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의 별등이 하나둘 꺼졌다. 별 사람들은 천막을 걷고 돌아갔다. 윤달의 천막에만 숯불 하나가 남아 있었다.
모카는 꼬치를 굽지 않았다. 쇠꼬챙이만 손에 쥐고 숯불을 보고 있었다. 수염이 아직도 가끔 떨렸다.
연이—모카. 아까 그 목소리, 누군데?
모카—축제 섬에 노래하던 애가 있었어. 무성이. 목소리가 엄청 컸어. 박자는 엄청 못 맞췄고.
연이—노래를 못했어?
모카—못했지. 근데 즐거워 보였어. 무대에 올라가면 꼭 눈을 감고 불렀어. 관객을 보면 떨린다고.
숯불에서 불티 하나가 튀었다. 모카가 그것을 꼬챙이 끝으로 눌러 껐다. 꼬챙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카—어느 해 해맞이 무대에서, 그 애 목소리가 갈라졌어. 첫 소절에서. 아주 크게.
연이—그래서?
모카—다들 웃었어. 그다음 날부터 그 애가 안 보였어. 그리고 몇 해 뒤에 까마귀가 왔어. 노래하는 사람은 비웃음을 받는다면서.
모카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무언가 더 하려다 삼킨 얼굴이었다. 연이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언젠가 꺼낼 얼굴이었다.
윤달—식상의 섬에서 까마귀 가면 아래 소년 얼굴이 비쳤다고 하셨죠. 그 소년이 이 하늘에서 문지기를 하고 있다면, 이유가 있을 거예요.
연이—흑월이 데려온 거겠지. 깃털을 거둔다고 했었어. 남은 노래까지.
모카—그 망할 일식. 남의 노래를 왜 자꾸 거둬.
숯불 너머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네오가 천막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른팔은 팔꿈치까지 검었다.
연이—네오. 아까보다 더 올라왔어.
네오—번지면 말한다고 했지. 지금 말할게. 더 번졌어.
연이—그걸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면 어떡해!
윤달이 탁자 위 명반을 다시 펼쳤다. 午의 칸은 아까보다 더 까맸다. 검은 기운이 옆 칸으로 실처럼 뻗어 있었다.
윤달—化忌는 지울 수 없어요. 태어난 해가 붙여 놓은 꼬리표라서. 숙녀분이 壬년에 태어난 이상, 무곡에 忌가 붙는 건 정해진 일이에요.
연이—그럼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윤달—지울 수 없다는 거지,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忌는 빚이랑 비슷해요. 받을 걸 못 받아서 고인 자리. 흑월은 그 고인 자리를 빨대처럼 쓰는 거고요.
연이—(빚. 미수. 그 사람이 맨날 하던 말이랑 같네.)
윤달—빨대를 뽑으려면 그 방 안에 뭐가 꽂혀 있는지부터 봐야 해요. 午의 방, 관록궁에 들어가야 해요.
네오—내가 간다.
연이—안 돼. 거기 金 먹는 데잖아. 네가 제일 가면 안 되는 사람이야.
네오—그래서 내가 가야 해. 무곡은 쇠의 별이니까. 그 문에 반응할 수 있는 건 나야.
윤달—…그건 사실이에요. 관록궁 문은 金 기운에만 반응해요. 숙녀분 명반에서 金은 고양이님 하나뿐이고요.
연이—그런 건 미리 말해 줘요!
윤달—지금 말했잖아요. 고양이님 버릇 옮았나 봐요.
연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검은 칸에도, 담담한 얼굴로 버티는 네오에게도, 자신을 그릇이라 부르는 일식에게도 소리치고 싶었다.
연이—(참아. 소리치면 네오가 다쳐. 근데 참기만 하면, 썩는 불이라고 했지.)
연이—그럼 같이 가. 혼자는 절대 안 돼. 그게 조건이야.
네오—협상도 할 줄 아네, 이제.
