름표 붙었네.”
검은 문 안에서 두 번째 팔이 나왔다.
이번엔 팔 끝에 작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그 별들은 제각각 달랐다.
작은 태양.
희미한 달.
떨리는 수성.
너무 붉은 화성.
분홍빛 금성.
보랏빛 탐랑성.
그 별들은 팔에 박힌 보석처럼 빛났지만, 빛나는 방식이 이상했다.
어떤 별은 미친 듯이 커졌다.
어떤 별은 꺼질 듯 작아졌다.
어떤 별은 자기 자리를 잃고 옆 별을 밀어냈다.
연이는 숨을 멈췄다.
“저게…… 사람들 안의 별을 움직이는 거야?”
검은 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성의 목소리였다.
“사람마다 작은 우주를 품고 있다.”
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그 작은 우주는 너무 불안정하다. 태양은 교만해지고, 달은 울며, 금성은 매달리고, 수성은 떠든다.”
검은 팔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러니 조율이 필요하다.”
연이가 바로 말했다.
“조율이 아니라 조작이잖아.”
“차이는 보는 자가 만든다.”
“아니. 당하는 사람이 느껴.”
무성은 낮게 웃었다.
“아직도 느낌을 믿는군.”
그 순간 검은 팔이 크게 휘둘러졌다.
복덕궁의 달빛이 찢어졌다.
은빛 조각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모카가 비명을 질렀다.
“달 소리가 끊겼어요!”
동시에 연이 일행의 뒤에 작은 우주들이 떠올랐다.
모카의 작은 우주.
그 안의 수성과 식신의 리듬이 흔들렸다.
치즈의 작은 우주.
재백궁과 수성, 무곡성 같은 실질의 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크림의 작은 우주.
금성과 달, 식신의 따뜻한 불이 약해졌다.
루나의 작은 우주.
태음성과 편인의 꿈길이 희미하게 갈라졌다.
네오의 작은 우주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려는 순간, 금빛 안개가 그것을 가렸다.
연이는 순간 깨달았다.
“우리한테 직접 건드리려고 해.”
검은 고리 팔이 다시 울렸다.
둥.
이번에는 모카가 쓰러졌다.
“윽!”
모카의 귀가 축 처졌다.
그는 입을 열었다.
“소리가…… 너무 커졌다가…… 갑자기 사라져요.”
그의 작은 우주 안에서 수성이 미친 듯이 회전했다.
말과 소리의 별이 너무 빨라져, 오히려 아무것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동시에 식신·상관의 리듬이 끊겼다.
모카는 노트를 꺼내려다 멈췄다.
“뭘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음은 치즈였다.
치즈의 유리 조각이 갑자기 수십 개로 갈라졌다.
각 조각마다 다른 가능성이 비쳤다.
“왼쪽으로 가면 위험하고, 오른쪽도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위험하고, 말해도 위험하고…….”
치즈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조건이 너무 많아요. 전부 읽어야 해요. 안 읽으면 또 속을 수 있어요. 다 확인해야…….”
연이가 소리쳤다.
“치즈!”
하지만 치즈는 멈추지 못했다.
재백궁과 수성이 동시에 과열된 것이다.
조건을 읽는 힘이 보호가 아니라 과잉 확인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크림은 바구니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았다.
“빵 맛이…… 없어져요.”
그녀의 작은 우주에서 달과 금성이 약해졌다.
좋아하는 마음.
따뜻한 맛.
즐거움.
그 감각들이 꺼지고 있었다.
크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만든 게 맛있는지 모르겠어요.”
루나는 류트를 켜려 했지만, 줄이 제멋대로 다른 음을 냈다.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완전히 끊겼다가.
다시 튀었다.
“위상이 틀어졌어.”
루나가 이를 악물었다.
“음이 자기 자리에 있지 않아.”
검은 팔은 마지막으로 연이를 향했다.
연이는 바로 경계했다.
하지만 이번엔 공격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주변에 네 기둥이 떠올랐다.
乙亥.
丁未.
壬午.
辛未.
그리고 그 위에 점성술의 별들이 겹쳐졌다.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토성.
자미두수의 성궁도 겹쳤다.
명궁.
관록궁.
복덕궁.
부부궁.
재백궁.
연이의 작은 우주가 강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연이는 숨이 막혔다.
자기 안을 남이 억지로 열어젖히는 느낌.
무성이 말했다.
“너는 잘 배웠다.”
검은 팔의 고리가 돌아갔다.
“그러니 네 우주는 더 조정하기 쉽다.”
태양이 커지려 했다.
연이는 자기 증명 강박을 느꼈다.
달이 작아지려 했다.
마음이 비어가기 시작했다.
금성이 흔들렸다.
보고 싶은 얼굴, 검은 비 속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수성이 빨라졌다.
생각이 폭주했다.
왜 네오가 숨기는지.
왜 그 남자가 떠올랐는지.
왜 자신이 계속 이런 일에 휘말리는지.
왜.
왜.
