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08 · 11 / 73

마지막 불씨

독설가 수달 요리사 모카와 첫 만남부터 앙숙. 지하 무대에 검은 호랑이가 빌려준 박수를 거두러 온다.

한글 약 2,795자 · 읽는 시간 약 7분

수달은 냄비를 끌어안고 뛰었다. 연이는 그 뒤를 굴러가듯 따라갔다. 영냥이는 가장 뒤에서 까마귀가 내려오는 쪽을 노려보았다.

모카—왼쪽! 아니, 네 왼쪽 말고 내 왼쪽!

연이—앞에서 뛰는 사람 기준으로 말해 줘! 나 지금 다리가 네 개라 헷갈려!

골목은 개미굴처럼 꺾였다. 수달은 막다른 벽 앞에서 멈추더니 바닥의 나무 뚜껑을 발로 걷어찼다.

모카—들어가. 머리 조심. 아, 넌 머리보다 배가 먼저 걸리겠구나.

연이—처음 본 사이에 체형 평가하지 마!

셋이 차례로 떨어졌다. 뚜껑이 닫히는 순간 머리 위로 날갯짓이 지나갔다. 한참을 맴돌던 소리가 멀어졌다.

지하는 좁은 부엌이었다. 벽에는 국자와 체가 빼곡히 걸려 있었고, 가운데에는 작은 흙 단지가 놓여 있었다. 단지 안에서 불씨 하나가 숨을 쉬듯 깜빡였다.

모카—소개는 짧게 하자. 모카. 수달. 요리사.

연이—연이. 사람. 지금은 사정상 돼지.

영냥이—영냥이.

모카—고양이?

영냥이—그냥 고양이는 아니다.

모카—그냥 고양이가 아닌데 이렇게 작아? 이 섬은 정말 끝났구나.

연이—그치? 나도 처음에 그랬어.

영냥이—둘이 오늘 처음 만난 거 맞지?

모카는 대답 대신 냄비를 불씨 단지 위에 올렸다. 아까 그 떡꼬치였다. 간장이 졸아드는 소리가 났다.

연이—그 냄새. 그 냄새야.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냄새.

모카—넌 냄새한테 끌려다니는 인생이냐.

연이—냄새는 거짓말을 안 해.

모카가 꼬치 하나를 건넸다. 연이는 앞발의 회색 도장을 힐끔 보았다. 맛이 안 나면 어쩌나 싶었다.

한 입. 단짠이 혀끝에서 터졌다. 불 맛이 그 뒤를 따라왔다. 연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연이—맛이 나. 도장이 찍혔는데도 맛이 나.

모카—우, 울어? 꼬치 하나에?

연이—꼬치 하나가 아니야. 오늘 하루치 억울함이야.

연이는 꼬치를 다 먹고 나서야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회색 도장의 한쪽 귀퉁이가 그을린 종이처럼 옅어져 있었다.

연이—영냥아, 이거 봐. 도장이 조금 지워졌어.

영냥이—진짜 맛이 도장을 태운 거다. 아주 조금이지만.

모카—그래서 내가 매일 밤 몰래 굽는 거야. 한 사람이라도 맛을 기억하라고.

영냥이—丁火야. 등잔처럼 작은 불이지. 해가 멈춰도 누군가 돌보는 동안은 남아 있어.

모카—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우리 할머니 불이야.

모카는 불씨 단지를 앞발로 감쌌다. 털이 그을린 자국이 손바닥에 여럿 있었다.

모카—할머니가 이 섬에서 제일 시끄러운 포장마차를 했거든. 손님한테 노래 한 곡 시키면 꼬치 하나 공짜.

연이—완전 내 스타일 가게다.

모카—노래 못 하는 손님은 두 개 줬어. 용기 값이라고.

연이—할머니 최고다. 별 다섯 개.

모카—할머니는 별 여섯 개야. 아까 너 여섯 개 된다며.

연이—할머니 한정으로 인정.

영냥이—그 할머니는 지금 어디 있지.

모카의 손이 잠깐 멈췄다. 기름이 한 번 튀었다.

