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연이가 검은 날개를 펼쳤다. 깃털이 아니라, 깨진 거울 조각이 겹겹이 붙어 만든 날개였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연이의 얼굴이 비쳤다. 비교하는 연이, 질투하는 연이, 포기하는 연이.
괜찮은 척 웃는 연이.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못 믿는 연이.
연이—와…… 나 진짜 내부 인원 많네.
연이—근데 다들 나보다 표정이 살아 있네. 원본이 제일 시무룩한 건 좀 억울한데.
네오—정신 차려라. 저건 전부 네 자리를 흔드는 겁재다.
연이—겉모습은 난데?
네오—그래서 더 위험하다.
연이—내 얼굴 무단 도용에 무단 복제까지. 이거 초상권으로 신고 어디다 하냐.
거울 속 연이가 천천히 떠올랐다. 뒤에서 조각들이 회전하자 섬 전체가 종처럼 떨렸다.
[비겁의 섬 · 최종 시험]
[거울 속의 나를 회수하라.]
[실패 시, 현실 귀환 권한이 거울 연이에게 이전됩니다.]
연이—잠깐만. 권한 이전?
거울 속 연이—응. 네 인생 계정, 내가 로그인.
연이—미쳤네. 이거 완전 계정 탈취잖아.
거울 속 연이—비슷해.
연이—이중 인증 없어?
거울 속 연이—있었지.
거울 속 연이가 연이의 머리 위 꽃을 가리켰다.
거울 속 연이—네가 방금 찾은 乙亥.
연이는 앞발 안쪽의 따뜻한 기운을 다시 붙잡았다. 乙, 작은 새싹. 亥, 깊은 물. 아직 하나가 못 된 채 희미하게 빛났다.
거울 속 연이—하지만 아직 100%는 아니야.
공중에 숫자가 떠올랐다.
[乙亥 일주 회수율 87%]
연이—아니, 왜 하필 87%야. 애매하게 사람 불안하게.
연이—완성도 87. 딱 다 된 것 같은데 안 끝나는 다운로드 바 있잖아. 그거야.
네오—마지막 13%가 남았다.
연이—그게 뭔데?
네오—저 환영.
거울 속 연이—맞아. 나를 회수해야 완성돼.
연이—너를?
거울 속 연이—나는 네가 인정하기 싫어서 떼어낸 너니까.
연이—그러니까 너를 이겨야 하는 게 아니라…….
거울 속 연이—나를 다시 가져가야 해. 할 수 있겠어?
그 말이 이상하게 섬뜩했다. 부수는 건 차라리 쉬웠다. 가짜라 여기고 박살 내면 된다. 그런데 다시 가져가라니, 자기 안으로 들여보내라니.
저 얼굴은 얄미웠고 말은 재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은 부분만 골라 찔렀다. 그래도 결국 나였던 것.
연이—진짜 어렵게 산다, 나.
거울 속 연이—그러게.
그 순간 날개가 크게 펼쳐지며 검은 조각들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네오—뒤로!
금빛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쨍, 쨍, 쨍. 조각들이 사방으로 튕겼다.
하지만 조각은 깨져도 다시 붙었다. 한 번 베면 둘, 둘을 베면 넷이 되었다.
연이—아니, 왜 증식해?
네오—겁재는 빼앗고 불어난다. 정면으로 베기만 하면 끝이 없다.
연이—그걸 지금 알려주면 어떡해!
네오—지금 보고 있으니까 말하는 거다!
연이—짧은 다리로는 구르는 것도 일이라고! 뒤로 빼려다 코부터 박게 생겼어!
거울 속 연이가 손을 내렸다. 이번엔 조각들이 네오가 아니라 연이를 향해 몰려왔다.
거울 속 연이—너는 늦어. 너는 약해. 너는 맨날 웃는 척해.
거울 속 연이—네 자리는 없어. 네가 못 하면 내가 할게.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귀를 파고들었다. 해수의 심연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괜찮은 척, 웃어넘기기, 도망치기.
