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27B · 35 / 70

남는 사람

윤달 시점. 건너지 못한 사람이 한 번 쓸 수 있는 부적을 건네고,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이름을 혼자 되뇐다.

한글 약 1,849자 · 읽는 시간 약 4분

문이 열리기 전날 밤. 빵집의 불은 다 꺼지고, 화덕만 낮게 숨을 쉬고 있었다.

윤달은 화덕 앞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노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 손목까지 번진 구멍 위로 붕대가 세 겹 감겨 있었다.

윤달—자, 손님. 오늘의 마지막 영업입니다.

손님은 없었다. 윤달은 혼잣말에 익숙했다. 사람들이 그를 자꾸 잊어버린 뒤로, 대화의 절반은 늘 혼잣말이었다.

붓끝이 종이 위를 지나갔다. 乙亥. 숙녀분의 일주. 그 둘레에 작은 별 여덟 개. 마지막 별 하나는 비워 두었다.

윤달—부적은 한 번만 쓰는 게 제일 세요. 두 번 쓰려고 하면 욕심이 묻거든요.

그는 다 그린 부적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그리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달—길 찾기 부적. 한 번, 숙녀분이 돌아올 길을 밝혀 줌. 유효기간 없음. 환불 불가.

네오—거기서 뭐 하나.

윤달—아이고, 사자님. 고객센터는 밤에도 순찰 도시네요.

네오—냄새가 나서 왔다. 먹물 냄새.

네오는 윤달 손에 들린 부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붕대를 보았다. 붕대 끝에 검은 얼룩이 배어 나와 있었다.

네오—그건 연이 거냐.

윤달—네. 내일 숙녀분 빵 봉지에 몰래 넣어 두려고요. 직접 주면 고맙다고 할 거고, 그럼 제가 또 울 것 같아서.

네오—너는 안 운다.

윤달—사자님은 저를 너무 모르시네요. 저 잘 울어요. 다만 다들 우는 걸 잊어버려서 그렇지.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윤달 옆 의자에 앉았다. 둘은 한동안 화덕 불을 같이 보았다.

네오—문, 못 넘는 거 알고 있었나.

윤달—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부터요. 시가 없으면 못 돌아가요. 3년 동안 그 문 앞까지 간 적이 두 번 있어요.

네오—두 번 다.

윤달—네. 두 번 다 문이 저를 몰라봤어요.

화덕 속에서 장작 하나가 무너졌다. 불티가 튀었다. 윤달은 붕대 감은 손으로 그것을 받아 쥐었다. 불티는 손바닥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네오—저쪽에서 연이를 지키는 건 내가 한다. 너는 여기서 버텨라.

윤달—그럼요. 저 버티는 거 하나는 잘해요.

네오—그리고. 고맙다. 오늘 강에서.

윤달—와. 사자님이 고맙대. 이거 부적으로 써서 팔면 대박이겠다.

네오—취소다.

이튿날 아침, 문이 열렸다. 금빛 바람이 빵집 창고를 가득 채웠다.

숙녀분이 문턱을 넘는 순간, 윤달은 아주 작게 이름 하나를 중얼거렸다. 윤달이 아닌 이름. 문 너머로 넘어가는 사람이 혹시 주워 가 주기를 바라면서.

바람이 그 소리를 덮었다. 숙녀분이 뒤를 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다.

윤달—역시, 무리였나.

문은 다시 낡은 창고 문이 되었다. 그 일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윤달은 창고 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문고리를 한 번 쓸어 보았다. 아직 따뜻했다.

점심 무렵, 모카가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 봐야 꼬치 굽는 쇠꼬챙이 한 묶음이었다.

모카—그럼 나 간다. 축제 섬. 해 지기 전에 배 타야 돼.

윤달—수달 씨, 몸조심해요. 랩도 좀 줄이고요.

모카—랩은 안 줄여. 그리고 사기꾼, 너 혼자 궁상떨지 마. 궁상떨 거면 축제 섬 와서 떨어. 꼬치는 줄게.

윤달—공짜예요?

모카—외상이야.

모카는 그렇게 말하고 부두 쪽으로 뛰어갔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윤달은 수달의 꼬리가 골목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 수 있었다.

그날 밤, 윤달은 빵집 구석 탁자에서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부적이 아니었다. 그냥 흰 종이였다.

그는 붓에 먹을 묻혀 이름 하나를 썼다. 윤달이 아닌 이름. 3년 전, 집 주소 아래 늘 적던 이름.

먹이 마르기도 전에 글자 가장자리가 흐려졌다. 한 획씩, 종이 속으로 스며들 듯 지워져 갔다. 마지막 획이 사라지자 종이는 처음처럼 하얬다.

윤달—오늘은 좀 빠르네.

그는 다시 썼다. 다시 지워졌다. 세 번째로 썼을 때, 그는 붓을 내려놓고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이름은 소리가 되자마자 공기 속에서 흩어졌다. 빵 냄새 사이로, 화덕 연기 사이로.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윤달—괜찮아요. 저는 기억하니까.

정말로 괜찮은지는 그도 몰랐다. 다만 3년 동안 그 말을 하는 법은 아주 잘 익혀 두었다.

루나—아저씨, 안 자요?

윤달—아, 루나 양. 깼어요?

루나—목말라서.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우리 언니가 아침에 물어보래. 처음 오신 손님인데 계속 계신다고.

윤달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 처음 오신 손님. 어제 나란히 빵을 굽던 사람에게서 들을 말은 아니었다.

윤달—윤달이에요. 있어도 없는 달. 그러니까 잊어버려도 괜찮은 이름이에요.

루나—윤달 아저씨. 외웠어! 내일 언니한테 말해 줄게.

윤달—고마워요. 그럼 내일 또 물어봐 줘요.

루나는 하품을 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윤달은 그 뒷모습을 오래 보았다. 내일 아침이면 저 아이도 다시 물을 것이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윤달은 빵집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흑월이 밀려난 자리, 하늘의 금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는 아니었다.

닫힌 금 사이로 별빛이 새어 나왔다. 이 세계의 별이 아니었다. 열두 줄로 늘어선 낯선 별들. 줄마다 이름 모를 큰 별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윤달—다른 하늘.

손바닥의 구멍이 그 별빛 쪽으로 저절로 당겨졌다. 처음 생긴 날부터 늘 그랬다. 흑월이 있는 쪽으로.

윤달—거기 있구나. 내 시간을 먹은 것의 주인.

윤달은 장갑을 고쳐 꼈다. 붕대 위로, 단단히.

윤달—숙녀분은 부적을 쓰면 돌아오실 거예요. 그분은 그런 사람이니까. 빵 맛을 못 잊는 사람.

윤달—그럼 저는 먼저 가서 자리 잡아 둘게요. 궁합 부스는 목이 중요하거든요.

윤달—사자님이 또 질투하시겠네. 그것도 영업에 도움이 되죠.

다음 날 아침, 루나 언니가 빵집 문을 열었을 때 구석 탁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붓 한 자루와 흰 종이 한 장.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루나 언니—누가 여기 종이를 두고 갔지.

루나 언니는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자기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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