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문 너머는 장터였다. 별빛 천막이 줄지어 서 있고, 등불 대신 작은 별이 장대 끝에 매달려 있었다.
장터 한가운데, 유난히 허름한 천막 하나에 손님이 몰려 있었다. 천막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붙어 있었다. 궁합 · 작명 · 길 찾기. 외상 가능.
연이—외상 가능이래. 저거 확실히 그 사람이다.
네오—저런 간판을 쓸 사람은 한 명뿐이지.
천막 안에서 오른손에 장갑을 낀 남자가 별 사람 아가씨의 손금을 보고 있었다. 아가씨의 얼굴이 별빛으로 발그레했다.
윤달—이 손금 보세요. 귀인이 서쪽에서 와요. 그것도 아주 가까이. 혹시 생년월일시가 어떻게 되세요?
별 사람 아가씨가 입을 열려는 순간 네오가 천막 앞에 섰다. 입구를 가린 어깨 너머로 은빛 망토가 흔들렸다.
네오—서쪽에서 손님 왔어. 이번 손님은 무료 상담 안 받아.
윤달—…어.
장갑 낀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연이—윤달 씨. 자리 잡아 둔다더니, 진짜 자리 잡았네요.
윤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놀란 얼굴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목에 걸린 얼굴이었다.
윤달—…제 이름을 아세요?
연이—당연하죠. 윤달 씨잖아요. 오른손 장갑. 궁합 사기.
윤달—저쪽에서는 다들 하루면 잊었는데. 루나도, 언니분도. 아침마다 처음 오신 손님이라고.
연이는 가방에서 메모장을 꺼냈다. 첫 장을 펼쳐 윤달 앞에 내밀었다. 연이의 글씨가 거기 있었다. 윤달 · 오른손 장갑 · 궁합 사기.
연이—잊어버릴까 봐 적어 놨어요. 저쪽 공기가 기억을 지운다길래, 지워지는 것보다 빨리 적었어요.
윤달은 그 한 줄을 한참 보았다. 장갑 낀 손가락으로 글씨를 따라 그었다. 궁합 사기라는 대목에서 그의 입꼬리가 무너지듯 올라갔다.
윤달—하필 남은 게 궁합 사기라니. 이거 영업 손실인데요.
연이—사실이잖아요.
윤달—사실이라서 더 아프네요. 숙녀분은 여전하시다.
네오—벌써 갔어. 손님 놓친 걸 내 탓 하진 마.
별 사람 아가씨는 두 사람 눈치를 보더니 자리를 떴다. 손금 값은 끝내 내지 않았다.
윤달—고양이님도 여전하시고요. 이번 달 매출 고양이님이 책임지세요.
그때 천막 뒤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숯불 냄새. 기름이 튀는 소리. 연이의 배가 먼저 반응했다.
모카—돼지. 냄새 맡고 왔지. 코는 아직 돼지네.
연이—모카?! 모카가 왜 여기 있어? 축제 섬 간다며!
모카—갔지. 갔는데 이 사기꾼이 배 타고 쫓아왔어. 길잡이는 밥 해 줄 사람이 필요하대.
윤달—사실이에요. 별 사람들 음식은 빛이라서 배가 안 불러요. 사흘 굶으니까 수달 꼬치가 생각나더라고요.
모카—그래서 외상 받으러 따라왔어. 이 사기꾼 외상이 꼬치 서른 개야.
연이—그걸 받으러 다른 하늘까지 왔다고?
모카—꼬치 서른 개면 큰돈이야. 아, 맞다. 너 사람 된 거 아직도 적응 안 돼. 빵집에선 정신없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
연이—나 사람 됐어. 이제 돼지 아니야.
모카—돼지 맞아. 마음속 돼지. 꼬치 받아먹는 얼굴이 똑같아.
모카는 투덜거리면서 꼬치 하나를 연이 손에 쥐여 주었다. 별빛 버섯과 이름 모를 열매가 꿰어 있었다. 맛이 났다. 따뜻했다.
연이—맛있다. 식상의 섬에서 처음 먹었던 맛이야.
모카—…당연하지. 내 꼬치는 하늘이 바뀌어도 맛있어.
모카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꼬리가 뒤에서 세차게 흔들렸다. 숨기지 못하는 건 꼬리뿐이었다.
네오—수달. 반갑다.
모카—반갑긴 뭐가. 네오, 너 손은 왜 그래? 까맣잖아.