거울 속 연이—봐. 너는 아직도 흔들려.
연이는 앞발을 땅에 디뎠다.
연이—흔들리면 안 돼?
거울 속 연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연이—나 을목이라며. 작은 풀이라며. 그럼 흔들리는 게 정상 아니야?
네오—…맞다.
연이—흔들린다고 가짜는 아니잖아.
그 순간 乙의 빛이 강해지며 초록빛 덩굴이 앞발 아래에서 자라났다. 덩굴은 조각들을 부수지 않고 꽉 묶어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았다. 쨍그랑.
거울 속 연이—왜 안 부숴?
연이—부수면 너만 늘어난다며. 그럼 묶어야지.
거울 속 연이—머리는 굴리네?
연이—나 원래 머리는 좀 굴려.
거울 속 연이—그런 애가 왜 맨날 늦었는데?
연이—그건 좀 아프니까 나중에 상담하자.
네오—잡담할 시간 없다.
연이—알아.
연이가 앞발을 더 단단히 디뎠다. 바닥 아래에서 亥의 푸른 물결이 번져 덩굴 뿌리를 받쳤다. 초록빛 덩굴은 더 굵어졌다.
예전 같으면 흔들리는 마음을 농담으로 덮고 괜찮은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도, 깊은 물도 자신이었다. 그 물을 밀어내지 않아야 꽃이 살 수 있었다.
거울 속 연이—그럼 이건?
거울 속 연이의 등 뒤에서 거대한 거울이 떠오르며 연이의 현실이 비쳤다. 방, 침대 위 휴대폰, 켜진 Code Destiny 앱.
그 앞에 인간 연이가 앉아 있었다. 거울 속 연이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연이는 숨을 멈췄다.
연이—저건 뭐야?
거울 속 연이—동기화.
[현실 귀환 프로토콜 접속 중]
[후보자: 연이 / 후보자: 거울 연이]
[본체 인증 잔여율: 13%]
거울 속 연이—네가 여기서 망설이는 동안, 나는 현실 쪽에 먼저 접속할 수 있어.
연이—진짜 계정 탈취 맞잖아!
거울 속 연이—말했잖아. 네가 못 하면 내가 한다고.
거울 속 현실의 연이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귀환 승인] 버튼이 떠올랐다. 연이가 뛰려 했지만 검은 조각들이 길을 막았다.
연이—안 돼!
거울 속 연이—왜? 너는 아직도 이 몸이 싫잖아.
거울 속 연이가 연이의 꽃돼지 몸을 가리켰다.
거울 속 연이—현실로 돌아가도 누가 너를 알아보겠어?
그 말은 날카로웠다. 분홍빛 몸, 짧은 다리, 머리 위 꽃. 지금의 자신은 현실의 연이와 너무 달랐다.
거울 속 연이—내가 돌아가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네 얼굴이니까.
거울 속 현실의 연이가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렸다. 연이의 꽃이 흔들리고, 乙亥의 빛도 흔들렸다.
네오—연이!
연이는 입을 다물었다. 저 말은 맞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도 같았다. 흔들리지 않고 늦지 않는 연이라면 더 나을지도. 정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수의 심연에서 보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괜찮은 척했던 밤, 보내지 못한 말, 혼자 참았던 마음. 그리고 그 깊은 물에서 피어난 작은 꽃.
연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연이—아니.
거울 속 연이—뭐가 아니야?
연이—너는 내 얼굴이야.
머리 위 꽃이 빛나고, 앞발 아래로 덩굴이 뻗었다.
연이—내 목소리도 알고, 내 기억도 알아. 근데 내가 왜 웃었는지는 몰라.
거울 속 연이—뭐?
연이—내가 왜 괜찮은 척했는지, 왜 말 못 했는지, 왜 늦었는지, 왜 혼자 무너졌는지.
푸른 물결이 덩굴 아래로 흘렀다.
