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노바 스테이지 전야제
Code Destiny · 6,310자
제8화. 노바 스테이지 전야제
모카는 달렸다.
정확히는 달리는 척하면서,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빨리요! 늦으면 사전 이벤트 끝나요!”
연이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갔다.
통딩.
통딩.
통딩.
식신·상관의 섬 바닥은 걸을 때마다 리듬이 났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계속 달리다 보니 연이는 조금 억울해졌다.
“네오.”
“왜.”
“나 지금 진지하게 달리는 중인데 소리가 너무 귀여워.”
네오는 옆에서 가볍게 걸었다.
“좋은 일 아닌가?”
“아니. 나는 지금 긴박하게 움직이고 싶은데 바닥이 자꾸 통딩통딩 해.”
“네 몸과 섬의 기운이 어울린다는 뜻이다.”
“그 말도 기분 나빠.”
모카는 앞에서 외쳤다.
“괜찮아요! 식신·상관의 섬에서는 귀여운 것도 장르예요!”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위로인지 추가 공격인지 모르겠네.”
그렇게 조금 더 달리자, 노바 스테이지 전야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와.”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노바 스테이지는 거대한 원형 광장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광장 전체가 하나의 축제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 모양 조명들이 떠 있었고, 조명 사이로 색색의 천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공중에는 작은 무대들이 둥둥 떠다녔다.
어떤 무대에서는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어떤 무대에서는 요리사들이 냄비를 두드리며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거리 한쪽에서는 팬들이 응원봉을 꾸미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악기 장인들이 기타 줄과 마이크 장식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엄청났다.
달빛 크림빵보다 더 달콤한 냄새.
매콤한 소스가 끓는 냄새.
구운 옥수수와 버터 냄새.
과일 시럽이 반짝이며 굳는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따뜻한 수프 냄새.
연이는 앞발을 가슴에 얹었다.
“여기 진짜 위험하다.”
네오가 바로 몸을 낮췄다.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나?”
“아니.”
연이는 진지하게 말했다.
“다 먹고 싶어.”
네오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런 위험인가.”
모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게 바로 노바 스테이지 전야제예요. DEST1NOVA 본공연 전에 열리는 식신·상관의 섬 최대 축제!”
연이는 주변을 둘러봤다.
“공연 전에 이렇게까지 해?”
“당연하죠!”
모카가 가슴을 쳤다.
“DEST1NOVA는 그냥 노래만 하는 그룹이 아니에요. 이 섬의 먹는 즐거움, 말하는 용기, 노래하는 마음, 춤추는 몸, 전부를 깨우는 그룹이라고요!”
“팬심이 너무 강해서 해설이 약간 종교 같아졌어.”
“그만큼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네오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섬 중심부라 그런지 식상 기운이 가장 강하다.”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많이 먹고 많이 말하고 많이 노는 거지?”
“정확히는 표현 에너지가 순환하는 구조다.”
“내 말이 더 쉬운데?”
그때 모카가 연이 앞에 작은 종이 팔찌를 내밀었다.
“이거 차세요.”
“뭔데?”
“전야제 체험 팔찌요. 이걸 차면 네 가지 멤버 구역을 돌 수 있어요.”
연이는 팔찌를 받았다.
팔찌에는 네 개의 작은 칸이 있었다.
늑대.
판다.
토끼.
흑표범.
“이게 멤버 구역?”
“네. SOLV 존, BAMBI 존, LUNE 존, RAVEN 존.”
모카는 눈을 반짝였다.
“각 구역을 돌면 멤버의 매력을 알 수 있어요. 처음 온 팬들을 위한 입덕 코스죠.”
연이는 팔찌를 바라봤다.
“입덕 코스까지 있어?”
“물론이죠.”
“팬덤 운영 탄탄하네.”
모카는 매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DEST1NOVA 팬덤 이름은 OUR CODE예요.”
“오.”
“운명 코드 속에서 함께 빛난다는 뜻이죠.”
연이는 잠시 생각했다.
“좀 멋있는데?”
모카는 기다렸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죠!”
네오는 조용히 말했다.
“먼저 섬의 중심 구조를 파악하는 편이 좋다.”
연이가 말했다.
“그래. 멤버 구역 돌면서 파악하자.”
“그건 덕질이다.”
“현장 조사야.”
모카가 바로 끼어들었다.
“덕질은 최고의 현장 조사입니다.”
연이는 모카를 가리켰다.
“전문가가 그렇대.”