모두의 눈이 네오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검은 얼룩이 손목을 넘어 있었다. 네오는 소매를 끌어 내렸다.
네오—오는 길에 검은 손을 몇 개 벴어. 그때 묻은 것 같아.
윤달—그뿐이 아닐 거예요. 그 얘기는 판 보면서 하죠.
윤달이 천막 안 탁자를 치웠다. 탁자 위에 열두 칸짜리 판이 새겨져 있었다. 연이가 휴대폰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윤달—이 하늘의 지도예요. 명반이라고 해요. 칸 하나가 궁 하나. 궁 하나가 인생의 방 하나.
연이—(사주는 글자 여덟 개였는데, 여기는 방 열두 개구나.)
윤달—나 자신의 방, 형제의 방, 짝의 방, 아이의 방, 돈의 방, 몸의 방. 바깥 길의 방, 친구의 방, 일의 방, 집의 방, 마음의 방, 부모의 방.
연이—방이 열두 개면 청소하기 힘들겠다.
윤달—그래서 다들 한두 개는 안 치우고 살아요.
윤달이 장갑 낀 손가락으로 판의 한 칸을 짚었다. 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칸. 연이가 휴대폰에서 본 바로 그 별 이름이 거기 빛났다.
[ 명궁 寅 · 염정 · 밝음 ]
윤달—숙녀분의 방이에요. 주인 별은 염정. 囚星이라고도 불러요. 스스로를 가두는 별.
연이—가둔다고요? 나 갇혀 있어요?
윤달—가두는 쪽이에요. 불을 품고 있는데, 그 불이 남을 태울까 봐 꽉 쥐고 있는 별.
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상관이 터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재판정에서. 네오의 그을린 손. 그 뒤로 연이는 소리치고 싶을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연이—(쥐고 있는 별. 맞네. 요즘 나 맨날 쥐고 있어.)
모카—돼지가 뭘 쥐어. 맨날 다 퍼 주면서.
윤달—그러니까 염정이죠. 퍼 줄 땐 확 퍼 주고, 화날 땐 꽉 쥐고. 밝게 빛나면 원칙이 되고, 어두우면 감옥이 돼요.
네오—지금은 밝다고 나왔다.
윤달—지금은요.
윤달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털자 색 가루 네 줌이 판 위에 떨어졌다. 금빛, 붉은빛, 푸른빛. 그리고 검은빛.
윤달—이 하늘에는 별에 붙는 꼬리표가 넷 있어요. 태어난 해가 정해요. 숙녀분은 壬년생이니까.
금빛 가루가 돈의 방 옆, 아이의 방 쪽 별 하나에 내려앉았다. 붉은빛은 돈의 방의 큰 별에. 푸른빛은 바깥 길의 방 작은 별에.
[ 化祿 천량 · 化權 자미 · 化科 좌보 · 化忌 무곡 ]
윤달—祿은 흘러드는 복. 權은 쥐는 힘. 科는 이름이 나는 빛. 그리고 忌.
검은 가루가 마지막으로 떨어졌다. 일의 방, 午라고 새겨진 칸. 큰 별 둘이 나란히 있는 칸이었다. 검은 가루는 그중 한 별에 들러붙더니 판 위로 스며들었다.
연이—검은 거. 아까 휴대폰에서 번지던 거랑 같은 칸이야.
윤달—忌는 막히는 자리예요. 받을 걸 못 받은 자리. 미련이 고이는 자리. 흑월이 이 하늘에서 쓰는 이름이 그거예요. 化忌.
모카—이름도 음침하네.
윤달—무곡이라는 별에 붙었어요. 무곡은 쇠의 별이에요. 金.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연이가 천천히 네오를 보았다. 네오는 판을 보고 있지 않았다. 천막 밖 하늘 한쪽을 보고 있었다.
연이—金. 네오도 金이잖아. 庚.
네오—그건 우연이야.
윤달—이 하늘에 우연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그 칸, 관록궁이에요. 官. 일과 이름의 방. 숙녀분 명식에서 官이 누군지는.
네오—거기까지 해라.
네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윤달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은 네오의 소매 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연이—(官. 관성. 도서관 끝에서 윤달 씨가 그랬어. 네오가 내 관성이라고. 그럼 저 검은 게 노리는 건.)
윤달이 연이의 방부터 가 보자고 했다. 판만 봐서는 모른다고. 방에 직접 들어가 봐야 그 방이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안다고.
