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요즘, 운이 이상했다. 그냥 '오늘 좀 없네?' 수준이 아니었다. 인생이 연이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는 수준이었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알람은 분명 세 개였다. 7시 10분, 7시 15분, 7시 20분. 이름까지 야무지게 붙여 뒀는데.
[ 일어나 ] [ 진짜 일어나 ] [ 이러다 인생 망함 ]
하나도 울리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커튼 틈으로 든 빛이 이미 노랬다. '늦었다'는 색이었다.
휴대폰은 1퍼센트. 충전기는 콘센트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 문제는, 빠진 게 휴대폰 쪽이었다는 거다.
연이—…너도 나랑 손절했냐?
충전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세상 모든 게, 연이한테만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신고 나온 양말은 왼쪽 흰색, 오른쪽 회색. 무늬까지 달랐다. 발을 내려다보는 데 3초쯤 걸렸다.
연이—…요즘은 믹스매치도 패션이라던데.
연이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긍정은, 연이가 불운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문제는 버스였다. 카드를 댔는데 — 삑. 다시 대주세요.
다시 댔다. 삑, 다시 대주세요. 또 댔다. 삑, 다시 대주세요. 뒤에 선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연이를 봤다.
연이—(그 침묵이 제일 무서웠다.) …너 어제까진 멀쩡했잖아.
카드는 네 번째에야 찍혔다. 이미 둘 사이의 신뢰는, 조금 깨진 뒤였다.
연이—(마음속으로 별점을 매겼다.) 교통카드… 별 하나. 사유: 네 번 만에 인식. 재구매 의사 없음.
점심엔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샀다. 뜯자마자 바닥으로 엎어졌다. 밥알이 흩어지고, 김이 반쯤 벗겨진 얼굴이 너무 처참했다.
연이—(꼭, 제 운명을 못 받아들인 얼굴이었다.) …미안하다. 넌 좋은 참치마요였어.
다시 샀다. 이번엔 안 떨어뜨렸다. 그런데 한입 물자마자 입안이 불탔다. 매운 제육이었다. 포장엔 분명, 참치마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연이—아니, 이제 삼각김밥도 나를 속이네?
삼각김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건 삼각김밥이니까.
연이—포장은 참치마요, 속은 매운 제육. 이거 허위광고 아니야? 소비자원에 민원 넣는다, 진짜.
거기까지는 웃겼다. 친구한테 말하면 'ㅋㅋㅋ 너 오늘 왜 그래'로 넘어갈 정도의.
그런데 며칠 뒤부터는 — 웃기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면접은 당일 취소됐다. 과제 파일은 제출 직전에 깨졌다. 택배는 다른 동으로 갔다. 카페 쿠폰은 쓰려는 순간, 어제 만료였다.
중요한 메시지엔 전송 실패가 떴다. 사과할 타이밍은 꼭 한 박자씩 늦었고,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이상하게 오해가 됐다.
한 번은, 답장창에 점 세 개가 반짝였다. 뭔가 오려다가 — 스르르 사라졌다.
연이는 그 점 세 개가 지워진 자리를 한참 보고 있다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엎어놓은 휴대폰 위로, 방 안의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연이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다. 누구 탓도 아닌데 자꾸 미안해지는 밤이었다. 이런 밤이 요즘 부쩍 늘었다.
연이—…요즘 왜 이렇게 꼬이지. 내가, 뭘 잘못했나.
작은 불운들이 매일 조금씩 연이의 하루를 갉아먹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웃어넘겼다. 그런데 우연도 며칠을 겹치면, 등 뒤에 누가 서 있는 것처럼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웃자고 시작한 하루가, 자꾸 변명거리를 찾는 하루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연이는 운명 같은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운명은 너무 편한 말이었으니까.
연이—망하면 운명, 헤어지면 인연 아님, 늦으면 때가 아님… 그런 말은 늘 나만 제자리에 남겨두더라.
그렇게 말하면 설명은 쉬워진다. 근데 마음은, 하나도 안 쉬워진다.
