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42A · 59 / 70

평범한 봄

네오의 꿈. 사람으로서 연이와 나란히 걷는 평범한 봄.

한글 약 1,818자 · 읽는 시간 약 4분

꿈이라는 걸 알았다. 너무 따뜻해서 알았다. 운명의 세계에는 이런 밤이 없었다.

좁은 자취방. 책상 위에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스물셋의 박병하는 그 화면을 오래 보고 있었다. 보낼까 말까 망설인 문장이 하나 떠 있었다.

[ 너 폰 좀 이상하지 않아? 아까 알림이 계속 오던데 ]

네오—내일 말하면 되지.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엄지가 먼저 움직였다. 전송. 화면 위로 작은 종이비행기가 날아갔다. 일 분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 연이 · 헐 맞아 무서워 ㅠ 그릇을 찾았다는 이상한 알림 계속 옴 ]

네오—지금 그 앱 지워. 아니, 폰 꺼. 내가 갈게.

그는 신발을 꺾어 신고 뛰었다. 봄비가 막 그친 골목이었다.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펴는 시간도 아까웠다.

연이의 문 앞.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연이가 잠옷 차림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이 혼자 깜빡이고 있었다.

연이—이거 봐. 꺼도 다시 켜져. 무슨 앱인지도 모르겠어.

화면 가장자리에서 검은 손가락 하나가 비어져 나왔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낚아채 복도 소화전 물통에 던져 넣었다. 첨벙.

연이—내 폰!

네오—새로 사 줄게. 할부로.

연이—할부래. 멋있는 척하다 말았어.

물통 안에서 무언가가 한 번 버둥거리다 조용해졌다. 그는 손이 떨리는 걸 숨기려고 주머니에 넣었다. 꿈인데도 손이 떨렸다.

네오—오늘 밤엔 문 잘 잠가. 아침에 정류장에서 보자.

연이—왜, 같이 가 주게? 너 원래 한 정거장 먼저 타잖아.

네오—내일은 기다릴게.

아침. 비가 왔다. 정류장 지붕 아래에 그는 먼저 와 있었다. 흰 우산을 활짝 펴 든 채로. 오 분이나 일찍.

서한비가 봉투를 품에 안고 뛰어왔다. 연이가 그 뒤를 따라왔다. 노란 가방, 젖은 운동화. 둘 다 웃고 있었다.

서한비—반쪽아, 저분 누구야? 우산 엄청 크다.

연이—어제 내 폰 물에 빠뜨린 사람.

서한비—그게 웃으면서 할 소개야?

네오—박병하입니다. 우산은 큽니다. 셋까지 들어갑니다.

셋이 우산 하나 아래 섰다. 어깨가 조금씩 젖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봉투 속 지폐가 바스락거렸다. 같이 바다 가기, 라는 글씨가 번지지 않았다.

서한비—다음 달에 바다 가는데. 같이 갈래요? 회비는 있어요.

연이—오, 병하도 데려가자! 짐꾼 필요해.

네오—짐꾼은 회비 면제인가.

서한비—장부에 적어 둘게요. 짐꾼, 미수.

연이가 깔깔 웃었다. 서한비도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그는 이름이 불리는 소리를 들었다. 병하야. 가볍게, 아무 대가 없이.

네오—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버스 맨 뒷자리. 셋이 나란히 앉았다. 서한비가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고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연이가 옆에서 손가락으로 같이 셌다.

서한비—여기까지가 내 몫. 여기부터가 반쪽 몫. 반반 딱 맞아.

연이—와, 우리 진짜 바다 간다. 나 수영복 없는데.

서한비—발만 담그면 돼. 바다는 발만 담가도 바다야.

그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둘을 보았다. 둘이 세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였다. 만, 이만, 삼만. 지루하고 평범한 숫자였다. 그 평범함이 눈이 부셨다.

연이—병하 너는 뭐 해. 바다 가면.

네오—모래사장에 앉아서 너희 짐 지키지.

연이—진짜 짐꾼이네.

네오—짐꾼이 제일 좋은 자리다. 다 보이거든.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알았다. 이건 그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봄이었다. 이 버스는 바다에 닿지 않는다. 꿈은 그 전에 끝난다. 그래도 그는 내리지 않았다. 한 정거장이라도 더 타고 싶었다.

캠퍼스. 벚꽃이 반쯤 피어 있었다. 둘은 수업에 늦지 않았다. 연이는 강의실 앞에서 그를 돌아보았다.

연이—근데 너 좀 고양이 닮았다.

네오—처음 듣는 소리인데.

연이—아니, 고양이라기보다는. 사자? 큰 고양이. 하얀 거.

네오—칭찬으로 듣겠다. 사자는 원래 잠이 많고 게으르니까, 그건 빼고.

연이—그럼 별명 지어 줄게. 고양이 이름 같은 걸로. 나비? 아니야. 뭐가 좋지.

연이가 손가락을 턱에 대고 고민했다. 그는 그 얼굴을 보다가 웃음을 참았다.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 불려 온 이름이었다.

연이—네오. 어때.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입에 붙어.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꿈이 크게 흔들렸다. 벚꽃잎이 공중에서 멈췄다. 사람들의 소리가 꺼졌다. 연이의 목소리만 남았다. 꿈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네오. 네오야. 일어나. 별점 하나 준다니까.

네오—아, 그렇지. 이건 꿈이었지.

꿈속의 연이가 아직 웃고 있었다. 그는 그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늦지 않은 봄. 셋이 같이 쓴 우산. 아무 값도 치르지 않은 이름.

네오—고맙다. 잘 놀다 간다.

벚꽃잎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래가 아니라 위로. 꿈이 하늘 쪽으로 풀려 올라갔다.

덜컹. 바퀴 소리. 눈을 뜨자 연이의 얼굴이 바로 위에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고양이는 그 품에 안겨 있었다.

연이—깼다. 깼어! 하루 종일 안 깼단 말이야!

「시끄럽다. 귀 아프다.」

연이—첫마디가 그거야? 별점 하나야, 진짜.

둘은 7번 카드의 전차 위에 있었다. 두 마리 스핑크스가 끄는 전차가 카드와 카드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모카와 윤달, 서한비가 짐칸에 매달려 있었다.

윤달—깨셨어요? 전차가 혼자 달려요. 8번부터 15번까지 밤새 지나왔어요.

서한비—힘 카드 앞에서는 연이 씨가 사자님 눈을 손으로 가렸어요. 그 빛 보면 또 깎일까 봐.

모카—밤새 한숨도 안 잤어, 얘. 고양이 숨소리 세느라.

연이—안 셌거든! 그냥 들은 거야!

「몇 번이었나.」

연이—천이백 몇 번. 중간에 한 번 끊겨서 처음부터 다시 셌어.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연이의 손등에 이마를 한 번 비볐다. 꿈속의 봄보다 이 손등이 조금 더 따뜻했다.

전차가 갑자기 멈췄다. 앞이 막혀 있었다. 검은 구름 아래 높은 탑 하나가 서 있었다. 꼭대기에 번개가 감겨 있었다. 16번, 탑.

「저기는.」 고양이가 연이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털이 곤두서 있었다. 「저기는 너 혼자 들어가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체 목차타로 카드 리딩 입문비주얼 노벨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