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01A · 3 / 70

이름 없는 검은 호랑이

갈대에 갇힌 검은 호랑이를 구한다. 작은 몸이 숨긴 시선은 연이의 약점을 먼저 읽는다.

한글 약 2,098자 · 읽는 시간 약 5분

섬에 닿기 전, 연잎 배가 갈대 무더기에 걸렸다. 네오가 앞발로 물살을 눌렀다. 거울 조각들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아주 작게 이를 가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연이는 돼지 귀를 세웠다. 누가 울음을 참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연이—저기. 갈대 밑에 뭐가 있어. 검은 솜뭉치 같은 거. 아니, 눈이 있어. 나 지금 물에 빠진 인형 구경하는 거 아니지?

금실을 두른 작은 망토가 갈대에 걸려 있었다. 망토 아래로 줄무늬 꼬리가 꿈틀거렸다. 검은 호랑이였다. 붉은 눈은 물에 젖어도 또렷했고, 이마의 문양은 상처처럼 붉었다. 오른 앞발에는 실보다 가는 검은 고리가 감겨 있었다.

검은 호랑이—구경 끝났으면 가. 동정하는 눈은 물에 비쳐도 알아보거든. 그리고 솜뭉치 아니야. 그 말부터 취소해.

연이—말도 하네. 그럼 구조 요청도 할 수 있겠네. 지금 도와 달라고 하면 돼. 발이 그렇게 떨리는데 멀쩡한 척하면 더 아프잖아.

네오—손부터 뻗지 마라. 저건 사냥꾼의 덫이 아니다. 주인을 찾는 고리다. 닿는 순간 네 이름을 물을 수 있다. 대답하면 둘이 묶인다.

연이는 내민 앞발을 멈췄다. 돌아갈 몸도, 이름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처지였다. 그런데 호랑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고리가 조여드는 게 보였다. 저 조그만 발 하나를 두고 배를 돌리는 편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연이—이름을 안 말하면 되는 거지? 그럼 말로 풀지 말고, 이걸로. 네오, 배가 흔들리지 않게만 잡아 줘. 나도 무서우니까 어려운 얘기는 나중에 해.

연이는 배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던 마른 잎자루를 입에 물었다. 고리와 털 사이에 밀어 넣자 검은 물이 솟았다. 호랑이가 반사적으로 연이의 코를 할퀴려다 멈췄다. 잎자루가 부러졌다. 고리는 여전히 조여 있었다.

검은 호랑이—그만해. 네 몸도 네 마음대로 안 되잖아. 그런 발로 누구를 구하겠다고. 다치면 나한테 값을 물릴 셈이야?

연이—아프면 아프다고 해. 자꾸 가격표 붙이지 말고. 나 삼각김밥 떨어뜨린 날도 이렇게 오래 협상 안 했어. 지금 네가 더 급하잖아.

네오의 발톱 끝에 금빛이 맺혔다. 곧장 베면 호랑이의 발도 다칠 각도였다. 네오는 칼날 같은 빛을 거두고 연잎을 비스듬히 눌렀다. 물살의 방향이 바뀌었다. 팽팽하던 고리가 아주 잠깐 느슨해졌다.

네오—지금. 잡아당기지 말고 밀어. 고리를 통과시키려 하지 마. 발이 빠져나갈 틈을 만드는 거다.

연이가 제 이마로 호랑이의 어깨를 밀었다. 둘은 함께 젖은 연잎 위로 굴렀다. 고리만 강물에 남아 허공을 움켜쥐듯 오므라들었다. 방금까지 발이 있던 자리를 세 번 물더니, 검은 물거품으로 터졌다.

검은 호랑이—너, 왜 네 몸으로 밀어? 다칠 수도 있었잖아. 저 사자한테 시키면 됐는데. 명령할 수 있는 힘은 그렇게 쓰는 거야.

연이—친구한테 시키는 걸 왜 명령이라고 해. 그리고 나도 지금 알았어. 돼지 이마가 생각보다 쓸모 있네. 아, 코는 쓸모없게 아프고.

호랑이는 연이의 코에 난 생채기를 보았다. 망토 끝을 당기는 동안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상처가 생겼는데도 물러서지 않는 아이. 아픈 얼굴 하나로 이 아이를 얼마나 가까이 끌어들일 수 있을지, 호랑이는 연이의 표정을 오래 살폈다.