그날 밤. 정말 모든 게 이상하게 꼬였던 하루의 끝이었다. 젖은 양말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연이—오늘은… 진짜 레전드였다.
배터리 4퍼센트. 충전기를 꽂으려는데 — 화면이, 혼자 켜졌다.
연이—…뭐야?
홈 화면 한가운데, 처음 보는 앱이 있었다. 검은 밤하늘. 달빛으로 그려진 문. 작은 별 하나. 그리고 네 글자.
〈 Code Destiny 〉
연이—내가… 이런 걸 깔았나?
기억에 없었다. 삭제하려고 앱을 길게 눌렀다. 화면이, 대답했다.
[ 이 앱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 [ 이 앱은 운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연이—요즘 앱, 진짜 기세 미쳤네.
연이—결제한 적도 없는데 환불이 안 돼. 아니, 삭제도 안 돼. 이 앱, 배짱 하나는 별 다섯 개다.
설정으로 들어가 봤다. 앱 목록에도, 저장 공간에도 없었다. 그런데 홈 화면에는 있었다. 너무 당당하게. 마치 원래부터, 제 자리였다는 듯이.
그때, 알림이 떴다.
[ 현재 사용자 운세 손상률 87% ] [ 행운 누수 감지 · 인연 코드 일부 훼손 · 재물 코드 비정상 유출 ]
[ 사용자: 연이 ] [ 나이: 23 ] [ 일간 후보: 乙 ] [ 일주 코드: 乙亥 ]
연이—내… 내 이름이랑 나이를 어떻게 알아?
[ 우주는 원래 알고 있습니다. ]
연이—아니, 말투가 더 무섭잖아!
연이—됐고. 고객센터 어디야. 상담원 연결. 지금 당장.
[ 고객센터: 우주 ] [ 상담원: 없음 · 대기 순번: ∞ ]
연이는 휴대폰을 베개 위로 던졌다. 휴대폰은 베개 위에서 통통 튀더니, 다시 화면을 밝혔다.
[ 운명 복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 [ YES ] [ 나중에 ]
연이는 당연히 [나중에]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었다.
[ 나중에는 없습니다. ]
연이—…그럼 왜 물어봤는데?
[ YES ] [ YES ]
연이—이건 선택지가 아니라, 납치 예고잖아.
[ 이용약관 제1조 ] [ 사용자는 태어난 순간, 이미 모든 항목에 동의함 ]
그때 화면 위로, 타로 카드 한 장이 떠올랐다. 검은 배경에 달빛으로 된 문. 문 앞엔 작은 꽃 한 송이. 카드 아래엔 — [ THE DOOR ].
연이—타로에… 이런 카드가 있었나?
그 순간, 카드 속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 소리는 휴대폰이 아니라, 방 안에서 났다.
침대 앞 허공에, 진짜 달빛 문이 세워져 있었다. 문틈 너머로, 낯선 밤하늘이 소용돌이쳤다.
연이—이거… 지금 내 방 맞지?
대답 대신, 문 안에서 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별, 달, 태양, 운명의 수레바퀴. 책상 위 과제물도, 뒤집힌 우산도, 반쯤 먹다 만 컵라면까지, 방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연이—내 과제, 내 우산, 내 컵라면— …아니 컵라면은 됐고!
[ 타로의 문 개방 ] [ 운세 세계 접속 중 ] [ 사주의 강 좌표 확인 ]
연이—닫아. 닫으라고! 강? 여긴 원룸인데!
[ 초기 아바타 변환 중 ]
문 안쪽에서 빛이 터졌다. 연이는 끝까지 침대 헤드를 붙잡았다. 하지만 침대 헤드는, 생각보다 의리가 없었다. 뚝.
연이—배신자!
연이는 그대로 — 타로의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 너머는 끝없는 밤이었다. 위도 밤, 아래도 밤. 별자리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수많은 타로 카드가 그녀 주변을 돌며 속삭였다. 선택. 추락. 시작. 변신.
[ 운명 코드 접속 완료 ] [ 손상된 운세 세계로 진입합니다. ]
연이—나는 동의한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