모카—해 지기 전에 돌아가셨어. 그 뒤로 내가 불만 지키고 있어.

연이—…미안. 괜히 물었다.

모카—네가 물은 거 아니잖아. 고양이가 물었지.

영냥이—미안하다.

모카—됐어. 그래서 나는 노래는 안 해. 요리만 해.

연이—아까 그건 노래 아니었어?

모카—레시피라니까.

연이—박자가 그렇게 좋은 레시피는 처음 들어 봐.

모카의 귀 끝이 붉어졌다. 그는 괜히 국자로 냄비를 저었다.

모카—사람 앞에서 하면 안 나와. 냄비 앞에서만 나와.

연이—왜?

모카—몰라. 사람 눈이 냄비보다 무서우니까.

영냥이—대부분 그렇다.

모카—아무튼. 이 섬에 노래가 아직 남은 데가 딱 한 군데 있어.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데.

연이—어딘데?

모카—지하 무대. 같이 갈래? 거기 가면 너도 알 거야. 이 섬이 원래 어떤 소리를 냈는지.

영냥이—위험하다.

연이—위험하니까 가야지. 노래가 남아 있는 마지막 장소라며.

영냥이—너랑 말하면 꼭 여기서 막히더라.

머리 위 뚜껑이 덜컹 울렸다. 셋은 숨을 멈췄다. 발톱이 나무를 긁는 소리가 천천히 지나갔다.

모카—매일 밤 이래. 이제 발소리만 들어도 몇 마리인지 알아.

연이—지금은 몇 마리였는데?

모카—한 마리. 근데 저 한 마리가 제일 무거워.

영냥이—재판관이 왔네.

모카—소문으로는 저 까마귀도 옛날엔 무대에 섰대. 첫 소절에서 다들 웃어 버렸다나.

연이—그래서 노래를 다 없앤 거야? 복수로?

모카—몰라. 그날 이후로 아무도 그 애 이름을 기억 못 해.

지하 무대는 버려진 물탱크 안에 있었다. 둥근 벽을 따라 등불이 걸렸고, 바닥에는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천으로 감싼 북을 쳤다. 피리 끝에는 솜을 끼웠다. 가수는 노래를 속삭였다.

가수는 은빛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였다. 목소리는 실처럼 가늘었지만 끊기지 않았다.

모카—여울 누나. 이 섬에서 노래 제일 잘하는 사람. 할머니 가게 단골이었어.

연이—너 지금 엄청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모카—아니거든. 원래 얼굴이 이래.

연이—근데 이거, 속삭이는 콘서트야.

모카—여기서도 크게 부르면 위에서 들려. 그래서 다들 작게 불러. 대신 끝까지 불러.

속삭임이 모이자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서른 명의 숨이 같은 박자로 오르내렸다. 연이의 앞발이 저도 모르게 바닥을 두드렸다.

영냥이—숨은 괜찮다고 했지.

연이—응. 숨은 괜찮아. 지금 다들 숨으로 노래하고 있어.

노래가 끝났다. 사람들은 박수 대신 손바닥을 서로의 손바닥에 갖다 댔다. 소리 없는 박수였다.

연이—이거 좋다. 이 섬 사람들, 진짜 노래 좋아하는구나.

모카—좋아하지. 그래서 사는 거야.

그때 등불 하나가 꺼졌다. 또 하나. 무대 쪽에서부터 차례로 어둠이 걸어왔다.

검은 호랑이—공연 잘 봤어. 그럼 이제 정산하자.

무대 끝에 검은 호랑이가 앉아 있었다. 금실 망토, 붉은 눈, 이마의 붉은 문양. 앞발 아래에는 두꺼운 장부가 펼쳐져 있었다.

연이—호랑이?

검은 호랑이—또 만났네, 연이. 모자 쓴 고양이는 여전히 옆에 있고. 섬을 옮겨도 안 떨어지는구나.

영냥이—여기서 뭘 하는 거지.

검은 호랑이—일. 이 사람들 중에 박수를 빌려 간 사람들이 있거든. 오늘이 갚는 날이야.