네오는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SOLV 존이었다.
입구에는 은빛 늑대의 거대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
깃발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연이는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래퍼답네.”
SOLV 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은색과 검은색이었다.
거리 바닥에는 랩 가사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빛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작은 부스 앞에서 자기만의 한 줄을 쓰고 있었다.
한 줄을 쓰면, 그 문장이 은빛 늑대 그림자로 변해 짧게 울렸다.
모카는 거의 경건한 얼굴이 되었다.
“여긴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들어가야 해요.”
연이는 빵 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 상태로 들어가도 돼?”
“괜찮아요. SOLV 형도 야식 좋아한다는 소문 있어요.”
“갑자기 인간미 생기네.”
부스 한가운데에는 ‘한 줄 랩 챌린지’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한 줄씩 자기 이야기를 말하면, 은빛 마이크가 그 말의 리듬을 잡아주었다.
작은 다람쥐가 마이크 앞에 섰다.
“오늘도 늦잠 잤지만, 그래도 출근은 했다!”
마이크가 반짝였다.
둥.
주변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다음은 고슴도치였다.
“가시는 많아도 마음은 말랑합니다!”
둥.
더 큰 박수.
연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되게 귀엽다.”
모카가 조심스럽게 마이크 앞에 섰다.
손에는 낡은 가사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나는 모카.”
둥.
“아직 무명.”
둥.
“하지만 오늘도 줄 서는 중.”
둥.
“언젠가 무대 앞이 아니라 위로 가는 중.”
마이크가 잠깐 조용해졌다.
그리고 은빛 늑대 그림자가 모카 뒤에 나타났다.
모카의 눈이 커졌다.
“가, 가능성 있음?”
연이는 박수를 쳤다.
“오! 시스템이 인정했네!”
모카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저 이거 평생 기억할래요.”
네오가 말했다.
“아직 가능성이다. 완성은 아니다.”
연이가 바로 말했다.
“오늘만큼은 입 닫아.”
네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SOLV 존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능성은 적어두고 끝내는 게 아니라, 다음 줄로 증명하는 거지.”
모카가 그대로 굳었다.
연이는 고개를 돌렸다.
은빛 늑대가 서 있었다.
SOLV.
포스터보다 실물이 더 강했다.
검은 재킷.
은빛 갈기처럼 흐르는 목털.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눈빛.
목에는 마이크 모양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주변 팬들이 숨을 삼켰다.
모카는 입을 열었다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연이가 옆에서 속삭였다.
“야. 네 최애 왔다.”
모카는 입술만 달싹였다.
“소, 소, 소…….”
SOLV가 모카의 노트를 힐끗 보았다.
“많이 썼군.”
모카가 그대로 굳었다.
“제, 제가요?”
“손때가 많다.”
SOLV는 짧게 말했다.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지.”
모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감사합니다…….”
SOLV는 연이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
“꽃돼지.”
연이의 눈썹이 바로 올라갔다.
“여기도?”
SOLV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 특이한 리듬이 있어서 봤다.”
“리듬?”
“걸음에 박자가 있다.”
연이는 자기 짧은 다리를 내려다봤다.
“이거 바닥이 마음대로 통딩거리는 건데.”
SOLV의 입가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래도 네 박자다.”
연이는 잠깐 멈췄다.
그 말은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SOLV는 더 말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모카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가셨다…….”
연이는 모카를 툭 쳤다.
“살아 있어?”
“아마요.”
“팬미팅 끝?”
“아뇨.”
모카는 눈물을 닦고 결연하게 말했다.
“이제 다음 구역 가야 해요.”
두 번째는 BAMBI 존이었다.
SOLV 존이 날카롭고 어두운 리듬의 공간이었다면, BAMBI 존은 완전히 달랐다.
따뜻했다.
둥글었다.
부드러운 크림색 천들이 하늘에 걸려 있었고, 곳곳에 작은 수프 냄비들이 끓고 있었다.
입구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연이는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풀렸다.
“여긴 들어오자마자 위로받는 느낌이네.”
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BAMBI 님은 메인 보컬이에요. 목소리가 진짜 따뜻해요. 듣고 있으면 내가 조금 괜찮은 존재가 된 것 같아요.”
BAMBI 존에는 ‘마음 수프 부스’가 있었다.
방문객이 오늘의 기분을 말하면, 그에 맞는 수프를 주는 곳이었다.
연이는 호기심에 줄을 섰다.
판다 직원이 물었다.
“오늘의 기분은?”
