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09 · 12 / 73

검은 깃털 재판

피고 돼지, 까마귀의 재판정에 서다. 처음 터진 연이의 말이 변호하던 영냥이를 다치게 한다.

한글 약 2,816자 · 읽는 시간 약 7분

재판정은 거대한 새장이었다. 둥근 철창이 하늘까지 솟았고, 그 안쪽 계단마다 회색 도장이 찍힌 사람들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연이는 그물째 피고석에 매달려 있었다. 그물은 밤새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연이—여기 혹시 피고 인권 같은 거 있어? 아니면 돼지권이라도.

높은 단상 위로 법복의 까마귀가 내려앉았다. 가면 아래 눈은 보이지 않았다. 깃털 망치가 탁자를 한 번 두드렸다.

까마귀—개정한다.

까마귀—피고, 꽃돼지. 혐의 셋. 노래 선동, 무단 미식, 과도한 감탄사.

연이—세 번째 건 진짜 처음 들어 보는 죄야.

까마귀—기록에 따르면 피고는 어제 하루 감탄사를 마흔일곱 번 냈다.

연이—그걸 세고 있었어?

까마귀—마흔여덟 번.

까마귀—예시를 낭독한다. 꾸울. 꾸우울. 꿀악. 우와. 대박. 미쳤다.

연이—그거 판사님 목소리로 들으니까 되게 창피하다.

영냥이—꿀악은 나도 처음 듣는 단어다.

연이—너도 들었잖아! 첫날에!

계단의 사람들 몇이 어깨를 떨었다. 웃음을 참는 어깨였다. 까마귀의 고개가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어깨들이 얼어붙었다.

영냥이—변호인 자리는 어디지.

영냥이는 깃털에 칭칭 감긴 채 증인석 옆에 묶여 있었다. 그래도 목소리만은 법정 전체에 또렷했다.

까마귀—피고에게 변호인은 허락되지 않았다.

영냥이—이 섬 법에 따르면 무대에 선 사람은 박수꾼 한 명을 둘 수 있지. 내가 그 역할을 맡겠어.

연이—그런 법이 있었어?

영냥이—지금 생각했다.

연이—변호사님 최고. 별 다섯 개.

까마귀—…허락한다. 박수꾼은 박수를 칠 수 없다는 조건으로.

영냥이—고양이 앞발로 손뼉은 원래 어렵다.

까마귀—증거물 일 호.

까마귀 하나가 은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 위에는 반쯤 먹다 만 떡꼬치가 놓여 있었다. 연이의 눈이 반짝였다.

연이—아, 내 꼬치.

영냥이—연이야. 증거물 보고 침 흘리면 변호하기 힘들어.

연이—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야.

까마귀—이 꼬치에서 맛이 검출되었다. 출처를 대라.

연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모카의 이름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연이—바닥에서 주웠어. 아무튼 주웠어.

까마귀—거짓 진술 추가.

영냥이—이의 있습니다. 음식이 맛있었던 것까지 먹은 사람 책임은 아니죠.

까마귀—기각.

영냥이—이의 있습니다. 감탄한 소리까지 노래로 칠 수는 없죠.

까마귀—피고의 꾸우울에는 음정이 있었다. 솔에서 미로 떨어지는.

연이—내 비명에 계이름까지 붙였어?

영냥이—…듣고 보니 솔에서 미가 맞다.

연이—영냥아! 너 누구 편이야!

영냥이—재판장. 증거물의 보관 상태를 문제 삼겠다. 꼬치가 식었다.

까마귀—그게 무슨 문제인가.

영냥이—식은 꼬치는 맛이 없다. 맛이 없으면 무단 미식도 성립하지 않는다.

연이—오, 방금 그건 좀 변호사 같았어.

까마귀—기각. 피고는 식은 꼬치를 보고도 침을 흘렸다.

까마귀—증인을 부른다.

철창 문이 열리고 회색 시장의 할머니가 들어왔다. 손등에 도장이 셋. 할머니는 연이를 보더니 작게 고개를 숙였다.