寅의 문은 궁전 동쪽에 있었다. 문을 여니 둥근 방이 나왔다. 벽 가득 거울이 걸려 있었다.
연이—거울이 다 나야. 어릴 때 나, 중학생 때 나, 작년의 나.
거울 속 연이들은 모두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일곱 살의 연이는 울음을. 열다섯의 연이는 시험지를. 작년의 연이는 뒤집힌 우산을.
연이—다 뭘 쥐고 있네. 놓으면 될 걸.
네오—놓으면 날아갈까 봐 쥐는 거다. 사람은 다 그렇다.
방 한가운데 붉은 등불 하나가 떠 있었다. 등불 안에서 불꽃이 철장에 갇힌 새처럼 파닥였다. 불꽃의 가장자리는 검붉었다.
「너로구나. 내 방의 주인.」 등불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고 쉰 여자 목소리였다.
연이—염정, 이세요?
「그렇게 부르는 이도 있고, 囚라고 부르는 이도 있지. 너는 네 불을 가두는 법을 배웠구나.」
연이—네. 소리치면 누가 다쳐서요.
「좋다. 가둘 줄 아는 불은 남을 태우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해라. 가두기만 한 불은 썩는다.」
연이—(썩는 불. 무슨 뜻이지.)
「불은 꺼내 쓸 때를 아는 손에 있어야 불이다. 그때가 오면 망설이지 마라.」
연이—그때가 언젠지 어떻게 알아요?
「누가 다치는지 보아라. 네 불이 아니라, 네 침묵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순간 거울 하나에 금이 갔다. 금 사이로 검은 물이 배어 나왔다. 물은 거울 틀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연이—또 검은 거야. 여긴 내 방인데 왜.
윤달—삼방이라 그래요. 숙녀분 방 寅, 일의 방 午, 돈의 방 戌. 셋이 한 삼각형이에요. 꼭짓점 하나가 까매지면 삼각형 전체가 기울어요.
모카—쉽게 말해, 사기꾼!
윤달—옆방에 불나면 우리 방도 연기 차요.
모카—처음부터 그렇게 말해.
검은 물이 등불 쪽으로 기어갔다. 등불 안의 불꽃이 몸을 웅크렸다. 붉은 빛이 한 겹, 두 겹 꺼져 갔다.
「아이야. 午의 방이다. 거기서 내 형제 별이 울고 있다. 쇠의 별이.」
연이—무곡이요?
「검은 것이 그 별에 들러붙어, 쇠를 먹고 있다. 쇠를 다 먹으면 다음은 쇠를 닮은 것을 찾겠지.」
연이가 고개를 돌렸다. 네오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 속 얼룩은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실제로는 아직 손목 아래였다.
연이—네오. 거울 속 손, 더 까매.
네오—거울은 앞일을 비추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직은 앞일이다.
연이—아직이라는 말 하지 마!
상관의 불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연이는 이를 악물고 삼켰다. 그 순간 네오의 오른손이 조금 움찔했다.
연이—…미안. 소리치면 안 되는데.
네오—괜찮다. 그 정도는 간지럽다.
등불 속 염정이 무언가 말하려다 말았다. 연이는 그 침묵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방에서 나오자 궁전 앞 광장이 어수선했다. 회색 얼굴의 별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 어딘가로 걷고 있었다. 빛 없는 등불을 든 채.
연이—다들 어디 가는 거야?
윤달—午 쪽이에요. 일의 방.
윤달의 장갑 낀 오른손이 저절로 그쪽으로 끌려갔다. 장갑 아래에서 무언가가 바람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윤달은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꽉 붙잡았다.
윤달—크… 흑월이 가까우면 이래요. 구멍이 먼저 알아요.
연이—윤달 씨, 손.
윤달—괜찮아요. 손님 앞에서 아픈 척하면 매출 떨어져요.
네오—그 대사, 내 것이다.
윤달—고양이님한테 배웠어요.
그때 회랑 끝에서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망치로 판결대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판결한다. 이 하늘의 일의 방에 들어오는 자, 노래하는 자, 웃는 자는 전원 몰수.」
모카가 꼬치를 떨어뜨렸다. 쇠꼬챙이가 돌바닥에 부딪혀 쨍그랑 울렸다. 모카의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연이—모카? 왜 그래?
모카—…저 목소리. 나 알아. 까마귀가 되기 전부터 알던 목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