연이—시간을 파는 섬 출신이거든.
午의 문으로 가는 길은 궁전 남쪽 끝이었다. 하늘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별이 하나씩 검은 물에 잠긴 것처럼 꺼져 있었다.
회색 얼굴의 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 끝에는 높은 판결대가 있었다. 판결대 위에 검은 망토를 두른 것이 앉아 있었다.
까마귀—다음.
줄 맨 앞의 별 사람이 등불을 내밀었다. 판결대 위의 것이 망치를 내리쳤다. 등불의 빛이 실처럼 뽑혀 판결대 뒤의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까마귀—몰수. 웃은 죄.
연이—웃었다고 빛을 뺏어?
윤달—쉿. 판결대 뒤가 관록궁이에요. 빼앗긴 빛이 다 저리로 들어가요. 무곡한테.
까마귀였다. 식상의 섬에서 본 것과 같은 검은 가면. 같은 망토. 다만 가슴께에 꽂힌 깃털 하나가 유난히 검었다. 숯처럼, 잉크처럼.
연이—(저 깃털. 명반에서 무곡에 들러붙던 검은 거랑 같은 색이야.)
모카—저거 봐. 저 깃털에서 검은 게 문 안으로 이어져 있어.
모카 말대로였다. 가슴의 검은 깃털에서 먹물 같은 실이 흘러나와 문틈으로 이어져 있었다. 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맥박을 쳤다.
윤달—저게 빨대예요. 化忌의 뿌리. 까마귀가 이 하늘에 꽂힌 흑월의 빨대를 쥐고 있어요.
윤달이 작전을 냈다. 회색 얼굴로 위장해서 줄에 섞이자는 것이었다. 장갑을 벗은 오른손을 연이 앞에 내밀었다.
윤달—제 구멍으로 숙녀분 빛을 잠깐 빨아들일게요. 얼굴이 회색이 될 거예요. 문만 넘으면 돌려 드릴게요.
연이—그거 윤달 씨 손 아프잖아요.
윤달—아파요. 외상으로 달아 둘게요.
손바닥 한가운데 검은 구멍이 있었다. 구멍 주변의 살이 금이 간 그릇처럼 갈라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넓었다.
구멍이 숨을 들이쉬었다. 연이의 볼에서 따뜻한 기운이 빠져나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윤달—…크. 숙녀분 빛, 생각보다 뜨겁네요.
모카—나도 해. 빨리.
윤달—수달 씨는 원래 표정이 회색이에요.
모카—이 사기꾼이!
모카까지 잿빛으로 위장했다. 하지만 네오의 금 기운은 가릴 수 없었다. 그는 줄 옆 기둥 뒤에 숨어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연이—(회색 얼굴. 식상의 섬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아무것도 맛있을 것 같지 않아.)
줄이 줄었다. 판결대가 가까워졌다. 연이 차례였다. 연이는 등불 대신 빈손을 내밀었다.
까마귀—등불은.
연이—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어요.
까마귀—빛이 없는 자는 몰수할 것도 없다. 통과.
연이는 판결대를 지나쳤다. 다음은 모카였다. 모카는 잿빛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모카의 꼬리가 바닥을 톡, 톡 쳤다. 박자였다. 저도 모르게. 숯불 앞에서 늘 흥얼거리던 그 박자.
까마귀—…방금 그 박자.
모카—박자 아니야. 꼬리가 원래 그래.
까마귀—거짓말. 몰수.
망치가 올라갔다. 그 순간 판결대 뒤의 문이 덜컥 흔들렸다. 문틈에서 쇳소리가 났다. 문이 저절로 열리려 하고 있었다. 기둥 그림자 쪽으로.
윤달—고양이님 金에 문이 반응했어요! 지금이에요!
네오가 그림자 밖으로 달렸다. 판결대를 짚고 넘어 문에 손을 댔다. 문이 열리자 연이와 모카, 윤달이 뒤따라 뛰어들었다.