까마귀—증인. 이 돼지가 시장에서 노래를 했는가.

할머니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까지 빼앗긴 도장이었다. 대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가 천천히 펼쳤다.

연이—저게 무슨 뜻이야?

영냥이—꽃이 핀다는 뜻이다. 네가 시장에서 사탕을 먹고 웃었을 때.

할머니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계단의 사람들 몇이 따라서 손을 펼쳤다. 소리 없는 꽃이 재판정 여기저기에서 피어났다.

까마귀—그만.

까마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손을 펼쳤던 사람들이 황급히 손을 내렸다.

연이—저기, 판사님. 하나만 물어봐도 돼?

까마귀—피고는 질문할 수 없다.

연이—그럼 혼잣말할게. 노래를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걸까. 노래가 판사님 뺨이라도 때렸나.

연이—나도 노래 못해서 비웃음 꽤 받았거든. 노래방 최고 점수 사십칠 점.

영냥이—마흔일곱. 오늘 감탄사 수와 같군.

재판정이 조용해졌다. 깃털 망치를 쥔 발톱이 하얗게 굳었다.

까마귀—노래는 비웃음을 부른다.

까마귀—아무도 노래하지 않으면,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연이—…누가 너 비웃었어?

망치가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에 금이 갔다. 철창 위의 까마귀 떼가 일제히 날개를 펼쳤다.

까마귀—판결.

까마귀—피고 꽃돼지, 목소리 전부 몰수. 박수꾼 고양이, 공범으로 모자 몰수.

연이—모자? 영냥이 모자를 왜!

까마귀—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모자다.

영냥이—그건 칭찬으로 듣겠다.

까마귀 둘이 가위를 들고 영냥이에게 다가갔다. 날이 모자 끝 술에 닿았다. 금빛 술 한 가닥이 바닥에 떨어졌다.

영냥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연이의 숨이 빨라졌다. 귓속에서 심장 소리가 북처럼 울렸다.

연이—손대지 마.

까마귀—피고는 발언할 수 없다.

연이—손대지 말라고 했어!

연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불이 되었다. 글자 모양의 불꽃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손. 대. 지. 마. 네 덩어리의 불이 가위를 녹였다.

까마귀—…상관.

불은 멈추지 않았다. 연이가 숨을 쉴 때마다 말이 더 뜨거워졌다. 철창이 붉게 달아올랐다. 계단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연이—노래가 싫으면 너나 안 부르면 되잖아! 왜 남의 입을 막아!

영냥이—연이야, 멈춰!

연이—다들 그렇게 조용히 사는 게 좋아? 웃을 일 없는 섬이 그렇게 좋아?

불꽃 하나가 계단 쪽으로 휘었다. 할머니가 앉은 자리였다. 영냥이가 몸을 감은 깃털을 찢고 뛰어들었다.

하얀 빛과 붉은 불이 부딪쳤다. 영냥이의 앞발이 불꽃을 쳐 냈다. 불은 할머니 머리 위를 스치고 철창에 부딪혀 흩어졌다.

연이—여, 영냥아?

영냥이—괜찮다. 숨부터 쉬어라. 천천히.

연이는 숨을 들이켰다. 불이 사그라들었다. 입안에 탄 냄새가 남았다. 영냥이는 앞발을 등 뒤로 감추고 있었다.

연이—나 방금, 할머니를 칠 뻔했어.

영냥이—쳤으면 내가 혼냈을 거다. 안 쳤으니 됐다.

까마귀—보았는가. 말은 불이다. 그래서 막는 것이다.

연이—…….

그 순간 재판정 지붕 환기구에서 쇳소리가 났다. 덜컹. 덜컹. 무언가가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모카—주문하신 튀김 나왔습니다!

모카가 환기구에서 떨어지며 기름 냄비를 뒤집었다. 반죽 덩어리가 철창의 열기에 닿자 하얀 연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까마귀—연기를 걷어라!

모카—늦었어. 우리 할머니 연막 튀김은 십 분 동안 안 걷혀.

