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07 · 10 / 73

해가 멈춘 축제

해 질 녘에 멈춘 축제의 섬. 노래는 금지됐고 음식은 맛을 잃었다. 골목 끝에서 누군가 몰래 랩을 한다.

한글 약 2,951자 · 읽는 시간 약 7분

해 질 녘의 축제 거리는 냄새부터 시끄러웠다. 설탕 굽는 냄새, 꼬치 타는 냄새, 북소리에 묻어나는 웃음.

연이—영냥아. 나 결정했어. 이 섬에 뼈를 묻을래.

영냥이—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됐다.

연이—한 시간이면 충분해. 구름을 튀기는 섬이야. 여기가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이야.

연이의 앞발 사이에는 구름 튀김 반쪽이 끼워져 있었다. 북 치던 아이가 갈라 준 것이었다. 아직 김이 올랐다.

연이—첫입은 경건하게 갈게. 별점은 삼키고 나서.

영냥이—뜨겁다. 불어서 먹어라.

연이—걱정 마. 돼지는 뜨거운 거 잘 먹어. …아마도.

거리는 노래로 꽉 차 있었다. 국자로 솥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국숫집, 손님 이름으로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 주는 떡집.

아무도 잘 부르지 않았다. 다들 크게 불렀다.

연이—저 아저씨 음정 완전 나갔는데, 손님들이 더 좋아해.

영냥이—이 섬에선 그게 맞는 박자다.

연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 거리 끝, 가장 높은 무대에서 종이 울렸다. 뎅.

북소리가 박자 한가운데서 끊겼다. 노래도, 웃음도, 기름 튀는 소리까지 한꺼번에.

연이—…뭐야. 누가 음소거 눌렀어?

수평선에 반쯤 잠긴 해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지지도, 다시 뜨지도 않았다. 고장 난 화면처럼, 붉은 반원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영냥이—해가 멈췄다.

연이—해는 멈추는 물건이 아니잖아.

영냥이—저기를 봐라.

가장 높은 무대 꼭대기에 검은 깃털 하나가 꽂혀 있었다. 강 위에서 떨어지던, 바로 그 깃털이었다.

깃털 아래로 까마귀 떼가 쏟아졌다. 수백 마리가 지붕마다 내려앉았다. 한 마리도 울지 않았다.

까마귀—공지한다.

무대 위, 검은 법복을 입은 커다란 까마귀가 깃털 옆에 서 있었다. 얼굴에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까마귀—이 시각부로 이 섬에서 노래를 금한다. 박자, 휘파람, 큰 웃음도 마찬가지다.

까마귀—어긴 입에는 도장을 찍는다. 이상.

연이—축제 한복판에 노래 금지? 그럼 이 축제는 뭘로 해. 묵념으로 해?

영냥이—목소리 낮춰라. 저 까마귀들은 전부 귀다.

연이—노래 금지면, 콧노래는?

영냥이—노래다.

연이—박수는?

영냥이—박자다.

연이—그럼 숨은? 숨도 리듬 있잖아.

영냥이—숨은 아직 괜찮다. 아직은.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국자를 내려놓고, 북채를 소매에 숨겼다.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꼬치집 주인만 참지 못했다. 손님이 꼬치를 떨어뜨린 게 웃겼던 모양이다. 하, 하, 하.

까마귀 한 마리가 내리꽂혔다. 부리가 주인의 손등을 찍었다. 손등에 회색 도장이 남았다.

연이—저 사람 그냥 웃은 거잖아!

주인은 다시 웃으려고 입을 벌렸다. 하, 하. 소리 대신 바람만 나왔다. 처음보다 한 뼘쯤 작은 바람이었다.

영냥이—도장을 찍을 때마다 목소리가 줄어들어. 식상은 안에 있는 걸 밖으로 내보내는 기운이야. 말이나 노래, 네가 만드는 맛처럼.

영냥이—입을 막으면 셋이 같이 막힌다.

연이—셋이 같이? 맛도?

연이는 앞발 사이의 구름 튀김을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 반짝이던 설탕 옷이 어느새 잿빛이었다.

