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숙요의 정원
Code Destiny · 2,027자
제81화. 숙요의 정원
문 너머는 소리부터 달랐다.
바람이 없는데 무언가가 흔들리는 소리.
사르륵.
사르르륵.
연이는 앞발을 내디뎠다.
바닥이 없었다.
그런데 발이 꺼지지 않았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은빛과 금빛 실이 촘촘히 짜여 마루처럼 깔려 있었다.
“여기 뭐야…….”
모카가 귀를 세웠다.
“소리가 이상해요. 한 가지 소리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
“전부요. 심장 소리, 발소리, 숨소리…… 그런데 다 실처럼 얇게 들려요.”
치즈가 유리 조각을 들었다.
유리에는 아무 문장도 뜨지 않았다.
대신 은은한 빛만 반사됐다.
“여긴 조건을 안 보여줘요. 그냥…… 비춰요.”
루나가 류트 줄을 조심스레 튕겼다.
딩.
그 소리가 공간 전체로 번져나갔다.
퍼지고, 갈라지고, 다시 하나로 모였다.
“여기, 소리가 메아리가 아니라…… 짜여요.”
크림은 바구니를 꼭 끌어안았다.
“빵 냄새가 안 나요. 대신…… 실 냄새가 나요.”
“실 냄새가 어떤 건데.”
연이가 묻자 크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따뜻한데, 좀 슬퍼요.”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실들이 비처럼 늘어져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비.
내리다 만 채로 허공에 걸린 무수한 실오라기.
그 끝에서 색색의 빛이 아주 작게 맺혀 있었다.
은색.
금색.
보랏빛.
옅은 붉은빛.
전부 스물여덟 갈래.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천장처럼 걸려 있었다.
네오는 말없이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이 유독 한 지점, 실들이 가장 빽빽하게 얽힌 중심을 오래 바라봤다.
“여기, 낯이 익나.”
연이가 조용히 물었다.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갈기를 낮게 눕혔다.
그 순간, 실 하나가 저절로 움직였다.
스르르.
실이 아래로 흘러내리더니, 사람의 형상처럼 뭉쳤다.
머리카락도 아니고 옷자락도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가닥의 가느다란 명주실이 겹치고 짜여 하나의 몸이 되었다.
얼굴은 계속 바뀌었다.
눈이 생겼다가, 실이 흘러 사라지고, 다시 다른 자리에서 눈이 맺혔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겹의 속삭임이 겹쳐 하나의 말이 되어 나왔다.
“왔구나.”
연이는 놀라 뒷걸음질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누구야, 넌.”
실로 짜인 존재가 고개, 아니 실 뭉치를 살짝 기울였다.
“나는 타래.”
“이 정원의 것들을 잇고, 풀고, 다시 매는 자.”
모카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긴 어디예요?”
타래의 몸을 이루던 실들이 잠시 부드럽게 일렁였다.
“숙요의 정원.”
그 이름이 나오자, 머리 위 스물여덟 개의 빛 무리가 동시에 아주 작게 떨렸다.
챙, 하는 소리 대신 현이 울리는 듯한 낮은 진동이 지나갔다.
“여긴 뭘 하는 곳인데요?”
치즈가 유리 조각을 든 채 물었다.
타래는 대답 대신 손, 아니 실 다발로 이루어진 손끝을 뻗어 가장 가까운 실 한 가닥을 건드렸다.
그 실이 은은하게 빛나며 노래하듯 울렸다.
“이건 너의 것이다.”
타래가 연이를 보며 말했다.
“너와, 저 사람 사이의 것.”
실을 따라가 보니 그 끝은 네오에게, 다른 끝은 연이에게 닿아 있었다.
연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거 왜 우리 사이에 실이 있어요?”
“모든 인연에는 실이 있다.”
타래의 목소리는 나무라지 않고 그저 사실을 말했다.
“짧은 실도 있고, 긴 실도 있고, 끊어졌다 다시 이어진 실도 있다.”
타래가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전혀 다른 실 하나를 건드리자, 그 실은 탁하고 둔한 소리를 냈다.
투욱.
“이건 억지로 이은 것.”
그 실은 빛이 흐릿했다.
“너희가 이미 잘라낸 인연이지. 청토끼의 것처럼.”
연이는 숨을 삼켰다.
“그럼 좋은 실이랑 나쁜 실이 따로 있는 거예요?”
“아니다.”
타래가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저절로 울리는 것과, 억지로 울려야 하는 것이 있을 뿐.”
머리 위 스물여덟 개의 빛무리가 천천히 회전했다.
“저것들이 이곳의 바닥이다.”
타래가 시선을 위로 향했다.
“스물여덟 개의 매듭. 모든 실이 저 매듭 중 하나를 지나 흐른다.”
“무슨 매듭인데요?”
모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타래는 짧게 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여러 겹의 웃음이 겹쳐 부드럽게 흩어졌다.
“설명은 필요 없다.”
타래가 말했다.
“걸어보면 안다.”
정원 바닥의 실들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길을 만들었다.
연이 일행 앞으로 은은한 빛의 길이 열렸다.
“이 정원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다.”
타래가 앞장서며 말했다.
“그래서 흘러들어온 것들도 있지.”
그 순간, 타래의 실 몸 일부가 아주 잠깐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검은빛이 살짝 스쳤다가 사라졌다.
“무슨 뜻이에요?”
연이가 물었다.
타래는 대답 대신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을 뻗어 허공에 늘어진 실들 중 하나를 골랐다.
그 실은 다른 실들과 달랐다.
색이 없었다.
빛도 없었다.
차가웠다.
“이건.”
타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이 정원의 것이 아니다.”
네오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연이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네오?”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타래가 쥔 실 끝에 고정돼 있었다.
그 실의 다른 한쪽 끝은, 그의 가슴 쪽으로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타래가 손끝으로 그 실을 살짝 당기자, 저 멀리 정원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또 다른 실 한 가닥이 함께 팽팽해졌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실이 스스로 떨렸다.
“두 가닥.”
타래가 나직이 말했다.
“이곳의 시간에 속하지 않은 실이 두 가닥.”
정원 전체의 빛이 한순간 낮게 가라앉았다.
연이는 네오를 보았다.
네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어느 대답보다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