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무성의 마지막 저항
Code Destiny · 1,599자
제93화. 무성의 마지막 저항
검은 파도 한가운데, 무성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린 채로.
이미 몸의 절반은 검은 안개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묘아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소롭구나.”
“……가소로워도 상관없다.”
무성이 낮게 웃었다.
핏기 없는 웃음이었다.
“네가 나를 만들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 힘의 찌꺼기. 네가 버티기 위해 떼어낸 그림자.”
“그런데?”
“그런데 그림자도, 오래 서 있으면 자기 발밑을 갖는다.”
무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처음으로 조롱기가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나는 왕좌를 원한 적 없다. 자미성도, 12궁도, 다 상관없었다.”
“그럼 뭘 원했지.”
묘아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내가 나로 존재할 시간.”
무성이 담담히 말했다.
“네가 나를 만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나는 그저 ‘그릇’이었다.”
“……”
“그래서 왕좌를 원하는 척했다. 뭐라도 원해야,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생기니까.”
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이제라서 하는 거다.”
무성이 미소 지었다.
처음 보는, 슬프고 담백한 미소였다.
“네가 나를 없애기 전에, 한 번은 나로서 말하고 싶었다.”
“없앤다고?”
묘아가 발톱을 세웠다.
“누가 없앤대. 다시 거둬들이는 거야. 넌 원래 내 거였어.”
“아니.”
무성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제 내 것이다.”
콰아앙!
묘아의 발톱이 그의 몸을 후려쳤다.
무성의 형체가 크게 흔들렸다.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말이라도 못 하게 해주지.”
“……해봐라.”
무성이 피 대신 검은 연기를 흘리며 웃었다.
“말은 이미 다 했다.”
그가 두 손을 다시 벌렸다.
정원의 실들이 그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지.”
묘아가 경계했다.
“연이와 박병하가 완전히 빠져나갈 시간을 벌 것이다.”
“그런 힘이 남아 있을 리 없어.”
“없어도.”
무성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해야 한다.”
그가 실들을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의 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한 올, 한 올.
검은 안개가 아니라, 은빛 실로.
“……이건.”
묘아가 처음으로 멈칫했다.
“내가 그릇이라고 했지.”
무성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릇은 결국 무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다. 나는 오랫동안 네 분노를 담았다. 이제는.”
그의 몸이 완전히 실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정원의 일부가 되어, 다른 것을 담아보고 싶다.”
“무성!”
묘아가 앞발을 뻗었다.
붙잡으려는 듯이.
그 손짓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섞여 있었다.
당황.
그리고 아주 옅은, 두려움.
“가지 마라. 너마저 가면.”
그 말끝이 흔들렸다.
무성은 이미 반쯤 투명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던 건 아니지 않나.”
“……닥쳐.”
“박병하에게 거절당한 게 서러워서, 부수는 것밖에 몰랐던 거잖아.”
“닥치라고 했다!”
묘아가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는 짐승의 포효보다, 오래된 상처의 비명이 더 짙게 섞여 있었다.
무성은 대답 대신 조용히 웃었다.
“나는 네가 만든 그림자였지만, 마지막 순간엔 나로 서고 싶었다.”
“……”
“그거면 됐다.”
그의 몸이 마지막 한 올까지 풀려나갔다.
은빛 실이 정원의 무수한 다른 실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부서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흩어졌다.
정원 곳곳의 실 틈으로, 아주 조금씩.
누군가의 기억 한 조각처럼.
누군가의 다짐 한 조각처럼.
묘아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발밑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원의 실들이 전보다 조금 더 촘촘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와.”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묘아는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얼굴을 했다.
그 표정은 순식간에 다시 분노로 뒤덮였다.
“전부 다, 없애버리겠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주 잠깐, 그녀의 발밑에서 은빛 실 한 가닥이 스치듯 그녀의 발목을 감쌌다가 풀렸다.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묘아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척, 어둠 저편으로 몸을 돌렸다.
정원은 다시 고요해졌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고요함이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실들이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