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같은 발톱 자국
Code Destiny · 1,423자
제67화. 같은 발톱 자국
연이는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이번엔 처음 왔던 길이 아니었다.
옆으로 갈라진 통로.
무성을 피해 몰래 살펴보고 싶었다.
방금 전 그 목소리.
그 짧은, 다른 사람 같던 목소리.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통로는 좁고 낮았다.
벽에 손을 짚으며 걷던 연이는, 문득 손끝에 걸리는 감촉에 멈췄다.
거칠었다.
날카롭게 파인 자국이었다.
그녀는 성반을 들어 빛을 밝혔다.
벽에, 거대한 발톱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네 줄.
깊고 넓게, 벽을 통째로 긁어낸 흔적.
“……이게 뭐야.”
연이는 자국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네오가 진짜 사자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보다도 컸다.
훨씬.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 정도면……”
“건물 하나는 그냥 무너뜨릴 크기잖아.”
자국은 통로를 따라 계속 이어졌다.
연이는 그 흔적을 따라갔다.
그러다 통로 끝에서, 예상치 못한 걸 보았다.
작은 방.
방 한가운데, 찢겨 나간 흑천의 조각이 걸려 있었다.
무성이 걸치고 다니던, 그 검은 옷자락의 일부였다.
연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 천 위에도 무늬가 있었다.
가로로 뻗은 줄무늬.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살아 있는 것 같은 무늬.
연이의 눈이 커졌다.
이건.
벽에 새겨진 발톱 자국과, 똑같은 무늬였다.
간격도, 깊이도, 방향도.
“……같잖아.”
연이는 성반을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이거 완전히 똑같잖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성의 흑천의.
그리고 그 짐승의 발톱 자국.
같은 무늬.
같은 존재의 흔적.
연이는 조각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닿는 순간, 아주 희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포효의 잔향 같았다.
“무성, 너……”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연이는 얼른 조각을 놓고 돌아섰다.
무성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여기 있었나.”
연이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어, 그냥 좀 둘러봤어.”
무성의 시선이 벽의 발톱 자국을 훑었다.
그의 표정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연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성.”
“이 자국.”
“네 옷 무늬랑 똑같던데.”
무성은 흑천의를 손으로 가볍게 정돈했다.
“착각이다.”
“두 번째야, 그 말.”
연이는 팔짱을 꼈다.
“아까도 착각이라고 했잖아. 다른 목소리 냈을 때도.”
무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끈질기군.”
“원래 이런 성격이거든.”
연이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말해줘.”
“이 발톱 자국, 네 거야?”
“아니면 저 안쪽에 있던 그거, 네가 만든 거야?”
무성은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관하지도 않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더는 묻지 마라.”
무성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이번엔 서늘했다.
경고에 가까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 말도 벌써 세 번째야.”
“대체 뭘 그렇게 숨겨.”
무성은 대답하지 않고 흑천의를 펼쳤다.
찢겨 걸려 있던 조각이 그의 손짓에 따라 다시 그의 어깨로 돌아갔다.
“이 방은 잊어라.”
“여기서 본 것도.”
연이는 순간 발끈했다.
“내가 본 걸 왜 내 마음대로 못 잊어.”
“너를 위해서다.”
무성이 조용히 말했다.
그 말투가 이상하게, 평소의 조롱이 아니었다.
진심에 가까웠다.
연이는 그 말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무성.”
“너 진짜 뭐 숨기는 거 많다.”
“근데 지금은.”
그녀는 벽의 발톱 자국을 다시 바라봤다.
“그게 좀, 네 편이 아니라 네 위에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워.”
무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등을 돌리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연이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같은 무늬.
같은 흔적.
그리고 무성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
“……자미성, 너 진짜 뭘 감추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통로를 되짚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