검은 호랑이—원하는 걸 말해. 길이든 물건이든. 빚은 남겨 두면 불어나. 지금 정리하는 편이 서로 편하잖아.

연이—안 다쳤으면 됐어. 굳이 하나 받자면, 이름? 계속 호랑이라고 부르면 너 또 화낼 것 같아서.

검은 호랑이—이름은 함부로 주는 게 아니야. 네가 그걸 쥐면 내가 어디에 있든 부를 수 있으니까. 누구든 부른다고 가야 하는 삶은, 별로거든.

연이—그럼 안 줘도 돼. 그냥 호랑이라고 부를게. 이름을 알아야만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호랑이의 꼬리가 한 번 멎었다. 금장 고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연잎 위를 굴렀다. 네오는 그 물방울이 강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랑이 쪽으로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연이와 호랑이 사이에 앞발을 놓았다.

네오—여기까지만 태워 준다. 선착장에 닿으면 각자 간다. 누가 보내서 왔는지는 묻지 않겠다. 대신 이 아이의 이름도 묻지 마라.

검은 호랑이—사자는 다 이렇게 무뚝뚝해? 겨우 발 하나 빼 줬다고 울타리를 치네. 내가 저 애를 물기라도 할까 봐?

연이—나도 처음엔 큰 고양이인 줄 알았어. 근데 본인은 되게 싫어해. 너도 작은 호랑이라고 하면 싫어?

검은 호랑이—작다는 말은 붙이지 마. 크기로 위아래를 정하는 건 아주 낡은 취향이야. 망토까지 합치면 그렇게 작지도 않고.

연이가 웃었다. 호랑이는 함께 웃는 대신 귀를 낮췄다. 작고 젖은 짐승을 보는 연이의 눈에는 경계가 별로 없었다. 붉어진 귀 안쪽을 망토로 감추자 연이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 부드럽게 낮췄다. 호랑이는 그 차이를 기억했다.

연이—저기 마른 데 앉아. 네 망토 물 먹어서 무겁겠다. 금장 많으면 멋있긴 한데 세탁은 진짜 힘들겠네.

호랑이는 망토 끝을 연이에게 내밀었다. 금장 안쪽에 감춰진 검은 실이 천의 붉은 결 사이로 들어갔다. 네오가 고개를 돌리자 실은 멈췄다. 호랑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젖은 발을 핥았다.

검은 호랑이—코에 대. 물을 닦으면 덜 따가울 거야. 망토를 준 건 아니니까, 네 것으로 착각하지는 말고.

연이—알았어. 빌리는 거. 고마워. 너도 말은 무섭게 하는데 손은 생각보다 친절하네. 아니, 발인가.

섬의 종이 울렸다. 호랑이는 첫 번째 종소리에 귀를 세우고 두 번째 소리가 나기 전에 배에서 뛰어내렸다. 다친 발은 물에 닿지 않았다. 검은 수면이 잠깐 단단해져, 발을 딛는 곳마다 좁은 길이 되었다.

네오—저 발자국을 따라가면 안 된다. 물 위에 길을 만드는 존재가 길을 몰라 덫에 걸렸을 리는 없으니까.

연이—일부러 걸린 거라고? 그럼 아파하던 것도 연기야? 나 그 얼굴은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아픈 거 참는 얼굴은 좀 알아.

네오—통증이 진짜여도 목적이 따로 있을 수 있다. 둘 중 하나만 골라 믿지 마라. 네가 도운 일까지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연이는 코에 남은 붉은 망토의 실오라기를 떼어 앞발 위에 올렸다. 어쩐지 버릴 수가 없었다. 섬의 안개 너머에서 검은 호랑이가 돌아보았다. 웃음은 사라졌고, 붉은 눈만 물 위에 두 점 남았다.

검은 호랑이—다친 걸 보면 멈추는구나. 네가 어디로 가든, 앞에 누굴 세워 두면 되는지는 알겠네. 다음에는 사자가 없는 쪽으로 와.

경계를 넘은 고리가 준 통증은 진짜였다. 그러나 호랑이가 훔쳐 온 것은 길이 아니라 연이의 반응이었다. 망토에서 끊어진 검은 실 끝이 강으로 가라앉았다. 그 아래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소리 없이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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