왜.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검은 팔이 그녀의 작은 우주 중심을 향했다.
명궁.
나를 만나는 방.
그 방이 또 흔들렸다.
이번엔 증명실이 아니라, 빈 방으로 변하려 했다.
무성이 속삭였다.
“별은 많을수록 아프다.”
“그러니 꺼라.”
연이의 머리 위 꽃이 흔들렸다.
그 순간.
네오가 움직였다.
금빛 발톱이 검은 팔을 향해 날아갔다.
촤악!
검은 팔 하나가 잘려나갔다.
하지만 잘린 팔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수십 개의 작은 고리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고리들이 다시 동료들의 작은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네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베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성이 웃었다.
“이제야 아는군.”
연이는 바닥에 앞발을 박았다.
숨을 들이켰다.
이건 전투가 아니다.
아니, 전투는 맞지만 칼싸움이 아니다.
각자의 작은 우주가 흔들리고 있다.
저 장치는 사람 안의 별을 제멋대로 키우고 줄인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각자의 중심을 다시 붙잡게 해야 한다.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모카!”
모카가 힘겹게 귀를 들었다.
“네…….”
“전부 들으려고 하지 마.”
“하지만 소리가 너무 많아요.”
“하나만 들어.”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지금 네가 제일 먼저 듣고 싶은 소리 하나.”
모카의 눈이 흔들렸다.
“하나…….”
“응. 전부 말고 하나.”
모카는 귀를 꼭 눌렀다.
수성이 계속 폭주했다.
수백 개의 소리가 그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그는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쿵.
작은 박자.
쿵.
자신의 심장.
모카가 눈을 떴다.
“제 박자…….”
그의 작은 우주에서 수성의 회전이 조금 느려졌다.
식신·상관의 리듬이 다시 이어졌다.
연이는 바로 치즈를 향해 외쳤다.
“치즈!”
치즈는 유리 조각들 사이에서 떨고 있었다.
“조건이 너무 많아요. 다 확인해야 해요. 안 그러면 또 속아요.”
“다 보지 마.”
“그러면 놓쳐요!”
“지금 네가 지키고 싶은 조건 하나만 봐.”
치즈가 멈칫했다.
“하나…….”
연이는 말했다.
“누가 속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네 역할이지?”
치즈의 눈이 흔들렸다.
흩어진 유리 조각들 중 하나가 밝아졌다.
거기에 단 한 문장이 떠올랐다.
치즈가 숨을 삼켰다.
“맞아요.”
그의 재백궁 빛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수성도 조금 느려졌다.
“제가 봐야 할 건 전부가 아니라, 동의 없이 건드린 흔적이에요.”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녀는 크림을 보았다.
“크림!”
크림은 바구니를 안고 울먹이고 있었다.
“맛이 안 나요.”
“지금 제일 처음 만들었던 빵 기억해?”
크림의 귀가 움찔했다.
“처음…….”
“치즈가 돌 같았다고 한 그 빵.”
치즈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건 사실이긴 했지만 지금은—”
크림이 아주 작게 웃었다.
“맞아요. 돌 같았어요.”
그 순간 크림의 작은 우주 안에서 달빛이 흔들렸다.
“근데 그때 오빠가 먹어줬어요.”
금성도 아주 작게 빛났다.
“딱딱하다고 했지만, 다 먹었어요.”
치즈가 조용히 말했다.
“그랬지.”
크림의 빵 하나가 다시 말랑해졌다.
“맛이 돌아왔어요.”
연이는 루나를 보았다.
“루나!”
루나는 제멋대로 튀는 류트 줄을 붙잡고 있었다.
“음이 자리를 잃었어.”
“그럼 하나씩 맞추지 말고.”
연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준음을 찾아.”
루나는 멈췄다.
“기준음.”
“모든 음을 맞추려고 하면 저 장치가 계속 흔들 거야.”
루나의 눈이 맑아졌다.
그녀는 류트의 가장 낮은 줄을 눌렀다.
딩.
작고 낮은 음.
흔들리지 않는 음.
그 음이 울리자 다른 줄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루나가 미소 지었다.
“좋아. 기준음 찾았어.”
연이는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보았다.
자신의 작은 우주.
태양이 흔들리고, 달이 약해지고, 금성이 떨리고, 수성이 폭주하고, 명궁이 비어가고 있었다.
무성은 속삭였다.
“남을 붙잡느라 네 우주를 놓치는군.”
맞았다.
연이는 자기 숨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동료들을 하나씩 붙잡았지만, 자기 안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네오가 그녀 옆에 섰다.
“연이.”
“왜.”
“하나만 잡아라.”
그 말은 방금 연이가 모두에게 했던 말이었다.
연이는 힘겹게 웃었다.
“너 따라 하냐?”
“필요한 말이다.”
“이번엔 맞네.”
연이는 눈을 감았다.
자기 안의 별들 중 하나.
가장 먼저 잡아야 할 것.
태양?
달?
수성?
금성?
아니.
명궁.
나를 만나는 방.
그 방이 흔들리면 전부 흔들린다.