연이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씹었다. 한 번 더 씹었다.

연이—…맛이, 없어.

영냥이—해가 멈추면 불이 식는다. 이 섬의 맛은 저 해가 굽는 거다.

연이—이건 범죄야. 구름을 튀겨 놓고 맛을 뺀다고? 이건 사기고, 범죄고, 국제 문제야.

영냥이—여긴 나라가 아니다.

연이—그럼 우주적 문제야. 별점 테러 할 거야. 이 섬 전체에.

너무 억울해서였을까. 연이의 콧구멍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이—꾸우우울!

거리 전체가 연이를 돌아보았다. 지붕 위의 까마귀 수백 마리도 동시에 고개를 꺾었다.

까마귀—방금 그 소리. 음정이 있었다.

연이—아니, 그건 노래가 아니라 돼지 소리야!

까마귀—끝음이 올라갔다. 노래다.

까만 그림자가 연이의 앞발을 스쳤다. 따끔했다. 분홍색 발등에 동전만 한 회색 도장이 찍혀 있었다.

연이—내 발! 내 귀여운 발에 낙인 찍혔어!

영냥이—이 아이는 다른 섬에서 왔어. 여기 규칙을 알리지도 않고 도장부터 찍을 순 없지.

가면 쓴 까마귀가 영냥이를 내려다보았다. 가면의 구멍 너머로 눈이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이 섬에 발을 디뎠으면 이 섬의 귀에 들린다. 변명은 재판에서 해라. 다음 도장부터는.

법복이 펄럭였다. 까마귀는 깃털 쪽으로 사라졌다. 남은 까마귀들은 지붕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연이—…영냥아. 나 목소리 한 뼘 줄었어?

영냥이—목소리 멀쩡하네.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연이—그게 위로라는 거 알아서 더 슬퍼.

축제 거리 뒤편은 야시장이었다. 아니, 야시장이었던 곳이었다. 천막은 그대로인데 색이 빠져 있었다. 꼬치도, 사탕도, 사람들의 얼굴도 회색이었다.

연이—아까 그 거리보다 더 조용하네.

영냥이—여기 사람들은 먼저 찍혔다. 해가 멈추기 전부터 깃털이 이 섬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상인들의 손등에는 회색 도장이 두 개, 세 개씩 찍혀 있었다. 손님이 오면 말 대신 손가락으로 값을 가리켰다.

사탕 가게 할머니가 연이의 앞발을 보더니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이었다.

연이—안녕하세요. 저 무서운 돼지 아니에요. 이 섬 처음 왔어요.

할머니는 목소리 대신 숨으로 말했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리였다.

하나면 웃음, 둘이면 노래, 셋이면 말까지. 할머니의 손등에는 도장이 셋이었다.

연이—할머니는… 말을 못 하시는 거구나.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탕 한 알을 연이의 앞발에 쥐여 주었다. 회색 사탕이었다.

연이—감사합니다. 맛없어도 잘 먹을게요. 아니, 맛있게 먹을게요.

할머니가 눈을 접고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연이는 그 웃음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연이는 사탕을 물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려 먹었다.

연이—영냥아. 이 섬, 원래는 어땠어?

영냥이—하루 종일 한낮이었다. 정오에 축제를 열고, 노래가 끝나야 해가 졌다.

영냥이—저 해는 丙, 한낮의 볕이야. 다시 정오에 닿아야 이 섬에도 다음 날이 와.

연이—그럼 해를 정오까지 밀어 올리면 되는 거지?

영냥이—말은 쉽다.

연이—말은 원래 쉬워. 말하는 섬이잖아. …아, 지금은 말하면 안 되는 섬이구나.

시장 저쪽에서 북 하나가 굴러 나왔다. 누군가 손에서 놓친 것이었다. 둥.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지붕 위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개를 폈다. 북 주인은 이미 천막 뒤로 숨어 버렸다. 연이는 북을 주워 들었다가 얼어붙었다.

연이—…아. 이거 내가 친 거 아니야. 진짜로.

영냥이—놔라. 천천히.