연이는 잠시 고민했다.
“배고팠다가, 맛있어서 행복했다가, 갑자기 내가 왜 돼지인지 생각나서 조금 복잡해졌고, 방금 래퍼 늑대한테 박자 칭찬 들어서 기분이 애매하게 좋아졌어요.”
판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합 감정이군요.”
“그걸 한 단어로?”
“네.”
직원은 작은 그릇을 내밀었다.
“달빛 감자 수프입니다. 복잡하지만 따뜻한 분께 드립니다.”
연이는 한입 먹었다.
부드러운 감자 맛과 은은한 허브 향이 입안에 퍼졌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엉킨 실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연이는 조용히 말했다.
“와.”
네오가 물었다.
“어떤가?”
“말하기 싫어. 혼자 느낄래.”
“그 정도인가.”
“응. 조금 감동.”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감동은 천천히 먹어야 오래가요.”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판다가 웃고 있었다.
BAMBI.
둥글고 부드러운 인상.
푸른 리본.
눈빛은 따뜻했지만, 무대 위 사람답게 묘한 힘이 있었다.
모카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BAMBI 님…….”
BAMBI는 모카를 보고 웃었다.
“아, SOLV 존에서 가능성 받은 수달이죠?”
모카는 그대로 굳었다.
“소문이…… 벌써……?”
“노바 스테이지 소식은 빨라요.”
BAMBI는 모카의 노트를 보았다.
“계속 써요. 목소리는 쓰다 보면 자기 온도를 찾아요.”
모카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BAMBI는 이번엔 연이를 보았다.
“그리고 당신은.”
연이는 긴장했다.
“네?”
“먹을 때 표정이 아주 솔직하네요.”
“그게 칭찬인가요?”
“최고의 칭찬이에요.”
BAMBI는 미소 지었다.
“맛있다고 느끼는 마음은 좋은 노래의 시작이거든요.”
연이는 수프 그릇을 내려다봤다.
식신.
먹고, 느끼고, 나누는 힘.
BAMBI의 목소리는 그걸 그대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는 LUNE 존이었다.
멀리서부터 기타 소리가 들렸다.
딩.
딩딩.
딩.
이 구역은 자유로웠다.
정말 자유로웠다.
천막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조명도 제멋대로 반짝였다.
바닥에는 누군가가 낙서한 코드들이 가득했다.
입구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연이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했다.
“이거 좋은데.”
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LUNE 님은 실수를 무대로 바꾸는 천재예요.”
LUNE 존에서는 ‘망한 멜로디 살리기’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참가자가 아무 소리나 내면, LUNE 존의 악기들이 그것을 음악으로 바꿔주었다.
작은 돼지 아이가 “삐익!” 하고 소리치자, 기타와 드럼이 바로 그 소리를 받아 경쾌한 후렴으로 만들었다.
연이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재밌겠다.”
네오가 말했다.
“하지 마라.”
“왜?”
“네가 할 것 같아서.”
“정확하네.”
연이는 결국 무대 위에 올라갔다.
마이크 앞에 서자, 관객 몇 명이 기대 어린 눈으로 봤다.
연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외쳤다.
“꿀!”
정적.
그리고 기타가 바로 들어왔다.
딩!
드럼이 받았다.
쿵짝.
신시사이저가 “꿀” 소리를 귀엽게 변형했다.
꿀, 꿀, 꿀, 꿀딩!
관객들이 폭소했다.
연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이걸 살리네?”
그때 기타를 멘 토끼가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긴 귀.
별 모양 피어싱.
장난기 가득한 눈.
LUNE이었다.
“좋은 소스였어!”
연이는 당황했다.
“좋은 소스?”
“응. 귀엽고 짧고 기억에 남아.”
“내 흑역사를 샘플링하지 마.”
LUNE은 기타를 튕기며 웃었다.
“흑역사도 리듬 타면 훅이 돼.”
연이는 잠시 멈췄다.
“그 말 좀 위험하게 설득력 있다.”
LUNE은 네오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오. 작은 사자 친구도 해볼래?”
네오는 바로 말했다.
“안 한다.”
“한 소리만 내면 돼.”
“안 한다.”
연이가 옆에서 말했다.
“해봐. 가디언 샘플링.”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LUNE이 기타를 들어 올렸다.
“자, 포효 한 번!”
네오는 눈을 감았다.
참는 듯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나는 사주의 강을 지키는 가디언이다.”
LUNE은 그 말을 듣고 바로 기타를 쳤다.
