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종이 울렸다. 무곡의 빛이 또 한 줄 꺼졌다. 열두 번째 종까지 여덟 번이 남았다.
모카—나 노래 못해. 알지.
연이—알아. 랩도 못하고.
모카—지금 그 얘기를 왜 해!
연이—못하는 거 다 아는 사람들 앞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는 얘기.
다섯 번째 종. 네오가 앞발로 바닥을 짚었다. 잿빛이 목덜미까지 번져 있었다.
네오—서둘러라. 나는 박자를 못 맞추지만, 저음은 낼 수 있다.
윤달—저는 궁합 노래 열두 곡 알아요. 다 가사가 이상해요.
무성—…뭐 하려는 거야. 그만해. 웃기잖아.
연이—(웃기지. 웃기라고 하는 거야. 이번엔 웃음이 너를 향하지 않게.)
연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노래방에서도 늘 탬버린 담당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탬버린이 없었다. 목소리밖에 없었다.
모카—웃겨도 돼. 이번엔 우리가 웃길 거야. 그러니까 너는 듣기만 해.
모카가 숨을 들이쉬었다. 꼬리로 바닥을 쳤다. 톡, 톡, 톡. 한 박자 쉬고, 톡.
그리고 첫 소절. 모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닭 울음 같은 소리. 아주 크게.
연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웃으면서 따라 불렀다. 가사를 몰라서 음만 따라갔다. 음도 틀렸다.
윤달—하하. 둘 다 반음 낮아요.
윤달도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상한 가사를 붙였다. 사주가 맞으면 다 맞고, 안 맞으면 반값이라는 노래였다.
네오가 낮게 울렸다. 사자의 저음이 쇠벽을 타고 방 전체를 떨게 했다. 박자는 반 박자 늦었다.
엉망이었다. 넷 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꼬리 박자 하나만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톡, 톡, 톡. 쉬고, 톡.
무성—다들 웃고 있어. 노래 부르면서.
연이—(그래. 우리는 지금 웃고 있어. 누구를 비웃는 게 아니라.)
무성의 눈에서 무언가 흘렀다. 그는 눈을 감으려 했다. 무대에서처럼. 그러다 감지 않았다. 웃는 얼굴들을 끝까지 보았다.
여섯 번째 종이 노래에 묻혔다. 아무도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노래가 끝났다. 정확히는, 다들 숨이 차서 멈췄다. 모카가 무릎에 손을 짚고 헉헉거렸다.
그리고 연이가 손뼉을 쳤다. 짝. 모카가 쳤다. 짝, 짝. 윤달이 장갑 낀 손으로 쳤다. 사자가 꼬리로 바닥을 쳤다.
박수는 무대 위의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아래, 무릎 꿇은 소년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모카—이건 그날 거야. 늦었지. 몇 해나. 미안.
무성—…나 노래 안 했는데.
연이—했어. 그날 마지막 소절까지 했잖아. 갈라진 목소리로. 끝까지 부른 사람한테 치는 박수야.
무성의 가슴에서 검은 깃털이 떨렸다. 끝에서부터 색이 바뀌었다. 먹색에서 잿빛으로, 잿빛에서 따뜻한 금빛으로.
윤달—化祿. 진짜로 됐어요. 忌가 祿으로 돌아섰어요.
깃털에서 뻗어 있던 검은 실도 금빛으로 물들었다. 실은 더 이상 무곡을 조이지 않았다. 대신 무곡 안으로 빛을 흘려 넣었다.
묶여 있던 별이 숨을 쉬었다. 쇳빛이 은빛으로 돌아왔다. 쇠벽의 검은 녹이 비늘처럼 벗겨져 떨어졌다.
「…고맙다. 막혔던 것이 흐른다. 쇠는 원래 흐르는 것을 담는 그릇이다.」
네오의 목덜미에서 잿빛이 물러났다. 어깨, 무릎, 발목까지. 그러나 오른 앞발 끝에는 검은 얼룩이 동전만 하게 남았다.
네오—남은 건 내 몫이다. 무곡의 빚이 아니라 내 빚이라서.
연이—또 그 소리. 나중에 다 말하기다.
네오—약속했다.
방 구석에 쌓여 있던 잿빛 등불들이 하나씩 켜졌다. 빛은 문틈으로 흘러 나갔다. 원래 주인들에게로.
일곱 번째 종이 울렸다. 그런데 소리가 달랐다. 쇠를 때리는 소리가 아니라 맑게 퍼지는 소리였다. 정오를 세는 종이 아니라, 문이 열렸음을 알리는 종이었다.
연이—(정오는 안 왔어. 흑월이 당긴 시간이 풀린 거야.)
연이는 네오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남은 검은 얼룩을 손끝으로 만졌다. 차가웠다. 쇠붙이처럼.
연이—아까. 내가 말했을 때. 진짜 안 아팠어?
네오—안 아팠다. 네가 소리칠 때와 말할 때는 불의 모양이 다르다.
연이—(불의 모양. 터지는 불이랑 켜는 불.)
네오—오늘 너는 켰다. 그래서 다들 그 불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연이—…그런 말은 갈기 다 돌아오고 하라고.
사자의 꼬리가 연이의 등을 한 번 툭 쳤다. 박자는 여전히 반 박자 늦었다.
장터로 돌아가는 회랑에서 윤달이 걸음을 늦췄다. 장갑을 낀 오른손을 가슴께에 끌어안고 있었다.
연이—윤달 씨. 손.
윤달—아까 실을 좀 많이 먹었어요. 구멍이 손목을 넘었네요.
장갑 끝에서 검은 금이 손목 위로 기어 올라와 있었다. 가는 잉크 줄 같았다.
윤달—괜찮아요. 무곡이 풀렸으니 숙녀분 명반도 한결 맑아졌을 거예요. 장사 밑천은 지켰죠.
연이—그 말 또 한다. 다들 괜찮다는 말 금지야. 이제부터 괜찮다고 하면 벌금.
윤달—얼마요?
연이—꼬치 열 개. 모카한테 내.
장터에 별등이 다시 켜졌다. 회색이던 별 사람들의 볼에 색이 돌아왔다. 누군가 흥정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회랑 끝에서 꼬마 별 사람 하나가 달려왔다. 무성을 보더니 멈칫했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등불을 내밀었다. 아까 판결대에서 몰수당했던 바로 그 등불이었다.
무성—나한테? 내가 뺏은 건데.
꼬마는 대답 대신 등불을 무성의 손에 쥐여 주고 도망쳤다. 몇 걸음 가다 돌아보고, 혀를 쏙 내밀었다.
연이—저건 용서야, 놀림이야?
모카—둘 다. 섬에서는 원래 그렇게 해.
무성—깃털이 금색이 되니까 말이야. 날개가 안 돋아. 그냥 사람이야.
모카—섬으로 와. 해맞이 무대, 올해부터 다시 한대. 내가 꼬치 굽는 자리 옆에 끼워 줄게.
무성—또 갈라지면.
모카—그럼 또 웃지. 그리고 또 박수 치지. 그게 무대야.
무성이 웃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그래도 분명 웃음소리였다.
무성—하나만 말해 둘게. 깃털을 준 목소리가 자주 한 말이 있어. 재백의 방에 그릇이 있다고.
연이—그릇.
무성—戌의 방. 거기 들어간 별 사람은 아무도 안 돌아왔어. 그리고 거기서 쇠사슬 끄는 소리가 났어. 비 오는 날마다.
연이—(쇠사슬. 비. …서한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