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14A · 19 / 70

숨을 받치는 법

네오와 맞추는 숨. 금은 나무를 벤다는 고백 뒤에도 연이는 손을 놓지 않는다.

한글 약 1,863자 · 읽는 시간 약 4분

빵집 다락. 밀가루 포대를 쌓아 만든 탁자 위에 윤달이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숯으로 그린 시계탑 단면도였다.

윤달—금고는 시계탑 아래 일곱 층이에요. 층이 깊어질수록 시간이 느려져요.

윤달—마지막 칸쯤 가면 한 걸음 떼는 데 한 시간쯤 걸리죠. 숨 한 번이 하루일 수도 있고요.

모카—그럼 거기서 재채기하면 일주일 날아가는 거야?

윤달—재채기는 참으세요. 모카 씨는 특히.

모카—왜 나만 특히야.

윤달—수달은 코가 예민하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모카 씨 생시는 언제예요?

모카—지금 이 상황에 수달한테 생시를 물어? 별 하나.

연이—아저씨 그거 버릇이죠.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 거.

윤달—직업병이에요. 생시를 알면 그 사람이 어디서 넘어질지 보이거든요.

네오—넘어질 곳은 정해져 있다. 일곱째 칸. 시간이 거의 멈춘 곳이다.

윤달—거기선 보통 숨으로는 못 버텨요. 숨이 얼어서 가슴에 걸리거든요.

연이—숨이 얼어? 그럼 어떻게 들어가?

네오—받치면 된다. 숨이 떨어지지 않게 아래에서 받쳐 주는 거다.

윤달—그 전에 역할부터 나눌게요. 모카 씨는 입구에서 냄새로 경비를 홀리고.

모카—경비가 뭔데. 토끼야?

윤달—시간을 못 갚은 사람들이에요. 금고 앞에 빚 대신 서 있죠. 배가 고플 거예요. 아주 오래.

모카—그럼 홀리는 게 아니라 먹이는 거네. 그건 자신 있어.

모카의 수염이 축 처졌다가 다시 섰다. 맛을 잃었던 식상의 섬 사람들 얼굴이 스친 모양이었다.

윤달—사자님은 길을 열고, 저는 잠긴 문을 먹고. 숙녀분은 가장 깊은 칸까지.

연이—왜 내가 제일 깊이 가?

윤달—일곱째 칸 문은 제 손으로 번 시간으로만 열려요. 우리 중에 그걸 가진 사람은 숙녀분뿐이에요.

연이—(내 12분.)

연이는 앞발의 작은 글씨를 다른 앞발로 가렸다. 액자에 넣겠다던 12분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연이—이 계획 리뷰해도 돼? 무모함 별 다섯, 디테일 별 셋. 생존율은 아직 별을 못 정하겠어.

윤달—정직한 리뷰네요. 3년 동안 받은 것 중에 제일이에요.

지붕 위. 섬의 째깍 소리가 멀어졌다. 네오는 연이를 마주 보고 앉아 제 앞발을 내밀었다.

네오—내 발 위에 네 앞발을 얹어라. 들이쉴 때 나를 누르고, 내쉴 때 나를 놓지 마라.

연이—누르고, 놓지 말고. 알았어. 쉬운데?

첫 숨은 쉬웠다. 두 번째 숨에서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해졌다. 세 번째 숨에서 연이의 앞발이 미끄러졌다.

연이—하나도 안 쉬워. 숨이 자꾸 위로 도망가.

네오—위로 끌어올리니까 그렇다. 잡아당기지 말고 바닥에 내려놔라.

연이—(잡아당기지 말고. 어디서 들어 본 말인데.)

연이가 눈을 감았다. 숨을 가슴이 아니라 배 아래까지 내려보냈다. 네오의 앞발이 그 숨을 아래에서 떠받쳤다.

연이의 앞발 끝에서 연둣빛 싹이 하나 돋았다. 싹은 네오의 발등을 타고 천천히 감겨 올라갔다.

연이—됐다! 봤어? 싹 났어!

그 순간 네오의 발에서 은빛이 번쩍였다. 감겨 오르던 싹이 소리도 없이 잘려 지붕 위로 떨어졌다.

