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재회, 그리고 침묵
Code Destiny · 1,350자
제71화. 재회, 그리고 침묵
성반의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렸다.
연이는 자미성 안쪽 복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신호였다.
아주 짧은, 깜빡이듯 스치는 신호.
“네오?”
성반 위에 흐릿한 빛 하나가 잡혔다.
금빛.
흔들리는 금빛.
연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듯 성반을 끌어안았다.
“들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신호 너머로 어렴풋한 풍경이 겹쳤다.
현실의 거리.
가로등 밑에 앉은 흰 고양이 한 마리.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네오, 거기 있어?”
“……있다.”
목소리가 늦게, 아주 늦게 돌아왔다.
연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며칠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하루도 안 됐을지 모른다.
시간조차 두 세계 사이에서 어긋나 있었다.
“괜찮아? 균열 쪽은?”
“막았다.”
“막았다는 말 좀 그만해. 상태 좀 말해줘.”
“……조금 지쳤다.”
연이는 웃음이 나오려다 목이 메었다.
“그거 되게 솔직한 말이네.”
“사실이니까.”
성반의 빛이 흔들렸다.
신호가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연이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이름을 묻고 싶었다.
왜 자신을 지키는지 묻고 싶었다.
검은 비 속 남자와 무슨 관계인지 묻고 싶었다.
무성이 말한 “위에서 조종당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하지만 그 모든 질문 앞에서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훨씬 단순했다.
“보고 싶었어.”
신호 저편에서 네오가 잠깐 멈췄다.
“……나도.”
짧은 두 글자였다.
그런데 그 두 글자가 연이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네오.”
“말해.”
“너 진짜 이름, 나중에 말해줄 거지?”
침묵이 흘렀다.
연이는 그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
거절도 긍정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침묵.
“……때가 되면.”
“그 때가 언제인데.”
“나도 몰라.”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 서운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이해가 갔다.
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 안 물을게.”
“화났나.”
“아니.”
연이는 성반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그냥…… 네가 혼자 뭘 짊어지고 있는 게 싫어서 그래.”
신호가 지지직 흔들렸다.
“네오?”
대답이 없었다.
“네오!”
성반의 빛이 확 줄어들었다.
무언가 신호를 눌러 끄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무성의 목소리 같은 게 스쳤다.
“재회는 짧을수록 안전하다.”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누구 마음대로.”
“신호가 길어질수록 경계가 얇아진다.”
목소리는 대답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연이는 성반을 향해 소리쳤다.
“네오! 듣고 있으면 대답해!”
한 박자.
두 박자.
세 박자.
그리고 아주 작게, 끊어질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살아 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성반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
연이는 한참 동안 빈 성반을 내려다보았다.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댔다.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켜졌다.
“진짜…….”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그냥 옆에 있으면 안 돼?”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모카였다.
“연이! 여기 있었구나!”
연이는 급히 눈가를 훔치고 일어섰다.
“어, 어. 왜.”
모카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잠깐 연이의 얼굴을 살피더니, 아무것도 못 본 척 옆에 앉았다.
“치즈가 재백궁 쪽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대.”
“이상한 거?”
“발톱 자국. 되게 큰 거.”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흑천의 무늬랑 같은 거야?”
“어. 똑같대.”
연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반을 다시 품에 안았다.
빛은 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남은 온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가보자.”
그녀는 복도를 걸으며 다짐했다.
다음에 신호가 오면.
그땐 절대 끊기게 두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