연이—너는 그걸 정답처럼 말하지만, 아프지는 않아. 그래서 넌 내가 아니야.
공중의 거울들이 흔들렸다. 현실 쪽 거울에서 [귀환 승인] 버튼이 깜빡였다.
거울 속 연이—그럼 내가 뭐인데?
그 질문은 분노처럼, 그러나 아주 작게 상처처럼도 들렸다. 연이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갔다.
연이—너는 내가 버리려고 했던 나.
연이—완벽한 척하는 나. 상처 안 받은 척하는 나.
연이—나 대신 멀쩡한 척 서 있으려고 했던 나.
거울 속 연이—그럼 날 부숴!
검은 거울 날개가 크게 펼쳐졌다.
거울 속 연이—부숴야 네가 이기는 거잖아!
조각들이 다시 몰려왔다. 네오가 뛰어들려 했지만 연이가 먼저 말했다.
연이—아니.
초록빛 덩굴이 벽처럼 자라났지만 찌르지 않고 조각들을 감싸 안았다.
연이—안 부술 거야.
거울 속 연이—뭐?
연이—너를 없애면, 나도 내가 버리고 싶었던 부분을 또 못 본 척하는 거잖아.
그 말이 섬 전체에 울렸다. 거울들이 하나둘 멈췄다. 거울 속 연이는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이는 천천히 다가갔다. 솔직히 무서웠다. 저 가짜가 갑자기 공격할 수도, 귀환 버튼은 아직 깜빡였고 날개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머리 위 꽃이 빛났다. 앞발 안의 乙이 따뜻했고, 가슴 깊은 곳의 亥가 조용히 받쳐주었다. 연이는 거울 속 연이 앞에 섰다.
인간의 얼굴과 꽃돼지의 얼굴이 마주 보았다.
거울 속 연이—나를 받아들이면, 너는 또 흔들릴 거야.
연이—알아.
거울 속 연이—또 비교하고, 또 질투하고, 또 괜찮은 척할 거야.
연이—그럴 수도 있겠지.
거울 속 연이—그런데도?
연이—그런 내가 생기면, 이제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거울 속 연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이는 앞발을 내밀었다.
연이—그러니까 와.
거울 속 연이가 연이의 앞발을 내려다봤다.
거울 속 연이—손도 아니잖아.
연이—지금 그게 중요해?
거울 속 연이—조금 웃기긴 해.
연이—나도 알아. 빨리 잡아. 민망하니까.
거울 속 연이가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엔 비웃음이 아니었다. 조금 얄밉고, 조금 지치고, 조금 안심한, 정말 연이 같은 웃음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손바닥이 연이의 앞발에 닿았다.
그 순간 검은 날개가 산산이 흩어졌다. 쨍그랑!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오래된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 같았다.
거울 속 연이의 몸이 빛으로 풀려 연이의 몸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연이는 눈을 감았다. 비교했던 마음, 부러웠던 마음, 잘하고 싶었던 마음, 지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 괜찮은 척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전부 낯설고 불편했지만 전부 자신이었다. 연이는 밀어내지 않고 그냥 숨을 들이켰다. 깊은 물처럼. 그리고 작게 내쉬었다. 꽃잎이 흔들렸다.
[乙亥 일주 회수율 100%]
[비겁의 섬 최종 시험 완료]
[겁재 정화 · 비견의 조각 획득]
네오—축하한다, 연이.
연이—방금 이름 불렀어?
네오—원래 알고 있었다.
연이—그동안은 사용자 취급하더니?
네오—이제는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까.
깨진 조각들 중 세 개가 연이 앞으로 날아왔다. 붉은 조각, 은색 조각, 푸른 조각.
네오—그건 네 안의 비견이 된 조각들이다.
연이—아이템이야?
네오—부적에 가깝다.
연이—좋아. 아이템창에 넣을게.
네오—아이템창은 없다.
연이—아, UI 진짜 불친절하네.
네오—불친절한 게 아니라, 그냥 없는 거다.