연이는 북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까마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날개를 접었다.

연이—이건 섬이 아니라 도서관이야. 그것도 사서가 백 마리쯤 있는 도서관.

영냥이—수백 마리다.

연이—정정 고마워. 하나도 안 고마워.

연이는 회색 천막 사이를 걸었다. 걸을수록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은 사방에 있는데, 먹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연이—이게 제일 무섭다. 배고픈데 먹고 싶은 게 없는 거.

영냥이—사람이 시드는 순서다. 먼저 맛을 잃고, 다음엔 웃음을 잃는다.

연이—그럼 이 섬 사람들은 지금 전부 시드는 중이네.

영냥이—그래서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네 발에도 하나 찍혔다.

연이—안 돼. 나 아직 이 섬 대표 메뉴 하나도 못 먹었어. 맛 돌려받기 전엔 못 가.

영냥이—동기가 식욕이군.

연이—식욕은 숭고해. 인류는 배고파서 불을 발견했어.

영냥이—너는 지금 돼지다.

연이—돼지도 숭고해!

그때였다. 회색 냄새 사이로 다른 냄새 하나가 끼어들었다. 간장 졸이는 냄새, 깨 볶는 냄새, 그리고 아주 살짝 탄 냄새.

연이—잠깐. 영냥아. 맡았어?

영냥이—무엇을.

연이—맛있는 냄새! 진짜로 맛있는 냄새! 회색이 아닌 냄새!

연이의 코가 저 혼자 움직였다. 앞발이 코를 따라갔다. 영냥이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영냥이—연이야. 함부로 따라가지 마.

연이—코가 먼저 갔어. 나는 그냥 코를 따라가는 거야.

냄새는 시장 끝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해가 닿지 않는 골목이었다. 처마마다 등불만 켜져 있었다.

골목 깊은 곳에서 기름 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

노래는 아니었다. 노래라기엔 너무 빨랐고, 말이라기엔 박자가 있었다.

불 올려, 기름 둘러. 입은 막아도 맛은 못 막아. 회색 하늘 아래 내 냄비만 빨개.

연이—…랩이야? 이 섬에서? 지금?

영냥이—들키면 도장 셋으로 끝나지 않는다.

골목 끝, 다 쓰러져 가는 포장마차 안에 갈색 수달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작은 냄비 앞에서 떡꼬치를 굴리며 냄비에게만 들리게 중얼거렸다.

냄비 속 떡꼬치가 주황빛으로 빛났다. 회색 섬 한가운데서, 그것만 색이 있었다.

연이—…불씨다.

영냥이—저 불은 해에서 빌린 불이 아니다. 자기 안에서 피운 불이다.

연이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갔다. 발밑에서 회색 접시가 깨졌다. 쨍.

수달이 펄쩍 뛰었다. 들고 있던 떡꼬치가 허공으로 날았다. 연이가 그것을 입으로 받았다.

모카—야. 그거 내 꼬치야.

연이—…맛있어.

모카—당연히 맛있지. 내가 구웠으니까. 근데 너 뭐야. 돼지야?

연이—별 다섯 개. 아니, 여섯 개.

모카—별은 다섯 개까지밖에 없어, 이 꽃 달린 돼지야.

모카—그리고 꽃 달린 돼지가 남의 골목에서 왜 코를 킁킁대.

연이—냄새가 먼저 말 걸었어. 나 맛있다고.

영냥이—수달이 랩을 하는 섬이었군.

모카—랩 아니야. 레시피 낭독이야. 박자가 좀 붙었을 뿐이지.

연이—박자 붙은 레시피를 사람들은 랩이라고 불러.

모카—사람들이 틀렸어.

머리 위에서 날갯짓 소리가 쏟아졌다. 골목 입구가 까맣게 막혔다. 까마귀들이 소리를 찾아 내려오고 있었다.

모카—봤지. 다 봤지. 랩도 들었지.

연이—아, 아무것도 못 들었어. 나 귀 접혀 있었어.

모카—들었으면 공범이야. 뛰어, 돼지.

전체 목차십성 해석 가이드비주얼 노벨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