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DESTINY꿀꿀 운세

EP.52 · 69 / 70

벚꽃 강가의 약속

벚꽃 강가 벤치의 낯선 남자가 말한다. 양말 짝이 안 맞는데요. 연이는 그를 네오라고 부른다.

한글 약 2,728자 · 읽는 시간 약 6분

월요일. 연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강변으로 나갔다. 동쪽 물가. 꽃이 지기 전. 단서는 그게 전부였다.

화요일에는 다리 세 개를 지났다. 수요일에는 다섯 개. 하얀 우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벚꽃만 하루가 다르게 졌다.

연이—꽃이 다 지면 끝이야? 점이 그렇게 야박해?

[ 앱 알림 · 강새벽: 오늘 목요일. 꽃 지기 전 마지막 날. 연이 씨 일진 좋음. 궁합 상담비는 나중에 ]

연이—상담비를 왜 받아. 동쪽 물가가 몇 킬로인지 알기나 해? 내 종아리 값부터 내놔.

그러면서도 연이는 페달을 밟았다. 오늘은 양말을 일부러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왼쪽은 노란색, 오른쪽은 줄무늬.

연이—시험이야. 그 사람이 진짜면, 이걸 그냥 못 지나칠 거야.

아침에 그 양말을 신으면서 연이는 혼자 웃었다. 이걸로 사람을 찾겠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수사법이었다.

[ 앱 알림 · 모카: 찾았어? 못 찾았으면 랩으로 응원해 줌. 요 요 박 씨 어디 있니 ]

연이—응원이 아니라 방해잖아.

강바람이 불었다. 둑길 벚나무에서 꽃잎이 한 움큼 떨어졌다. 연이는 그 꽃잎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셀수록 초조해졌다.

연이—꽃이 지면 진짜 끝이면 어떡하지. 그 사람이 나를 모르는 채로.

연이는 자전거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아주 조금 따뜻했다. 金 조각이 머물던 자리였다.

오후 네 시. 다리 일곱 개째. 연이는 강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다. 자전거가 옆에서 쓰러졌다.

연이—별점 하나. 우주 고객센터 별점 하나. 아니 반 개.

연이는 메모장을 꺼내 펼쳤다. 하얀 머리일 수도. 양말에 집착함. 별점에 예민함. 하얀 우산. 고양이 알레르기. 강 쪽.

연이—이만큼 적었는데. 얼굴은 하나도 안 떠올라.

메모장을 덮으려는데 꽃잎 하나가 페이지 사이에 내려앉았다. 연이는 그걸 털어 내지 않고 그대로 끼워 두었다.

그때 벤치 반대편 끝에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연이는 고개를 돌렸다.

하얀 우산이 벤치에 기대어 있었다. 그 옆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릎에 책을 펴 둔 채로. 발치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낯선 남자—아, 죄송합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연이—근데 왜 안 쫓아요?

낯선 남자—먼저 앉아 있었으니까요. 쟤 자리예요.

남자의 머리카락 한 줄기가 하얗게 바래 있었다. 염색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처럼. 눈매는 무뚝뚝했고 목소리는 낮았다.

연이는 숨을 참았다. 심장이 귀까지 올라와 쿵쿵거렸다. 확신은 없었다. 하얀 머리카락이야 세상에 많았다.

낯선 남자—자전거 쓰러졌는데요.

연이—아. 네. 알아요. 일부러요.

낯선 남자—일부러 쓰러뜨리는 사람은 처음 봐서요.

남자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다 멈췄다. 시선이 연이의 발목에서 걸렸다. 노란 양말과 줄무늬 양말 사이에서.

낯선 남자—저기. 양말 짝이 안 맞는데요.

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을 꼭 물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책을 덮었다.

낯선 남자—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말을. 저도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처음 보는 분한테.

연이—괜찮아요. 맨날 듣던 말이라서요.

낯선 남자—맨날이요? 누구한테요?

연이—잔소리 많은 고양이한테요.

남자가 재채기를 했다. 고양이 얘기만 나와도 코가 반응하는 사람처럼. 연이는 울다가 웃어 버렸다.

낯선 남자—그 고양이, 지금은 어디 있어요?

연이—집에 갔어요. 아주 먼 데로. 인사도 대충 하고.

낯선 남자—무책임한 고양이네요.

연이—그쵸? 진짜 무책임해요. 마지막 말이 양말 얘기였어요.

낯선 남자—그건 좀 너무했네요. 이상하게 제가 찔리는데요.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두통이 오는 사람처럼. 연이는 그 손짓을 놓치지 않았다.

둘은 어쩌다 같이 걷게 되었다. 남자가 쓰러진 자전거를 세워 주었고, 연이가 고맙다고 했고, 방향이 같았다. 그게 다였다.

벚나무 길이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꽃잎이 바람에 날려 둘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마지막 꽃잎들이었다.

낯선 남자—이상한 얘기 하나 해도 돼요? 요즘 계속 같은 꿈을 꿔요.

연이—무슨 꿈인데요?

낯선 남자—노란 우산 든 사람이랑 이 길을 걷는 꿈이요. 그리고 가끔 돼지가 나와요. 분홍색 꽃 달린.

연이—돼지요?

낯선 남자—로또 사라는 꿈인 줄 알고 세 번 샀어요. 다 꽝이었어요.

연이—그건 로또 꿈이 아니에요. 진짜로.

낯선 남자—그럼 무슨 꿈인데요? 해몽 아세요?

