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약속으로 해두겠다, 진짜로
Code Destiny · 1,392자
제98화. 약속으로 해두겠다, 진짜로
정원의 실들이 다시 잔잔해졌다.
하늘 저편으로 현실의 풍경과 운세 세계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더 이상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나란히.
타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균형이 돌아왔다.”
“두 세계의 경계도 다시 닫힌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실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사라졌다.
정원엔 연이와 박병하, 둘만 남았다.
연이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릎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끝난 거야?” 그녀가 물었다.
“끝났다.” 박병하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렸다.
연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박병하는 평소처럼 짧고 건조하게 말을 맺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참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있어.”
“말해.”
박병하는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늘 단단하던 눈빛이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나는.” 그가 말을 시작했다. 목소리가 자꾸 끊겼다. “나는 처음부터 너를 지키는 게 임무였다.”
“미래에서 본 네 운명을 바꾸려고 여기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임무여서가 아니게 됐다.”
연이는 숨을 죽였다.
“너를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 그가 겨우 말을 이었다. “너와 함께 있고 싶어졌다.”
“흰 고양이로 네 방 창틀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임무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됐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숨겼다. 이름도, 정체도, 이 마음도.”
“왜냐면.”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가 나 때문에 위험해질까 봐. 그리고—”
박병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내가 사자로만 남을 거라는 걸, 네가 알게 되는 게 무서웠다.”
연이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발톱이 아니라, 아까처럼 잠깐 일렁이는 사람의 손이었다.
“근데 아까 내가 말했잖아.”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고.”
“들었다.” 박병하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내가 사자인 게 두렵지 않아졌다.”
그의 손끝에서 옅은 빛이 흔들리더니, 아주 잠깐, 사람의 형상이 온전히 자리 잡았다. 오래전 잃어버렸던, 검은 비 속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던 그 모습이었다.
찰나였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둘 다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짜였다.
박병하는 손을 들어 연이의 뺨을 감쌌다.
“연이.”
“응.”
“사랑한다.”
그 말에 연이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웃으면서 우는, 이상한 얼굴이었다.
“나도.” 그녀가 속삭였다. “나도 사랑해.”
박병하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정원의 실들이 일제히 은빛으로 물들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하늘 위로 현실의 별과 운세 세계의 별이 나란히 반짝였다.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박병하의 형상은 다시 서서히 흰 고양이의, 그리고 흰 사자의 윤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변하지 않았다.
연이는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이제 진짜 안 도망갈 거지.”
“안 도망간다.”
“약속이야?”
박병하가 아주 오랜만에, 낮게 웃었다.
“그래.”
“이번엔 진짜 약속으로 해두겠다.”
연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얼굴로.
“그거, 61화 때도 써먹은 대사거든?”
“알아.” 박병하가 말했다. “그때도 진심이었다.”
정원 저편에서 실들이 반짝이며 문을 하나 열었다. 그 문 너머로 모카와 치즈, 크림, 루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연이는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박병하를 보았다.
두 세계의 경계는 완전히 닫혔고, 그녀의 기억은 하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박병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문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