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돌아오라는 말
Code Destiny · 1,497자
제66화. 돌아오라는 말
균열은 다시 열렸다.
이번엔 전보다 얇았지만, 더 집요했다.
네오는 옥상 위에서 그것을 노려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그러다 갑자기 쏟아졌다.
이상한 비였다.
닿는 순간 검게 스며드는 비.
네오의 흰 털이 젖은 자리마다 얼룩이 남았다.
그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또 이거냐.”
빗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형체를 갖췄다.
전에는 실루엣뿐이었다.
옆모습, 코트 자락, 금빛 스침.
이번엔 달랐다.
전신이 또렷했다.
키가 큰 남자였다.
검은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도 젖지 않는 것처럼 서 있었다.
긴 코트.
깊게 눌러쓴 어둠 같은 그림자.
그리고 그 아래,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네오의 몸이 순간 굳었다.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누구냐.”
네오가 낮게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한 걸음 다가왔다.
빗물이 그의 발밑에서 갈라졌다.
“오랜만이군.”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네오는 이를 악물었다.
“모른다, 너 같은 건.”
“모른다고?”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동작이, 어딘가 익숙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었다.
“……은결아.”
네오는 숨이 멎었다.
그 이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몸 안쪽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반응했다.
심장이 아니라, 더 오래된 무언가가.
“그게 무슨.”
네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목소리가 흔들린 건.
“내 이름이 아니다.”
“그래.”
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슬픔이 섞인 웃음이었다.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언젠가 그건, 네가 가장 먼저 대답했던 이름이었다.”
네오는 발톱을 세웠다.
“헛소리 그만해라.”
“나는 너를 모른다.”
“모른다면.”
남자의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왜 그렇게 떨고 있지.”
네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빗속에서, 그 남자를 향해.
“돌아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는 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네오의 눈앞에, 아주 짧게, 다른 풍경이 스쳤다.
본 적 없는 풍경.
그런데도 그리운 풍경.
넓은 하늘.
낯선 별자리.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이건 뭐야.”
네오는 머리를 흔들었다.
환상이었다.
아니, 환상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남자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시간이 많지 않다.”
“네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 자리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네오는 이를 드러냈다.
“위협인가.”
“경고다.”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슬픔에 가까운 흔들림이었다.
“……네가 여기서 무엇을 지키려는지는 안다.”
네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걸 지키는 방법이, 너를 완전히 잃는 방식이라면.”
“그건 지키는 게 아니다.”
네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하게, 그의 두려움을 짚었다.
“……닥쳐라.”
그는 낮게 내뱉었다.
“내가 뭘 지키든, 그건 내가 정한다.”
남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하지만 잊지 마라.”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졌다.
“돌아오라는 말은,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
남자의 형체가 빗속으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네오는 순간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기다려.”
하지만 손이 닿기 전에, 남자는 완전히 빗속으로 흩어졌다.
남은 건 젖은 옥상과, 검게 얼룩진 발자국뿐이었다.
네오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그리움이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기억에 대한 그리움.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있을 자리는.”
그는 문득, 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발랄한 웃음.
투닥거리는 말투.
그리고 “이번엔 사라지지 마”라던 그 목소리.
네오는 눈을 감았다 떴다.
“여기다.”
짧은 확언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그는 옥상 난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하늘은 다시 평범했다.
하지만 그의 발밑에 남은, 검게 얼룩진 발자국만은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