연이—돼지가 나오면 귀인을 만나는 꿈이래요. 방금 지어냈어요.

남자는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연이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꽃잎 하나가 그의 하얀 머리카락에 걸렸다.

연이—저기요. 이름이 뭐예요?

낯선 남자—박병하요. 그쪽은요?

박병하. 연이는 그 이름을 한 번 속으로 굴려 보았다. 연인 카드에서 처음 읽었던 이름. 부르면 그가 사라진다던 이름.

그 규칙은 저쪽 세계의 것이었다. 연이는 23번 카드에 직접 써 넣었다. 문은 안에서도 열린다고.

연이—그래도. 저 이름은 그 사람이 지은 거고.

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부를 이름은 따로 있었다. 자기가 지어 준 이름. 별점 하나를 걸고 지어 준 이름.

연이—저는 연이요. 그리고 하나 부탁해도 돼요?

박병하—뭔데요?

연이—지금부터 이상한 이름 하나 부를 거예요. 대답 안 해도 돼요. 그냥 들어만 줘요.

연이—네오.

바람이 멎었다. 떨어지던 꽃잎이 공중에서 잠깐 멈춘 것처럼 보였다. 박병하가 걸음을 멈추었다.

박병하—아.

그가 이마를 짚었다. 아픈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아래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비 오는 정류장. 뒤집힌 우산. 침대 끝의 고양이 자리. 식상의 섬의 해. 금고의 용 알. 물에 잠긴 서가. 공망 속의 하얀 빛.

그리고 짝짝이 양말을 신고, 사자의 갈기에 얼굴을 묻던 사람.

네오—연이.

연이—응. 나야. 짝짝이 양말.

네오—별점. 몇 개 줄 거냐. 정하면 알려 준다고 했잖아.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무뚝뚝하고, 조금 건방지고, 끝이 이상하게 다정한. 연이가 아는 그 말투였다.

연이—다섯 개. 늦게 와서 하나 빼려다가 참았어. 대신 리뷰는 길게 쓸 거야.

네오—후하네.

연이는 그의 셔츠 앞섶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박병하는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가, 연이의 머리 위에 얹었다. 큰 앞발 대신 사람 손이었다.

네오—사람 손은 아직 적응이 안 된다. 갈기가 없으니까 어디를 대 줘야 할지 모르겠군.

연이—머리. 머리면 돼. 쓰다듬는 건 할 줄 알잖아.

네오—그리고 연이. 양말은 왜 또 짝짝이냐.

연이—시험이었어. 합격.

발치에서 따라오던 길고양이가 야옹 울었다. 박병하는 재채기를 했다. 연이는 소리 내어 웃었다.

네오—고양이 알레르기는 수호자 시절 반동인 것 같다. 우주 놈들. 애프터서비스가 엉망이야.

연이—고객센터에 민원 넣자. 대기 1명이니까 금방 연결될 거야.

연이—근데 너 진짜 다 기억나? 박 뭐시기로 산 거랑 네오였던 거랑 둘 다?

네오—둘 다. 회사 다니고, 라면 끓이고, 월세 내던 박병하도. 침대 끝에서 자던 고양이도.

네오—이상하게 하나도 안 섞인다. 둘 다 나라서 그런가 보다.

연이—그럼 뭐라고 불러? 병하 씨? 네오?

네오—네가 지어 준 걸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병하로 해라. 회사에서 네오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연이—회사까지 찾아갈 생각은 없었는데. 이제 생겼어.

박병하가 처음 보는 얼굴로 웃었다. 사자도 고양이도 할 수 없던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는, 조금 서툰 사람의 웃음.

해가 강 위로 기울었다. 꽃잎이 물 위에 떠서 천천히 흘러갔다. 둘은 강가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섰다.

네오—꿈에서 이 길을 걸었다. 평범한 봄에. 너랑.

연이—꿈에서 우리 뭐 했는데? 설마 싸웠어?

네오—아무것도. 그냥 걸었다. 그게 제일 좋았다. 싸움은 깨서 했다.

연이—그럼 약속해. 매년 봄마다 여기 걷자. 꽃이 지기 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네오—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비 오면 우산은 네가 들어라. 노란 거.

[ 앱 알림 · 서한비: 바다 오월 둘째 주 토요일. 한 명 더 와도 돼요. 털 날리는 사람 말고요 ]

네오—털 안 날린다. 이제. 억울하다.

연이—재채기는 하잖아.

연이는 답장을 썼다. 한 명 추가. 사람임. 털 없음. 양말 검사 담당.

[ 앱 알림 · 강새벽: 찾으셨군요. 일진 맞혔으니 상담비 청구합니다. 그리고 그분 생시 좀 ]

네오—이 사람은 왜 아직도 생시를 묻냐.

연이—궁합 보고 싶대. 너랑 나랑.

네오—안 봐도 안다. 乙庚合이다. 그거면 됐다.

연이—그래도 궁금하잖아. 점수가 몇 점인지.

네오—백 점 아니면 그 점쟁이 별점 하나 줘라.

연이는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박병하의 손을 잡았다. 사람 손은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조금 차가웠다.

연이—손 차갑다. 庚金이라 그런가.

네오—네 손이 따뜻한 거다. 乙목이라 그렇지.

둘은 손을 잡은 채 강을 따라 걸었다. 길고양이가 멀찍이 뒤를 따랐다. 박병하가 또 재채기를 했다. 강물 위로 마지막 꽃잎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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