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다른 운명의 상대, 다시
Code Destiny · 1,268자
제73화. 다른 운명의 상대, 다시
부부궁으로 이어지는 좁은 회랑.
연이는 혼자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성반의 신호를 다시 잡아보려는 참이었다.
그때, 회랑 끝에 빗소리가 들렸다.
이상했다.
자미성 안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연이는 걸음을 멈췄다.
회랑 끝에 그가 서 있었다.
검은 비 속 남자.
긴 코트, 젖은 머리카락, 얼굴은 여전히 그늘에 가려 있었다.
“또 너야.”
연이는 경계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매번 너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이상하게 익숙한 억양이었다.
“너를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 뭐 하러 나타나?”
“보여주려고.”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끝에서 빛이 흘러나와 회랑 벽에 그림자 극처럼 펼쳐졌다.
한 남자의 실루엣.
인간의 형태.
카페에 앉아 웃고 있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고, 창밖을 보며 미소 짓는.
“이게 뭐야.”
“그였다.”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네가 아는 그 존재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연이는 벽에 비친 그림자를 응시했다.
웃는 얼굴.
편안한 자세.
전혀 낯설지 않은데도, 지금의 네오와는 너무 달랐다.
“…거짓말이지.”
“거짓이라면 왜 네 심장이 이렇게 뛰지?”
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정말로 뛰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었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웃을 때 눈이 접히고, 걸을 때 발소리가 나고, 손을 잡으면 체온이 있는.”
그림자 속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얼굴이 살짝 보였다.
낯익은 듯, 낯선 미소.
“지금의 그는 그 대가로 얻은 껍데기다.”
연이는 목이 메었다.
“…무슨 대가.”
“그건 그가 직접 말해야 한다.”
남자는 손을 내렸다.
그림자 극이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다만 묻고 싶다.”
“뭘.”
“만약 그가 원래 인간이었다면.”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네 곁에 있을 수 있었다면.”
“…….”
“너는 여전히 지금의 그를 선택할 텐가.”
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방금 본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렸다.
웃는 얼굴.
평범한 온기.
인간의 손.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 침묵을 유심히 보았다.
“보아라. 흔들리는군.”
“흔들리는 거 아니야.”
“그럼 왜 대답을 못 하지?”
연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건 지금 그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속에서는 방금 본 그림자가 계속 아른거렸다.
남자는 옅게 웃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겠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 보겠다.”
남자의 형체가 빗소리와 함께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음엔 더 많은 걸 보여주지.”
“필요 없어!”
연이가 외쳤지만, 남자는 이미 회랑의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연이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벽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금 본 웃는 얼굴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뭐야, 진짜.”
그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복잡한지.
네오가 인간이었다면.
지금처럼 힘을 숨기지 않고, 지금처럼 늘 위험 속에 있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카페에 앉아 웃을 수 있었다면.
연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상상하지 마.”
하지만 이미 상상은 시작되어 있었다.
그녀는 성반을 품에 안고 회랑을 걸었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이 이상한 동요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