연이—튀김으로 연막을 만드는 게 가능해?

모카—반죽에 밀가루 두 배. 대신 맛은 없어. 먹지 마.

연이—그게 제일 슬프다.

모카의 식칼이 그물 끝을 끊었다. 연이는 피고석에서 굴러떨어졌다. 영냥이가 목덜미를 물어 끌어올렸다.

영냥이—출구는.

모카—하수구. 냄새는 참아. 살고 싶으면.

연이—나 그물 자국 때문에 지금 꽃무늬 돼지인데, 하수구까지?

영냥이—꽃무늬는 나중에 슬퍼해라. 뛰어.

하수구 끝은 바닷가 언덕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저녁 바다는 소리가 없었다. 파도가 쳐도 철썩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연이—바다도 도장 맞았나 봐.

모카—해가 멈춘 날부터 그래. 파도가 입을 다물었어.

모카는 바위 뒤에서 작은 불씨 단지를 꺼냈다. 남은 반죽으로 납작한 전을 부쳤다. 이번엔 냄새가 제대로 났다.

모카—먹어. 맛있는 쪽으로.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한 기름 맛이 퍼졌다. 연이의 귀가 저절로 펄럭였다.

연이—고마워. …근데 너 왜 왔어? 들키면 너도 도장 맞잖아.

모카—들었으면 공범이라고 했잖아. 공범이 공범 버리면 그게 무슨 공범이야.

연이—너 은근히 의리 있다.

모카—은근히 아니고 대놓고 있어.

연이는 전을 반쯤 먹다가 멈췄다. 손끝이 아직 따끔거렸다. 불이 지나간 자리였다.

연이—아까 그거, 나였어. 내 말이 불이 됐어.

영냥이—상관이다. 너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힘 중에 가장 날카로운 것.

연이—그럼 식신은?

영냥이—같은 불이다. 누군가 먹고 웃게 만드는 쪽으로 타면.

모카—쉽게 말해 꼬치 굽는 불이랑 집 태우는 불. 불은 같은데 쓰는 놈이 다른 거.

연이—오. 모카 선생님 설명이 더 쉬운데?

영냥이—나는 고양이라서 비유가 서툴다. 흥.

모카—할머니가 그랬어. 해는 원래 노래로 띄우는 거라고. 정오에 다 같이 부르면 해가 제일 높이 올라간다고.

연이—그럼 정오에 노래하면 해가 다시 움직여?

모카—옛날 얘기야. 동화. 진짜로 믿지 마.

연이—나 동화 엄청 잘 믿는 타입인데.

영냥이—丙은 한낮의 해다. 정오를 못 넘긴 해라면, 그 동화가 틀린 말은 아니다.

모카—…진짜? 그럼 할머니가 맞았던 거야?

웃음이 잦아들었다. 연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소리 없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연이—그 까마귀, 아까 목소리 갈라졌을 때. 진짜 아파 보였어.

모카—동정하지 마. 그 녀석이 우리 할머니 가게 간판을 뜯어 갔어.

연이—동정 아니야. 그냥, 누가 웃었을까 싶어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연이의 숨소리가 느려졌다. 돼지는 전을 문 채 잠들었다.

영냥이는 혼자 물가로 걸어갔다. 소리 없는 파도에 앞발을 담갔다.

김이 올랐다. 하얀 털 아래 살갗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상 자국은 글자처럼 생겼다. 傷.

영냥이—…생각보다 빠르군.

영냥이는 앞발을 물에서 꺼내 털을 쓸어 덮었다. 돌아보았을 때 연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같은 시각, 텅 빈 재판정. 까마귀는 바닥에 떨어진 금빛 모자 술 한 가닥을 주워 들었다.

까마귀—상관이 깨어났다. 이대로면 정오가 온다.

까마귀는 금빛 술을 품 안에 넣었다. 품 안쪽에서 검은 깃털 하나가 저 혼자 떨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까마귀—그 전에 그 돼지의 목소리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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