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28D · 40 / 70

먼저 알아본 사람

호랑이 씨? 연이가 먼저 부른 순간 휴대폰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온다.

한글 약 1,865자 · 읽는 시간 약 4분

다음 날 아침, 연이는 메모장을 열고 한 줄씩 소리 내어 읽었다.

연이—하나, 맑은 날에도 검은 우산. 둘, 맑은 날 비 냄새. 이름은 서한비, 찬비.

연이—셋, 이름을 알려 주면 빚진다는 말. 넷, 빚은 남겨 두면 불어난다는 말.

연이—(다섯, 오른 손목의 고리 자국. 여섯, 다친 사람 앞에서 멈추는 버릇.)

연이는 다음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일곱, 네오가 하악질함. 사자도 아닌데 털을 세움.

「여덟, 우산 씌워 줬더니 가격을 물어봄.」

연이—그건 내가 적으려고 했어. 고객센터가 스포일러 하지 마.

그리고 연이는 기억해 냈다. 인성의 도서관. 쫓고 쫓기던 서가 사이. 펄럭이던 검은 망토 안쪽에 꿰매져 있던 이름. 북 치던 아이의 이름.

연이—(그 호랑이도 다친 아이 앞에서 멈칫했어. 빵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했어.)

연이—서한비 씨가 그 호랑이야. 검은 호랑이.

「…맞다. 나도 이제 기억난다. 그 냄새, 강 상류에서 맡았다.」

연이—근데 그 호랑이가 왜 우리 옆집에 살아? 그것도 사람으로?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너를 노리거나, 너를 지키거나.」

연이—(명함 뒤에 정류장 가지 말라고 썼어. 노리는 사람이 그런 걸 쓰나.)

연이—물어보면 되지. 옆집인데.

「위험하다. 저쪽에서 저 여자는 너를 사냥했다. 여기서도 발톱은 있다.」

연이—알아. 근데 정류장에서 우는 거 봤어. 사냥꾼은 그렇게 안 울어.

「…사람 보는 눈이 좋아졌군. 고객센터 교육 덕분이다.」

연이—그건 루나 언니 빵 덕분이야. 빵 먹으면서 사람을 많이 봤거든.

연이는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고양이가 연이의 발목에 꼬리를 감았다.

「같이 간다. 내가 하악질해도 말리지 마라.」

연이는 옆집 문 앞에 섰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빵이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싶었다.

세 번 두드렸다. 한참 뒤 문이 조금 열렸다. 체인이 걸린 틈으로 서한비의 눈이 보였다.

서한비—무슨 일이세요. 이른 시간인데.

연이—우산 돌려받으러 왔어요. 그리고 하나 물어보려고요.

문틈 사이로 테이프 감긴 우산이 내밀어졌다. 연이는 우산을 받지 않았다. 대신 문틈에 대고 조용히 불렀다.

연이—호랑이 씨?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탁. 복도에 그 소리만 울렸다.

서한비—…잘못 찾아오셨어요.

연이—북 치던 아이 이름, 아직 갖고 있어요? 코트 안주머니에.

서한비의 손이 저도 모르게 코트 가슴께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멈췄다. 늦었다.

연이—거기 있구나. 다행이다.

서한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체인 너머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연이—저는 그 아이 이름이 기억 안 나요. 여기 오니까 흐려졌어요. 근데 서한비 씨는 갖고 있잖아요.

서한비—버리려고 했어요. 몇 번이나. 버리면 장부가 깨끗해지니까. 근데 못 버렸어요.

서한비—어떻게… 여기선 다 흐려지는데. 당신은 원래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데.

연이—적어 놨거든요. 잊어버릴까 봐. 서한비 씨가 흘린 거 전부.

서한비—그럼 알겠네요. 내가 당신한테 뭘 했는지. 당신 운을 다 거둬 간 게 누군지.

연이—알아요. 그래서 물어보러 왔어요. 왜 옆집에 왔어요? 끝내러 왔어요, 지키러 왔어요?

서한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체인 너머에서 그녀의 입술이 두 번 열렸다가 닫혔다.

서한비—둘 다예요. 끝내라는 명령을 받았고, 지키고 싶었어요. 어느 쪽도 못 했고요.

연이—그래서 맑은 날마다 우산 들고 서 있었어요? 내 문 앞 지키느라?

서한비—비가 오면 그것이 와요. 물이 있는 곳으로.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정류장에 가지 말라고 한 거예요.

연이—그것이 뭔데요?

대답 대신 연이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저절로 켜졌다. 화면이 새까맸다. 한가운데 검은 원 하나. 테두리만 붉게 타는 해.

화면에서 검은 손이 뻗어 나왔다. 하나, 둘, 열둘. 손들이 연이의 손목과 발목을 휘감았다.

연이—이거… 저쪽 손이잖아! 여긴 현실인데!

흑월—늦었구나, 사냥개. 저쪽에서 끝내라 했거늘. 직접 거두마.

서한비—안 돼요! 그 애는 아직 비어 있지 않아요!

흑월—비우면 된다. 문을 열어라. 이번엔 네 손으로.

손들이 연이를 휴대폰 쪽으로 끌어당겼다. 화면이 문처럼 넓어졌다. 그 너머로 낯선 별들이 소용돌이쳤다.

서한비가 체인을 뜯어냈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녀의 오른 손목에서 금줄이 붉게 타올랐다.

검은 코트가 털이 되었다. 손이 앞발이 되고, 손톱이 발톱이 되었다. 복도를 가득 채운 검은 호랑이가 연이 앞에 섰다.

검은 호랑이—그 애한테서 손 떼.

앞발 한 번에 손 셋이 끊겼다. 끊긴 손이 다시 자랐다. 호랑이는 또 베었다. 오른 앞발의 금장 고리가 살을 파고들었다.

흑월—명령을 또 어기는구나. 그 고리가 누구 것인지 잊었느냐.

검은 호랑이—안 잊었어. 그래서 이번엔 내가 갚는 거야.

호랑이가 연이를 몸으로 덮었다. 손들이 이번엔 호랑이를 감았다. 연이 대신.

연이—호랑이 씨! 놔요, 같이 버텨요!

검은 호랑이—우산, 고마웠어요. 그건 장부에 적을게요. 미수로.

손들이 호랑이를 화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검은 꼬리 끝이 마지막으로 연이의 손등을 스쳤다. 차가운 빗물처럼.

복도가 조용해졌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고, 다시 켜졌다.

바닥에는 테이프 감긴 우산 하나와 젖은 발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붉은 발자국이었다.

연이—내가 불렀어. 내가 알아봐서, 그래서.

하얀 고양이가 연이의 무릎에 올라왔다. 털이 아직 곤두서 있었다.

「네 탓이 아니다. 네가 먼저 알아봤기 때문에, 저 여자는 자기 손으로 골랐다. 아마 처음으로.」

[ 다른 하늘이 열렸습니다 · 열두 개의 궁 ]

휴대폰 화면에 앱이 저절로 켜졌다. 이 앱을 처음 깔던 날처럼, 버튼 하나만 떠 있었다.

연이—이번엔 누가 억지로 누르게 안 해. 내가 누를 거야.

연이는 바닥의 우산을 주웠다. 테이프 감긴 손잡이가 아직 따뜻했다. 서한비가 오래 쥐고 있던 온기였다.

연이—이거 돌려줘야 하니까. 가서 데려올 거야. 이번엔 공짜로 안 넘어가.

지갑 안쪽에서 윤달의 부적이 따뜻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접힌 종이 위로, 초승달 하나가 천천히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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