세 조각은 연이의 머리 위 꽃 주위를 돌더니 작은 꽃잎 장식처럼 붙었다. 붉은 꽃잎, 은빛 꽃잎, 푸른 꽃잎.
연이—나 좀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데?
네오—비겁의 힘이다. 이제 흔들릴 때, 너를 무너뜨리는 목소리와 지탱하는 목소리를 조금 더 구분할 수 있을 거다.
연이—오. 그러니까 멘탈 필터 생긴 거네?
네오—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다.
연이—좋네. 이건 실생활에도 필요했어.
그때 섬 전체가 흔들렸다. 거울들이 하늘로 떠오르고, 검은 유리 바닥에 금이 갔다. 그 아래에서 초록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올라왔다.
乙亥. 두 글자가 연이 앞에 떠올랐다. 작은 새싹이 깊은 물 위에 뿌리내린 형상이었다. 이번에는 낯설지 않았다. 마음 한가운데에 딱 맞는 이름 같았다.
연이—을해일주.
두 글자가 가슴으로 스며들며 따뜻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퍼졌다. 이상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작은 꽃이 더 선명하게 피어났다.
[사주 글자 회수 완료 · 日柱: 乙亥]
[비겁의 섬 정화 완료]
연이—나 진짜 첫 스테이지 깬 거야?
네오—그래.
연이—보상은?
네오—방금 받았다.
연이—조금 더 현물 느낌은 없어? 코인이라든가.
네오—없다.
연이—이 세계 경제관념 아쉽네.
연이—환불이라도 넣게 고객센터 좀 알려줘. …꿀.
네오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아주 작게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때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둥. 둥. 둥. 처음엔 심장 소리 같더니 곧 리듬이 되었다. 박자, 음악, 사람들의 함성.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안개가 걷힌 비겁의 섬 너머, 전혀 다른 섬이 반짝이고 있었다. 색색의 등불, 춤추는 그림자, 맛있는 냄새, 하늘로 올라가는 노랫소리.
연이—잠깐. 뭐야, 저기 냄새 미쳤는데?
연이—코가 먼저 반응했어. 콧구멍이 저 혼자 벌렁대잖아. …꿀.
네오—다음 섬이다.
연이—설마 음식 나와?
네오—음식도 있고, 노래도 있고, 무대도 있다.
연이—오. 드디어 힐링 파트?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살짝 불길했다.
연이—왜 대답 안 해?
네오—식상의 섬.
연이—식상?
네오—표현, 말, 재능, 먹는 즐거움, 만드는 힘. 네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의 섬이다.
연이—그러니까 먹고 말하고 노래하는 섬?
네오—대충 맞다.
연이—좋은데?
네오—겉으로는.
연이—또 그 말투네. 불안하게.
연잎 배가 다시 강 위로 떠올랐다. 비겁의 섬은 천천히 뒤로 멀어졌다.
바로 그때, 멀리 식상의 섬 하늘 위로 검은 깃털 하나가 떨어졌다. 깃털이 가장 높은 무대 위로 내려앉자, 방금까지 들리던 음악이 뚝 끊겼다.
연이—……힐링 파트 아니네?
네오—아닌 것 같군.
연이는 가슴 안쪽의 乙亥를 느꼈다. 작은 새싹과 깊은 물. 방금 되찾은 자신의 중심. 그녀는 짧은 앞발을 들어 올렸다.
연이—좋아.
네오—갈 준비 됐나?
연이는 식상의 섬을 바라봤다. 아직 무서웠지만 방금 전보다 덜 흔들렸다.
연이—응. 근데 이번엔 제발 돼지 몸으로 무대 서는 일은 없겠지?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이—야. 왜 대답 안 해?
네오—가보면 안다.
연이—나 지금 진짜 불안해졌어.
[제2섬 · 식신 상관의 섬 진입]
연잎 배가 노랫소리와 불빛을 향해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무대 위, 검은 깃털은 여전히 조용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