연이—어… 왜 잘렸어?

네오—내 기운은 금이다. 금은 나무를 벤다.

네오—기억해 둬라. 나는 너를 다치게 하는 기운이야. 가까이 붙을수록 더.

연이—근데 방금 숨은 네가 받쳐 줬잖아. 다치게 하는 기운이 그렇게 받쳐 줘?

네오—그건…

연이—대답 못 하지. 그럼 내 해석이 맞는 걸로 할게. 반은 베고 반은 받쳐 주는 기운.

네오는 대답 대신 잘린 싹을 주워 연이의 귀 뒤에 꽂아 주었다.

연이—이거… 장식이야? 리본 같은 거야?

네오—증거물이다. 수련 중에 다쳤다는.

연이—증거물을 귀에 꽂아 주는 사자는 처음 봐. 별 네 개.

네오—하나는 왜 빼지.

연이—설명이 너무 짧았으니까.

다락 창문 아래에서 모카가 꼬치를 뒤집다가 혀를 찼다. 저 둘 수련하는 거야, 데이트하는 거야.

연이—다 들려! 수련이거든! 증거물도 있거든!

연이가 다시 다락으로 내려간 뒤에도 네오는 지붕 끝에 남았다. 달빛 아래로 그가 왼 앞발을 뒤집었다.

발바닥의 털이 군데군데 타 있었다. 까마귀 재판정에서 그을린 자리였다. 상처 위로 방금 싹이 남긴 초록 물이 번져 있었다.

윤달—그 발, 아직 안 나았네요.

네오—언제부터 봤지.

윤달—처음 천막에서요. 사자님 발 디딜 때 왼쪽이 늘 반 박자 늦더라고요.

윤달—숙녀분 명식에 상관이 커요. 말이 불이 되는 기운. 그 불이 커질수록 관이 다치죠.

네오—그 관이 누구인지 말하지 마라. 그녀에게도.

윤달—말 안 하면 언젠가 터져요. 상처는 숨긴다고 작아지지 않거든요.

네오—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다. 그녀가 자기 불을 무서워하게 되는 건 싫다.

윤달은 한동안 네오의 옆얼굴을 보았다. 사자의 금빛 눈이 다락 창의 불빛 쪽만 향해 있었다.

윤달—비밀 하나 맡는 값은 비싼데요. 사자님 생시 하나면 될 것 같은데.

네오—모른다. 내 생일은.

윤달—진짜 모르는 거였어요? 어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윤달은 웃음을 거두고, 장갑 낀 손으로 네오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윤달—좋아요. 외상으로 해 둘게요. 저도 외상 인생이라 그 기분 알아요.

새벽 두 시. 넷은 시계탑 아래 광장 그늘에 모였다. 탑 꼭대기의 바늘이 느릿느릿 돌았다.

모카—냄새 교란용 꼬치 마흔 개. 매운맛 스무 개, 단맛 스무 개.

연이—루나 언니 남은 시간은 네 시간. 해 뜨기 전에 나온다.

[ 루나 언니 · 남은 오늘 03:58:12 ]

네오—숨 받치는 법, 잊지 마라.

연이—귀에 증거물 꽂고 다니는데 어떻게 잊어.

연이는 시계탑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바늘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윤달—호랑이는 아래에 있어요. 금고지기는 금고 앞을 떠나지 않으니까.

모카—그 줄무늬, 식상의 섬에서 박수를 걷어 간 녀석이지. 이번엔 내 차례야.

연이—싸우러 가는 거 아니야. 돌려받으러 가는 거야.

네오—그 말, 일곱째 칸에서도 기억해라.

윤달이 장갑을 고쳐 끼었다. 손가락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연이—아저씨 이름도 찾자. 찾으면 내가 제일 먼저 불러 줄게.

윤달—그럼 숙녀분이 제 이름을 부르는 세 번째 사람이 되겠네요.

연이—왜 세 번째예요?

윤달—첫 번째는 엄마, 두 번째는 저. 그다음이 숙녀분.

탑의 종이 두 번 울렸다. 넷은 그림자를 따라 시계탑의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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