영냥이—운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장사인가.

검은 호랑이—장사가 잘돼. 이 섬은 특히. 다들 박수가 고팠거든.

무대 위의 가수가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의 목에도 작은 표찰이 걸려 있었다. 골목의 북 아이가 걸고 있던 것과 같은 표찰이었다.

모카—여울 누나 건드리지 마. 누나는 노래 그만두려다가 그거 빌린 거야. 한 번만 큰 박수 받아 보고 싶다고.

검은 호랑이—그래서 받았잖아. 커다란 박수. 그날 밤 이 무대가 무너질 만큼.

검은 호랑이—받은 건 돌려줘야지. 박수는 박수로 갚을 수 없어. 목소리로 갚아.

호랑이가 장부를 앞발로 눌렀다. 가수의 목에서 빛나는 실 한 가닥이 풀려 나왔다. 실은 공중을 건너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이—그만해!

가수가 입을 벌렸다. 속삭임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어섰지만 아무도 무대로 다가가지 못했다.

연이—그 사람 노래를 갖고 싶었던 거지, 그 사람 목소리를 망가뜨리고 싶었던 건 아니잖아!

검은 호랑이—내가 원한 게 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연이—그럼 원하는 걸 말해. 내가 갚을게. 저 누나 몫까지.

영냥이—연이야. 그 말은 거둬.

호랑이의 붉은 눈이 연이에게 멈췄다. 장부 넘기던 앞발도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 호랑이는 무언가를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검은 호랑이—남의 빚을 대신 지겠다고? 이자도 모르면서?

연이—이자 같은 거 몰라. 그냥 저 사람 목소리 돌려줘.

검은 호랑이—…다친 걸 보면 멈추는 버릇. 여전하네.

검은 호랑이—아직은 안 받을게. 네 값은 지금보다 훨씬 오를 테니까.

모카—사람 목소리 가지고 흥정하지 마, 이 줄무늬야!

검은 호랑이—줄무늬도 무늬야. 남의 무늬는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야, 수달.

그때 천장이 울렸다. 쿵. 또 한 번. 물탱크의 녹슨 지붕에 금이 갔다.

지붕이 찢어졌다. 까마귀들이 검은 비처럼 쏟아졌다. 그 한가운데로 법복의 까마귀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까마귀—노래의 소굴을 찾았다.

까마귀—전원, 도장.

연이—다들 속삭였잖아! 이게 무슨 소음이야!

까마귀—속삭임도 노래다. 박수 없는 박수도 박수다.

까마귀들이 도장을 내리찍었다. 쾅. 쾅. 손등마다 회색 꽃이 피었다. 아까의 숨소리 박자가 하나씩 꺼져 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삼키며 흩어졌다. 등불이 쓰러졌다. 모카는 사람들을 뒷문 쪽으로 밀어냈다.

모카—이쪽! 머리 숙이고! 말하지 마, 숨만 쉬어!

연이—누나! 누나도 빨리!

목소리를 잃은 가수가 무대 위에 얼어붙어 있었다. 손에는 아직 솜 낀 마이크가 쥐어져 있었다. 연이는 무대로 뛰어올랐다.

영냥이—연이야, 위!

검은 그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연이는 가수를 무대 아래로 밀어냈다. 그물은 연이 혼자를 덮었다.

연이—으악, 끈적해! 이거 뭐야!

영냥이—놔라!

영냥이가 뛰어올랐다. 금빛 발톱이 그물로 향했다. 그 순간 까마귀의 깃털 수십 개가 작은 흰 몸을 휘감았다. 영냥이는 바닥에 내리꽂혔다.

연이—영냥아!

무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호랑이는 이미 없었다. 장부도, 빛나던 실도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 금실 한 올만 떨어져 있었다.

까마귀—피고, 꽃돼지.

까마귀—혐의, 노래 선동. 무단 미식. 과도한 감탄사.

연이—과도한 감탄사는 또 뭐야!

그물이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뒷문 틈에서 이를 악문 모카의 얼굴이었다.

까마귀—내일 아침, 재판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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