딩딩딩!
신시사이저가 네오의 낮은 목소리를 리듬으로 바꿨다.
가-디-언, 가-디-언, 사주의 강 가-디-언!
관객들이 환호했다.
네오의 얼굴이 굳었다.
연이는 배를 잡고 웃었다.
“네오 테마곡 생겼어!”
“지워라.”
LUNE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데? 나중에 무대에서 써도 돼?”
네오가 낮게 말했다.
“절대 안 된다.”
“생각해볼게!”
“생각하지 마라.”
네 번째는 RAVEN 존이었다.
이곳은 앞의 세 구역과 달리 조용했다.
하지만 비겁의 섬 같은 침묵은 아니었다.
긴장감 있는 조용함.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드는 고요함이었다.
바닥은 검은 유리처럼 반짝였고, 조명은 낮게 깔렸다.
입구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연이는 그 문장을 읽고 괜히 자세를 바로 했다.
“여긴 분위기가 확 다르네.”
모카도 목소리를 낮췄다.
“RAVEN 님 구역은 퍼포먼스 체험장이에요. 말보다 움직임이 중요해요.”
연이는 자기 짧은 다리를 내려다봤다.
“나한테 불리한 구역 같은데?”
네오가 말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네 몸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그 말은 맞는데 듣기 싫다.”
RAVEN 존에서는 ‘그림자 스텝’이 진행 중이었다.
발을 디디면 그림자가 그 사람의 감정을 따라 움직였다.
기쁜 사람의 그림자는 튀어 올랐고, 긴장한 사람의 그림자는 작아졌다.
연이가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자,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작은 꽃돼지 그림자.
그런데 그림자는 연이보다 훨씬 당당했다.
가슴을 펴고, 앞발을 척 올리고 있었다.
연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그림자가 나보다 자신감 있는데?”
네오가 말했다.
“네 안의 가능성이겠지.”
“아니면 그림자가 과대평가 중이거나.”
그때 검은 흑표범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RAVEN.
가까이서 보니 더 압도적이었다.
말이 많지 않은 타입이었다.
몸선이 조용했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주변 공기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RAVEN은 연이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나쁘지 않다.”
연이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뭐가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몸이다.”
“그게 칭찬이에요?”
RAVEN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몸이다.”
연이는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꽃돼지.
짧은 다리.
동그란 배.
“이 몸이요?”
“중심이 낮다.”
“아.”
“잘 구르면 덜 다친다.”
“그건 좀 현실적인 장점이네요.”
RAVEN은 조용히 말했다.
“무대에서는 멋있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게 먼저다.”
연이는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았다.
네 구역을 다 돌고 나자, 연이의 팔찌에 네 개의 빛이 들어왔다.
은빛 늑대.
하얀 판다.
달빛 토끼.
검은 흑표범.
모카는 팔찌를 보며 감격했다.
“입덕 코스 완료예요.”
연이는 손목, 아니 앞발에 걸린 팔찌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나도 OUR CODE 임시 회원인가?”
모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네오가 말했다.
“우리는 조사를 한 것이다.”
연이와 모카가 동시에 말했다.
“입덕한 거야.”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노바 스테이지 중앙에서 큰 종이 울렸다.
둥.
둥.
둥.
광장의 모든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대신 중앙 무대 위로 거대한 달 조명이 떠올랐다.
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카는 숨을 삼켰다.
“본공연 시작이에요.”
연이도 무대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직접 만난 네 명이, 이제 하나의 그룹으로 무대에 오를 시간이었다.
SOLV의 말.
BAMBI의 온기.
LUNE의 자유.
RAVEN의 몸짓.
그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면 어떤 무대가 될까.
연이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했다.
네오도 조용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이는 그를 힐끗 봤다.
“너도 기대하지?”
“공연의 기운을 관찰하는 중이다.”
“그게 기대야.”
“아니다.”
그 순간 관객들이 외쳤다.
“DEST1NOVA!”
“DEST1NOVA!”
“DEST1NOVA!”
모카는 양손을 모으고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무대가 어두워졌다.
첫 번째 조명이 켜졌다.
은빛.
두 번째 조명이 켜졌다.
따뜻한 흰빛.
세 번째 조명.
달빛.
네 번째 조명.
검은 별빛.
DEST1NOVA의 네 실루엣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연이는 숨을 삼켰다.
전야제는 끝났다.
이제 진짜 무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아무도 보지 못한 하늘 위에서.
검은 깃털 하나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