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무성이 흔들리는 이유
Code Destiny · 1,296자
제72화. 무성이 흔들리는 이유
재백궁 안쪽, 낡은 계약서들이 바람도 없이 펄럭이는 방.
발톱 자국은 벽 절반을 가르고 있었다.
치즈가 그 앞에 서서 유리 조각을 들이대고 있었다.
“측정 완료. 이 자국, 흑천의 섬유 조성과 97퍼센트 일치합니다.”
“나머지 3퍼센트는?”
치즈가 안경을 고쳐 썼다.
“…모르는 성분입니다.”
크림이 빵 바구니를 끌어안은 채 발톱 자국을 살폈다.
“이렇게 큰 발톱이면…… 무성보다 훨씬 큰 거 아니에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방 안쪽 그림자가 흔들렸다.
“정답이다.”
무성이었다.
늘 그렇듯 그림자처럼,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났다.
연이는 바로 성반을 세웠다.
“또 뭘 하러 왔어.”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무성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느리고, 무거웠다.
“오늘은 거래를 하러 왔다.”
“거래?”
“정보와 정보를 바꾸자는 뜻이다.”
모카가 발을 굴렀다.
“왜 갑자기?”
무성은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유독 길었다.
“너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주는 대신, 나도 원하는 걸 하나 묻겠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함정 아니야?”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무성의 그림자가 조금 흔들렸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
“왜?”
무성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이 발톱 자국을 낸 존재는, 나보다 크다.”
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를 이곳에 세웠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성의 그림자가 이번엔 한참 흔들렸다.
마치 말을 고르는 것처럼.
혹은 말을 참는 것처럼.
“나는 자미성을 원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다.”
“…뭐?”
“나도, 위에서 조종당하고 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치즈의 유리 조각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크림은 빵 바구니를 놓칠 뻔했다.
모카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연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누가 널 조종해?”
“말할 수 없다.”
“조금 전엔 정보 거래라며.”
“그 이름만은 안 된다.”
무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급해졌다.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너희 전부 위험해진다.”
연이는 성반을 꽉 쥐었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데.”
“지금보다 더.”
무성은 고개를 든 것처럼 보였다.
실체가 없는데도 그 시선은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왕좌를 원한 적 없다.”
“그럼 왜 이런 짓을 해?”
“그릇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니까.”
그 말에 연이는 멈칫했다.
“그릇?”
무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지나쳤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것 같았다.
“……잊어라.”
“못 잊어. 방금 그릇이라고 했잖아.”
“내가 실언했다.”
무성의 그림자가 급격히 옅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잠깐만!”
연이가 손을 뻗었지만, 그림자는 이미 벽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만 남았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조심해라.”
“뭘 조심해!”
대답은 없었다.
방 안엔 침묵과, 벽에 남은 거대한 발톱 자국만 남았다.
모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무성 맞아?”
치즈가 유리 조각을 다시 들어 자국을 재측정했다.
“어조 변화 감지. 평소 대비 문장 길이 12퍼센트 증가, 확신도 지수 하락.”
크림이 작게 말했다.
“무성도…… 무서운 게 있나 봐요.”
연이는 발톱 자국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릇이라니.”
그녀는 성반을 다시 품에 안았다.
“누가 뭘 담았다는 거야, 대체.”
방 안의 계약서들이 다시 바람 없이 펄럭였다.
마치 대답을 아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