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자미성 안쪽 계단
Code Destiny · 1,661자
제64화. 자미성 안쪽 계단
연이는 문을 통과하자마자 숨을 삼켰다.
계단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위로도, 아래로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각 층계마다 희미한 별빛이 새겨져 있었다.
밟을 때마다 빛이 잠깐 밝아졌다가 사그라들었다.
“……혼자네.”
연이는 중얼거렸다.
모카도, 치즈도, 크림도, 루나도, 네오도 없었다.
성반을 펼쳤다.
작은 빛 다섯 개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멀리 있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그래, 살아는 있다는 거지.”
연이는 성반을 다시 접었다.
그리고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통.
통.
발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이곳은 자미성의 안쪽.
무성이 왕좌를 세운 그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연이는 걸으며 혼잣말을 했다.
“나 원래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혼자 어두운 데 걷는 거.”
“무서운 영화도 항상 손으로 눈 가리고 봤단 말이야.”
대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계단은 점점 좁아졌다.
벽에 새겨진 문양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자리였다.
그다음엔 궁의 이름이었다.
명궁.
부부궁.
관록궁.
재백궁.
복덕궁.
노복궁.
부모궁.
전부 지나온 곳들이었다.
연이는 벽을 손끝으로 훑으며 걸었다.
“다 우리가 지나온 데네.”
문양이 점점 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 문양도 없는 벽이 나타났다.
그저 검었다.
무엇도 새겨지지 않은, 텅 빈 검음.
연이는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무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낮았다.
그리고 조금, 서둘렀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 갑자기.”
무성이 계단 아래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흑천의가 평소보다 더 어지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서 멈춰라.”
연이는 팔짱을 꼈다.
“왜.”
“아직 안 돼.”
연이는 그 말을 곱씹었다.
무성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늘 여유롭고, 늘 관조적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이르다.”
무성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연이는 고개를 기울였다.
“너무 이르다니, 뭐가.”
무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흑천의를 넓게 펼쳐 계단을 막았다.
“돌아가라.”
“싫은데.”
연이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나 여기까지 혼자 왔거든.”
“그러니까 이제 와서 돌아가라는 게 더 이상해.”
무성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정말 살짝.
하지만 연이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너 지금 떨었지.”
무성이 흑천의를 다시 정돈했다.
“착각이다.”
“아닌데.”
연이는 눈을 좁혔다.
“너 원래 이런 식으로 안 흔들리잖아.”
“맨날 여유 있게 우리 놀리고, 시나 읊고 그러잖아.”
“근데 지금은 뭔가……”
연이는 잠시 말을 골랐다.
“초조해 보여.”
무성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었다.
연이의 성반이 은은하게 진동했다.
“왜 초조한데.”
무성이 낮게 말했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다.”
“내가 아는 게 왜 항상 필요 없대.”
연이는 팔을 뻗어 검은 벽을 짚었다.
차가웠다.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이 안쪽에 뭐가 있는데.”
무성의 흑천의가 갑자기 크게 펄럭였다.
“가지 마라.”
이번엔 명령이 아니었다.
애원에 가까웠다.
연이는 순간 멈칫했다.
“……너 진짜 왜 그래.”
무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의 그림자가 평소보다 짙게, 벽에 늘어졌다.
“때가 되면 알게 된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연이는 무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그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했다.
“무성.”
“너 뭐 숨기는 거 진짜 많다.”
“근데 이번엔 좀 다른 느낌이야.”
무성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르다는 게, 뭐가.”
“몰라.”
연이는 솔직하게 답했다.
“근데 꼭……”
“네가 나 걱정해주는 것 같단 말이지.”
무성의 어깨가 흠칫했다.
정말 미세하게.
“착각이다.”
그가 다시 그렇게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있었다.
연이는 그 갈라짐을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 갈게.”
“걱정해주는 거면 더더욱, 나 봐야 될 것 같거든.”
무성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흑천의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연이는 이미 검은 벽을 뚫고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무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낮게 울렸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 말은 연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연이는 그 말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계단은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그 너머에, 심장처럼 뛰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