까마귀—침입자! 金이다! 金이 들어왔다!
관록궁 안은 쇠로 지은 신전 같았다. 기둥도 벽도 온통 쇠였다. 그런데 쇠가 녹슬어 있었다. 검은 녹. 바닥에 잿빛 등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 큰 별 두 개가 떠 있었다. 하나는 흙빛으로 묵직하게 빛났다. 다른 하나는 쇳빛이었는데, 온몸이 검은 실에 칭칭 감겨 있었다.
윤달—천부, 그리고 무곡. 창고의 별과 쇠의 장군 별이에요. 둘 다 원래는 엄청 밝아요.
연이—무곡이 묶여 있어. 저 실, 까마귀 깃털에서 온 거야.
묶인 별이 신음했다. 쇳소리가 섞인 낮은 울음이었다. 네오가 숨을 삼켰다. 자기 몸 안에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쇠의 아이로구나. 오지 마라. 이 실은 쇠를 먹는다.」
네오—알고 왔다. 실을 끊으면 되나.
「끊으면 다시 자란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뿌리는 저 판결대 위에 앉은 아이의 가슴에 꽂혀 있다.」
네오가 손끝의 날로 실 다섯 가닥을 끊었다. 잘린 끝이 뱀처럼 몸을 틀어 그의 팔로 달려들었다.
연이—네오!
검은 실이 네오의 손목을 타고 올랐다. 팔꿈치를 지나 어깨로, 목덜미로. 은빛 머리카락 끝까지 잿빛이 번졌다.
네오—크윽…!
윤달—고양이님, 멈춰요! 金이 끊을수록 忌가 金으로 옮겨 가요!
윤달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구멍이 검은 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실 몇 가닥이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만큼 구멍 가장자리의 금이 손목 쪽으로 번졌다.
연이—윤달 씨, 그만해요! 손이 갈라지고 있어요!
윤달—괜찮아요. 아직 손목이에요.
연이—다들 왜 그래! 왜 다들 괜찮다고만 해!
연이의 목소리가 쇠벽에 부딪혀 울렸다. 상관의 불이 확 피어올랐다. 그리고 연이는 보았다. 네오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연이—…미안. 또 소리쳤어.
네오—아니다. 지금 건 간지럽지도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네오의 목 위로 잿빛이 더 번져 있었다. 연이는 말 대신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연이—(말하면 다치고, 참으면 다들 혼자 다쳐. 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등 뒤에서 문이 쾅 닫혔다. 날개 퍼덕이는 소리. 판결대 위에 앉아 있던 것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까마귀—金이 스스로 걸어 들어왔군. 판결할 수고를 덜었다.
까마귀—판결한다. 이 쇠는 忌에 묶였다. 사흘 뒤 정오, 이 하늘에서 지워진다.
연이—무슨 권리로! 네가 뭔데 남의 이름을 지워!
까마귀—이름이 있으니 비웃음을 받는다. 지우면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그게 자비다.
까마귀가 망치를 들었다. 그런데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슴의 검은 깃털이 맥박을 칠 때마다, 까마귀의 어깨가 함께 움찔했다.
연이—(아파하고 있어. 저 깃털이 쟤도 먹고 있어.)
그때 모카가 앞으로 나섰다. 잿빛이 풀린 얼굴이었다. 윤달이 빛을 돌려준 것이 아니었다. 모카가 스스로 털어낸 것이었다.
모카—야.
까마귀—수달. 박자의 죄로 몰수.
모카—그 박자. 너도 알잖아. 해맞이 무대 뒤에서 너랑 나랑 맞추던 거.
모카의 꼬리가 바닥을 쳤다. 톡, 톡, 톡. 그리고 한 박자 쉬고, 톡.
까마귀의 손에서 망치가 떨어졌다. 쇠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을 오래 울렸다.
까마귀—…그 박자를 어떻게.
모카—무성아. 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