연이는 자기 가슴을 앞발로 툭 쳤다.
“나는 연이야.”
명궁이 반응했다.
“꽃돼지여도.”
빛이 작게 켜졌다.
“사람이어도.”
빛이 더 커졌다.
“잘해도.”
“못해도.”
“누가 보든.”
“안 보든.”
연이는 눈을 떴다.
“내 중심은 내가 정해.”
명궁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보랏빛이 터졌다.
연이의 작은 우주 안에 축이 생겼다.
그 축을 중심으로 태양은 제 자리로 내려왔고, 달은 다시 조용히 떠올랐다.
수성은 속도를 낮췄고, 금성은 부드러운 빛으로 돌아왔다.
네 기둥도 그 축에 맞춰 섰다.
乙亥는 뿌리가 되고.
丁未는 불씨가 되고.
壬午는 물 위의 빛이 되고.
辛未는 경계의 칼이 되었다.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다른 느낌이었다.
전처럼 별 하나만 부르는 게 아니었다.
여러 힘의 위치가 동시에 보였다.
누가 과한지.
누가 약한지.
어느 방으로 힘이 새는지.
보였다.
정확히.
연이는 낮게 말했다.
“성반 정렬.”
그 말이 나오자, 그녀의 머리 위 꽃에서 원형 빛이 펼쳐졌다.
작은 점성술 원처럼.
동시에 그 안쪽에는 자미두수의 열두 궁이 작게 떠올랐다.
꽃돼지 머리 위에 뜬 작은 하늘.
모카가 눈을 크게 떴다.
“연이님 머리 위에…… 하늘이 생겼어요.”
크림이 속삭였다.
“꽃돼지인데 천문대 같아요.”
연이가 순간 말했다.
“그 표현은 좀…….”
하지만 말할 틈이 없었다.
검은 고리들이 다시 덤벼들었다.
연이는 앞발을 휘둘렀다.
베지 않았다.
고리의 각도를 바꿨다.
수성의 고리는 모카의 박자에 맞춰 느려졌다.
재백궁의 흔들림은 치즈의 문장에 맞춰 멈췄다.
달과 금성의 약한 빛은 크림의 기억으로 조금씩 회복됐다.
루나의 기준음은 전체 고리의 흔들림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네오의 금빛 발톱은 그 사이를 파고드는 무성의 검은 팔을 쳐냈다.
처음으로, 팀의 움직임이 맞았다.
모카가 듣고.
치즈가 확인하고.
크림이 감각을 되살리고.
루나가 음을 맞추고.
네오가 길을 열고.
연이가 전체 별의 위치를 조율했다.
무성의 검은 문이 크게 흔들렸다.
“흥미롭군.”
그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작은 우주를 서로 묶다니.”
연이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사람들은 혼자만 우주를 품는 게 아니야.”
성반이 더 크게 빛났다.
“서로 비추기도 해.”
검은 문이 뒤로 밀려났다.
복덕궁의 달빛이 돌아왔다.
무성의 팔들은 문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 목소리가 낮게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는 그 연결부터 끊어주마.”
검은 문이 닫혔다.
쾅!
복덕궁에 고요가 돌아왔다.
이번엔 텅 빈 고요가 아니었다.
숨 쉴 수 있는 고요.
달빛 호수는 다시 은빛을 품었고, 흔들의자는 조용히 흔들렸다.
찻잔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모두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모카가 가장 먼저 말했다.
“연이님.”
“응.”
“방금 진짜…… 능력 각성 같았어요.”
치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반 정렬. 이름도 나쁘지 않아요.”
크림은 눈을 반짝였다.
“꽃돼지 천문대보다요?”
연이는 바로 말했다.
“그건 금지.”
네오가 조용히 말했다.
“잘했다.”
이번엔 늦지 않았다.
연이는 네오를 보았다.
“이번엔 빠르네.”
“사실이니까.”
연이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복덕궁의 달빛 호수 위에 새로운 길이 떠올랐다.
보랏빛 계단.
그 계단은 성궁의 더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자미성에 가까워지는 길.
하지만 그 위쪽에서 검은 문양 하나가 나타났다.
별이 없는 원.
무성의 표식.
그리고 그 아래에 글자가 떠올랐다.
치즈의 얼굴이 굳었다.
“방금 마지막 말…… 진심이었어요.”
루나가 낮게 말했다.
“다음엔 우리 사이의 연결을 끊으려 할 거야.”
모카가 노트를 꼭 안았다.
크림은 바구니를 품에 안았다.
네오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연이는 머리 위에 아직 희미하게 떠 있는 작은 성반을 보았다.
성반 정렬.
각자의 우주를 보는 힘.
그리고 그 우주를 서로 비추게 만드는 힘.
무성은 그것을 두려워했다.
연이는 앞발을 들어 올렸다.
“좋아.”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지쳤지만 단단했다.
“다음은 연결을 지키는 싸움이네.”
보랏빛 계단 위에서 별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자미성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빛이 연이에게 응답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